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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황순원 단편소설 『목넘이 마을의 개』

by 언덕에서 2021. 3. 2.

 

황순원 단편소설 『목넘이 마을의 개』

 

 

황순원(黃順元 , 1915~2000)의 단편소설로 1948년 [개벽] 지에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일본 강점기 한민족의 고난과 삶을 ‘신둥이’라는 암캐로 상징하고 있다. 유랑민이 버리고 간 신둥이라는 개에 관한 이야기를 간난이 할아버지의 시각으로 서술해 나가고 있다. 미친개 취급을 받는 신둥이는 용케도 살아남아 새끼를 배게 되고 그 새끼를 간난이 할아버지가 발견하여 사람들에게 나누어줌으로써 그 피를 이어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황순원은 완고하다 할 만큼 변하지 않은 작가이면서, 동시에 꾸준히 변하여온 작가라 할 수 있다. 이 변하지 않은 면과 변하는 면이 씨와 날이 되어, 그의 문학세계는 형성되어온 듯하다. 그의 문학세계에 있어서 완고한 일관성을 보이는 면이란, 단적으로 말해서 그의 엄격한 지적 절제의 자세를 말하는 것이다. 그의 문학세계 안에서는 자연발생적인 육성이나 생경한 관념적 요설 같은 것이 철저하게 배제되어진다.

 소설문학이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데 주력할 경우 자칫하면 역사적 차원에 대한 관심의 결여라는 문제점이 동반될 수 있지만 황순원의 문학은 이러한 위험도 잘 극복하고 있다. 그의 여러 장편소설들을 보면,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충실하게 살려놓으면서 일제강점기로부터 이른바 근대화가 제창되는 시기에까지 이르는 긴 기간 동안의 우리 정신사에 대한 적절한 조명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소설가 황순원(1915~2000)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디를 가려도 목을 넘어야 했다. 남쪽만은 꽤 길게 굽이 돈 골짜기를 이루고 있지만, 결국 동서남북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어디를 가려도 산목을 넘어야만 했다. 그래 이름을 지어 목넘이 마을이라 불렀다. 이 목넘이 마을에 한 시절 이른 봄으로부터 늦가을까지 적잖은 서북간도 이사 꾼이 들러 지나갔다.

 목넘이 마을이란, 어느 곳으로 가려 해도 건너야 하는 마을의 이름이다. 서북 간도로 유랑 가는 이사 꾼들이 들러 물도 마시고 발도 씻고 가는 목넘이 마을에, 어느 날 황토에 물들어 누렇게 되다시피 한 마리가 흘러들어온다. 신둥이는 몸이 지저분하고 다리까지 절었으며 유랑인들이 끌고 가다가 버린 것으로 보인다. 이 개는 마을 방앗간과 동장네 집을 돌아다니며 겨와 먹다 남긴 밥을 얻어먹으며 힘을 추스른다. 사람들에 의해 신둥이는 이제는 마을에 있지 못하고 산에 숨었다가 밤에만 내려왔다. 새벽에 신둥이를 본 마을 사람들은 미친개라 하여 잡으려 하나 도망친다. 신둥이가 마을에서 자치를 감춘 것과 함께 동장네 개 세 마리가 사라졌다가 며칠 뒤에 마을로 돌아온다. 후에 동장 형제들은 동네 개들이 그 신둥이 개와 같이 있었다는 이유로 잡아먹는다.

 얼마 뒤 새끼를 밴 신둥이가 마을 방앗간에서 잤다는 소문이 퍼진다. 다시 신둥이가 나타나자 마을 사람들이 신둥이를 잡으려 하나 간난이 할아버지가 신둥이가 굶기는 하였으나 미친개가 아니라고 믿고 살려준다. 할아버지는 이 개가 새끼를 밴 것을 알고 차마 죽이지 못하고 종아리 사이로 빠져나가게 한 것이다. 얼마 후 간난이 할아버지는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신둥이의 새끼들을 만나 보살펴 주고, 먹이도 갖다가 주고 하면서 기른다. 어느 정도 자라게 되자 강아지들을 동네 사람들 모르게 하나하나 데려와 이웃에 나누어 준다. 그래서 마을의 개들은 신둥이의 피를 이어받게 된다.

 이 이야기는 내가 중학 이삼 학년 때 목넘이 마을에 가서 들은 이야기이다. 그때는 아주 흰 서릿발이 내린 그 텁석부리 속에서 미소를 띠는 것이었다. 내가, 그 신둥이개는 그 뒤에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더니 간난이 할아버지는 금세 미소를 거두며 그해 첫 겨울 어느 사냥꾼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사실 그 후로는 통 보지를 못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공연한 것을 물어보았구나 했다.

 

1948년 간행된 단편집 <목넘이 마을의 개> 표지

 

 

 소설가 황석영이 '한국 명단편 101편' 중의 하나로 선정한 이 단편은 신둥이라는 개의 이야기를 통해 살아있는 민초의 생명력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 소설을 제대로 즐기고 감상하기 위해서는 '재미'라는 측면보다는 역사 속에 서 있는 현재의 독자를 향해 던지는  '메시지'에 유념하면서 읽어야 할 듯하다. 신둥이는 주인의 보호막을 잃은 데다가 낯선 목넘이 마을 사람들로부터 미친개 취급을 당한다. 하지만 그의 강인한 생명력은 위험을 무릅쓰고 토착 개들의 먹이그릇을 뒤지게 하며, 종내는 자기의 자손들로 목넘이 마을을 채우게 한다. 개를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이 소설은 동화와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만주 이주의 길목인 목넘이 마을을 배경으로 설정한 것으로도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액자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액자소설은 대개 내부 이야기에 신뢰성을 보유하고자 할 때 이용하는 소설 형식이다. 이 작품의 서두는 배경을 제시하는 액자인데, 역사적인 사실과 결부시킴으로써 사실성을 더해 주고 있다. 또 결미 부분에 가서 ‘내’가 외가 마을에서 들은, 전해오는 이야기라고 말함으로써 작가의 의도적 허구가 아님을 밝히고 있다. 전형적인 액자소설의 구성법을 취하면서 내부 이야기는 설화적인 - 묘사나 대화가 절제된 서술 형식을 취하고 있다. 묘사나 대화가 절제된 서술 방법은 황순원 소설에 자주 나타나는 그의 문체상의 특징이기도 하다.

 

 

 

 일제의 무자비한 수탈로 인해 많은 농민이 고향이라는 안정적인 보금자리에서 쫓겨나 만주나 북간도 등지에서 새 삶을 모색해야 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빈주먹으로 남의 땅에서 생존을 모색해야 했던 유이민들의 삶이 결코 순탄치 않았음은 당연한 일이었고, 이들은 해방 이후 조국에 돌아와 좌·우 분열의 진영논리에 시달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신둥이'와 같은 강인한 의지로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리고 후세를 낳아 그 생명을 이어갔다. <목넘이 마을의 개>를 단순한 동물 이야기로 읽는 데 그칠 수 없는 역사적인 배경이다.

 이 작품은 유랑민이 버리고 간 신둥이라는 개에 관한 이야기를 간난이 할아버지의 시각으로 서술해 나가고 있다. 미친개 취급을 받는 신둥이는 용케도 살아남아 새끼를 배게 되고, 그 새끼를 간난이 할아버지가 발견하여 사람들에게 나누어줌으로써 자손을 이어간다. 

 황석영은 이 작품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목넘이마을의 개’는 이북 그의 고향마을에서 들었다는 식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1948년 3월 ‘개벽’지에 발표한 작품이다. 10월 항쟁과 여운형의 암살, 미소공위의 결렬, 지방의 야산대 활동, 단정반대 투쟁이 전국적으로 벌어져 이미 학살이 시작되었던 무렵이다. 연이어 정부 수립과 함께 여순 사건, 제주도 4·3 사건이 숨가쁘게 이어지던 때였다. 이 소설은 그러한 현실의식에 대한 작가의 반응이 알레고리 적으로 묘사된 작품이다.

 어디선가 유랑민이 남기고 간 떠돌이 개 흰둥이가 살아남으려 마을을 배회하고 개들은 개들대로 사람은 사람들대로 동요한다. 개들끼리는 잘 어울리는데 동네 유지들은 그게 미친 개라면서 먼저 미친병이 옮았다는 동네 개들부터 때려잡아 먹고 흰둥이를 사냥하러 몰려다닌다. 동네 사람들은 모두 부화뇌동하지만 간난이 할아버지는 흰둥이가 보통의 아무렇지도 않은 평범한 시골 개라면서 어떻게든 보호하려고 한다. 이 작품은 발표 당시와 달리 여러 차례 개작을 통하여 결말 부분이 삭제되었는데 간난이 할아버지를 통하여 해방이 되었어도 민초들의 삶은 전혀 나아진 것이 없다는 직접적인 표현들이 잘려나갔다. ‘목넘이마을의 개’는 가난과 굶주림에서 벗어나지 못한 양민들의 삶과 빨갱이(미친 개)라는 막연한 죄목으로 살상이 자행되는 이남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