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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문열 단편소설 『구로아리랑』

by 언덕에서 2021. 3. 9.

 

이문열 단편소설 『구로아리랑』

 

 

이문열(李文烈. 1948~ )의 단편소설로 1987년 발표되었다. 구로공단 노동운동 현장을 소재로 지은 소설로 한때 대학 운동권 학생들의 필독서였다. 이 소설은 노동운동을 하던 대학생이 구로공단에서 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자백하는 형식으로 1980년대 구로 일대의 노동운동의 현장을 담아내고 있다. 이 작품은 어느 대학생이 구로공단에 들어오면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경찰 취조실에서 자백하는 1인칭 시점과 형식으로 전개된다. 1980년대 구로공단 지역의 노동운동 현장의 모습을 작가는 비판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자꾸 공순이, 공순이, 캐샇지 말어예. 어디 뭐 대학생이 씨가 따로 있어예? 우리도 눈·코 있고 귀 있고 입 있어예. 뭐시 굽었고 뭐시 바른동 분간할 줄 알고, 어디가 썩는지 어디가 뭉개(무너) 지는지 냄새 밭고 소리 들어예. 그런데 입는 입 가지고 와 말 못 하겠어예?··· ”로 시작되는 『九老 아리랑』은 노동운동을 하는 가짜대학생과 ‘시다’인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다. 경상도 방언을 구사하는 여성의 입담이 절절하다. 경찰 취조실에서 자백하는 형식의 일인칭 소설로 1980년대 현장 노동운동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1989년 박종원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져 [모스코바 영화제]에 출품되기도 했다.  구로공단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각종 열악한 노동환경과 회사 측의 횡포에 시달리지만 구로동 연기 속에서 죽어간 동료들을 회상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갈망한다는 내용이다. 노동운동을 비꼰 이문열의 원작을 대폭 수정한, 노동운동을 찬양·긍정한 내용이어서 아이러니 하기 짝이 없다.

 

영화 <구로아리랑 Kuro Arirang> , 1989 제작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980년대 중반 구로 공단, 김현식은 다니던 대학에서 퇴학당한 이유와 위장 취업 사실까지 밝히며 공장의 여성 노동자들에게 접근한다. 계급투쟁 이념을 주입하기 위해서다.

  김현식은 여성 노동자의 자취방에 들어가 몸을 섞는다. 물론 결혼을 약속하지도 않았거니와 ‘그저 이념의 동지 간에 있는 작은 로맨스'일 뿐이다. 명문대 퇴학생이라는 사실과 그의 언변에 반한 여성들은 몸을 내주는 것은 물론이고 또 고향의 노부모에 보낼 돈과 함께 적금통장을 깨 ‘나중에 받기로 하고’ 김현식에게 돈을 건네기도 한다.

  김현식이 노동운동을 하는 대학생이 아니라 여성 노동자를 등쳐먹는 사기꾼으로 묘사되면서 이상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그는 대학은커녕 재수·삼수하다 대학을 포기하고 대학생 행세까지 하며 공장을 떠돌다 노동운동이니, 의식화니 하는 말로 여성 노동자를 꾀어 농락하는 건달이다. 그는 대학생 친구들을 모방하여 공단에 숨어 들어가 운동권 대학생 행세를 하고 여성 노동자들의 정조와 금품을 갈취하지만, 그녀는 “흔들리지 않겠다”라며 도리질 칠뿐이다. 그 도리질은 절규에 가깝다.

 

영화 <구로아리랑 Kuro Arirang> , 1989제작.

 

 1980년대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지하 노동운동은 세계사적으로 유례없는 일이었다. 적지 않은 수의 대학생들이 강제징집을 피해, 경찰 수배를 피해, 공장으로 흘러들었다. 학생들이 노동 현장을 거점지역으로 활용한 것은 부르주아로부터 억압받던 노동계급만이 사회주의 혁명을 주도하고, 성공할 수 있다는 마르크시즘에 영향받은 바가 크다.

  이는 ‘전태일 분신의 영향 등으로 노동자의 벗이 되고자 했던 1970년대 소박한 접근과는 차원이 달랐다.’ 작중 김현식도 그런 부류였다.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를 동지로 불러주데예. 물론 감격했지예. 생각해 보이소. 그 꼴 같잖은 대학생들 말입니더. 가아들 어데 저끼리 있으믄 우리를 사람택이나 여깁니꺼? 서로 잘모를 때는 죽자살자 따라 댕기다가도 공순이 라는 걸 알믄 천장만장 달라빼는 게 가아들이라예. 아까부터 사람 불러놓고 엉뚱한 소리만 실실 해대는 게 내 보기에는 아저씨가 오히려 우째 된 거 같심더. 쓸데없는 소리 해 쌓지 말고 요점만 물어예. 현식이 오빠 얘기, 아무리 나쁘게 꾸며대도 말짱 헛일이라예. 뭐라 캐도 아저씨(형사) 말은 안 믿어예. 혹 이걸로 노동운동 하는 대학생들 몽조리 도맷금으로 우째볼 생각이믄 그건 틀렸어예. 우리가 아무리 몬 배우고 덜 됐다 캐도 그만 일로 흔들리지는 않아예.···그 오빠는 우리한테 우리 권리하고 노동의 존엄을 깨치준 사람이라예. 우리가 어떻게 억압받고 무엇을 착취당했는지를 알려준 사람이고, 무엇으로 우리 스스로를 회복시켜야 되는지를 가르쳐준 사람이라예.···그 사람의 동기야 우쨌건 인자 우리는 한번 출발한 이 길을 갈 꺼라예. 흔들리지 않게, 흔들리지 않게, 흔들리지 않게······.”

  『구로 아리랑』의 줄거리 전개가 이문열식 특유의 비틀기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항상 ‘안티 이문열’ 집단에게서 비판받는다. 노동운동을 하러 뛰어든 학생들을 풍자시켜 야유를 보내려는 속셈이라는 것이다. 또 여성의 마지막 독백 ‘흔들리지 않게’도 학생운동을 비꼰다고 말한다.

 

 

 이문열의 문학세계를 살펴보면, 첫째, 알레고리(allegory)적 관념 소설들로, <사람의 아들> <필론의 돼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을 들 수 있다. 그의 알레고리적 관념소설은 집단이나 조직의 폭력과 군중심리 앞에 선 개인의 자유와 열망을 잘 짜인 구성으로 보여준다. 둘째는 근ㆍ현대사에서 찾은 소재를 바탕으로 능란한 이야기 솜씨를 발휘한 소설들로, <황제를 위하여> <우리가 행복해지기까지> 등을 들 수 있다. 이 소설들에서는 한국 역사를 '이념 과잉'의 역사로 해석하고 그에 대한 풍자와 냉소를 바탕에 깔고 있다. 셋째는 앞선 작품보다 더 절실하고 진지한 작가적 고뇌를 그린 소설들로, <들소> <금시조> <시인> 등 예술가를 그린 소설과 <영웅시대> <젊은 날의 초상>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변경> 등의 자전적 소설을 들 수 있다. 『구로아리랑』은 첫째와 둘째 부류의 중간 정도에 속해 보인다.

 단편소설 「구로 아리랑」은 노동운동을 하는 대학생과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운동권 대학생을 흉내 낸 사기꾼 젊은이와 그에게 속아 넘어간 가련한 여성 노동자 사이에 일어난 이야기다. 시대가 시대니만큼 별종의 괴물이 생겨난다는 사실이 창작 모티브였다.

 나이가 많은 아홉 노인이 장수하였다는데서 유래한 구로는 공장 밀집 지역이었다. 지금은 디지털 단지가 들어서고 높은 건물이 많이 세워졌지만, 가리봉동과 함께 서울의 대표적인 빈민가이기도 했다. 7,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전략적 캠프이자 노동 문학의 산실이기도 했다.

  이 소설로 이문열은 산업체의 노동운동 세력을 제대로 비판했다는 찬사와 대학생 운동권을 매도했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책 뒷부분에 밝혀지는 주인공 남자의 정체 때문이다. 소설 기법 면에서, 이 작품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여성의 대사만으로 이루어지는 이 특이한 대화체 소설로 변형되지 않은 경상북도 사투리가 그대로 살아있다. 일인칭 주인공의 서술이나 삼인칭 전지자의 서술 없이 여성 화자의 진술만을 통해 사건 전체를 파악할 수 있는 주목할만한 서술체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