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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하성란 단편소설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

by 언덕에서 2021. 2. 8.

 

하성란 단편소설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

 

 

하성란(河成蘭, 1967~)의 중편소설로 2014년 [창비사]에서 동명의 소설집 표제작으로 발표되었다. 여자가 혼숫감으로 마련한 열두 자짜리 오동나무 장롱이 자신의 오동나무 관이 될 뻔한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이 소설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는, 프랑스의 전래설화이며 작곡가 오펜바흐에 의해 오페라로도 만들어졌던 <푸른 수염(Bluebeard)>에 등장하는 엽기적인 영주와 그의 여섯 아내와 겹쳐 읽을 때 그 의미는 한층 되살아난다.

 프랑스 동화 <푸른 수염>은 프랑스의 작가 샤를 페로(Charles Perrault.1628∼1703)의 작품으로 19세기 귀스타프 도레의 삽화로도 유명한 이야기다. '푸른수염(Bluebeard)'이라는 사람은 어느 폭력적인 귀족 남자와 그의 호기심이 많은 아내에 관한 유명한 동화 속의 표제 인물이다. 이 동화는 여러 전설과 실존 인물에 기초하여, 샤를 페로에 의해 지어졌으며, 1697년에 처음 책으로 발간되었다. 페로가 지은 잔혹동화 <푸른 수염>의 내용은 이렇다.

 '배경은 중세의 프랑스. 푸른 수염'이라는 별명을 가진 귀족은 여러 차례 결혼했으나 그때마다 아내가 실종되곤 하는 수상한 영주이다. 그는 어느 날, 또 다시 어느 집에 청혼하고 결국 그 집의 막내딸과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결혼식을 올린 후 막내딸은 푸른 수염이 사는 티포주 성이라는 곳에서 살게 되었다. 푸른 수염은 이 티포주 성의 모든 방을 다 열어도 좋지만, 구석에 위치한 어느 작은 방만은 열지 말라고 당부한다. 막내딸은 그 말을 충실히 지켰으나 얼마 후 푸른 수염이 지방으로 떠나고, 성에 찾아온 그녀의 언니가 꼬드기자 결국 그 방의 문을 열고 만다. 그 방 안에는 지금까지 푸른 수염과 결혼한 아내들의 시체가 꼬챙이에 꿰어서 매달려 있었다. 그녀는 두려움에 떨면서 방문을 다시 잠갔지만 방에 들어갈 때 열쇠를 떨어뜨린 결과, 열쇠에 피가 묻어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실종된 아내들은 전부 남편의 명령을 어기고 문을 열었다가 들켜서 살해된 것이다. 얼마 후, 티포주 성에 돌아온 푸른 수염은 아내가 자신과의 약속을 깼다는 사실에 분노하여 그녀를 살해하려 하는데 바로 죽이기 전에 아내에게 기도할 시간을 주었다. 마침 그때, 방문하기로 했던 그녀의 오빠들이 달려와서 푸른 수염을 무찌르고 여동생을 구출한다. 그리고 막내딸은 푸른 수염의 어마어마한 재산을 상속받게 되었다. 

 여기서 첫째 부인은 왜 살해했는지는 원작에서도 명쾌하게 나오지는 않으나 '푸른 수염'을 원작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에서는 아내의 기만이나 불륜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푸른수염>. 귀스타프 도레의 삽화

 

 하성란의 단편소설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나는 서른 두 살의 여자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다. 스물두 살쯤에 결혼할 위기가 있었는데 다행히 지나갔고 서른 두 살에 제주로 가는 비행기에서 만난 효경(제이슨)이라는 뉴질랜드 시민권을 가진 청년과 결혼을 했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태어났을 때 오동나무를 심었다. 내가 결혼을 할 때 베어서 장롱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내가 결혼하자 이 오동나무는 열두 자짜리 장롱으로 만들어져 뉴질랜드까지 운송되어 왔다. 제이슨에게는 챙이라는 화교계의 극진한 남자 친구가 있었고 나는 제이슨과의 불편한 관계를 덜기 위해 챙과도 잘 어울렸다.

 (이쯤 되면 눈치 빠른 독자는 알게 된다. 제이슨과 챙은 동성애 관계에 있고 나는 오로지 한국의 부자 부모의 송금을 위해 사용되는 미끼라는 것을) 어느 날 나는 신혼집 외딴방에서 제이슨과 챙의 밀애 광경을 숨어서 보게 된다. 내가 두 사람의 관계를 알아차리고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우고 있을 때 나는 제이슨에 의해 오동나무 장롱에 갇히고 만다.

 장롱이 관이 될 뻔한 상황이 발생하고 만 것이다. 기지를 발휘하여 가까스로 위기를 넘긴 나는 결국, 나는 상처투성이의 장롱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오고 원래 직업이었던 약사가 되어 조그만 약국에서 졸고 있다.

 

<푸른수염>. 귀스타프 도레의 삽화

 '블루비어드(Bluebeard, 푸른 수염)'라는 프랑스 전래동화와 관련지어 읽을 때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는 새로운 단계의 의미를 가진다. 샤를 페로의 동화 <푸른 수염>의 주인공 영주는 품위와 예절과 부를 고루 갖춘 멋진 신사로 제이슨처럼 뭇 여자들에게 좋은 신랑감으로 알려져 여러 차례 결혼하지만 무슨 일인지 아내들은 연이어 사라진다. 여행을 떠나면서 새로 결혼한 아내에게 성안의 모든 방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넘겨주면서, 다른 모든 곳은 마음대로 돌아봐도 좋으나 일 층 끝의 방만큼은 절대로 열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시킨다. 처음에 아내는 남편이 경고한 대로 그 방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커지는 호기심을 어찌할 수 없어 자물쇠를 따고 그 방에 들어가는데, 벽에는 푸른 수염의 전 부인들의 시체가 걸려 있다.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 미묘한 끌림을 주는 제목의 이 소설은 결혼에 대한 경고문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상대의 외모만 보지 말고 상대가 어떤 남자인지를 잘 알아보고 결혼해야 한다는 말이다. 서로를 알지 못한 채 결혼을 하지만 남편은 동성애자였고 아내는 그 비밀을 결국 늦게 알고야 만다. 꿈 같은 결혼은 금세 물거품이 되고 그녀는 남편에 의해 자신이 결혼의 상징처럼 여겼던 오동나무 장롱에 감금되고 만다. 결국 그녀는 위기를 넘긴 후 이혼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 모든 것을 함께한 오동나무 장롱과 함께 말이다. 자칫 그녀의 관이 될 뻔한 오동나무 장롱을 매개로 감옥 같은 불행한 결혼생활을 실감함과 동시에 이후에도 계속될 제이슨의 또 다른 아내들의 불행을 예상하는 그녀는 실로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인 셈이다.

 

 

 

 페로와 하성란의 작품을 비교하면서 푸른 수염의 엽기적인 행각이 드러날 때의 충격이 두 이야기의 공통된 요체에 해당한다. 하지만 정작 궁금한 사실은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는 무엇 때문에 죽었을까 하는 질문이다. 첫 번째 아내도 푸른 수염의 경고를 어기고 그 방에 들어갔다면 거기서 목격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푸른 수염의 설화 자체는 매우 풍부한 해석 가능성을 지닌 이야기이다. 작가는 그 설화의 미완 대목을 끌어들여 또 한편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 푸른 수염이 첫 번째 아내에게 숨기려 한 비밀은 원래의 설화에서는 미스터리로 남겨져 있다. 그리고 작가는 그 상상의 공간을 '푸른수염의 첫 번째 아내'라는 자기 이야기로 채운다. 이런 방식으로 작가는 설화에 담긴 초사실적 활력을 작품 내부에 끌어들였고 또한 이 설화에 나름의 재해석을 가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이야기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가지고 또 한편의 이야기를 만드는 '메타픽션'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고 그것의 해석은 독자의 몫일 듯하다. 소설 장르에서 상대적으로 억눌려왔던 설화적 상상력과 메타픽션의 계기들이 이 작품에서 은밀하게 다시 만나는 양상이다. 서사 양식에 대한 작가의 탐구심과 호기심이 대단하다. 

 

 

 

 

☞메타픽션 : 작가가 자신의 글을 되돌아보며 의심하고, 환상이나 상상을 가하는 등 글쓰기 행위에 대한 자의식이 드러나는 서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