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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박태원 단편소설 『골목 안』

by 언덕에서 2021. 1. 19.

 

박태원 단편소설 『골목 안』

 

 

 

월북작가 박태원(朴泰遠, 1909~1986)의 단편소설로 1939년 [문장] 7월호에 게재되었다. 목차에 ‘300매 전재☜ 소설’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 문학의 암흑기라고 할 수 있는 시대의 그 절망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박태원의 또 다른 작품 <천변풍경(blog.daum.net/yoont3/11299814)>의 뒤집힌 세계라고도 불리는데, <천변풍경>이 공간의 중심이 되고, 인물들은 그 공간을 꾸미는 소도구였다고 한다면 이 작품은 그 관계가 정반대로 뒤집혀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빈민가 골목 끝이 이 공간의 배경이고 중심인물은 왕년에는 부자였다가 몰락한 영감이 된다. <천변풍경>의 경쾌함이 이 작품에서는 한없는 우울함으로 바뀌어 있는 점이 주목되는 부분이다.

 임화☜는 1939년 7월 21일 [조선일보] 4면 <7월 창작평>에서 ‘역작(力作) 「골목 안」의 가치’라 하여 이 작품에 대해 호평했다. 임화는 <천변풍경>으로부터 시작된 박태원의 문장은 ‘묘사되는 세계의 특이함’에 가치를 두고 있다며 이 특이함은 단순해서 세태 풍자를 넘어 ‘엘레지’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평하였다. 단편소설 「골목 안」은 <천변풍경>과 더불어 근대적 질서에 편입하지 못하고 소외되어 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일상을 세태 묘사한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가운데가 박태원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정동 골목 안 막다른 집에 순이네 가족이 살고 있다. 예순일곱이 된 순이네 영감은 손님 없는 복덕방을 지키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맏아들 인섭은 가족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간 지 7년째 소식이 없고, 그 일로 며느리도 집을 나갔다.

 둘째 아들 충섭은 툭하면 싸움질을 하더니 권투 선수를 하겠다며 나서지만 경기로 벌어들이는 몇 푼 수익은 모두 탕진하고 집에 내놓지도 않는다. 그나마 희망을 갖는 셋째 아들 효섭은 중학교 시험에 낙방하여 고등소학교를 다시 다녀야 한다.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이는 카페 여급으로 나가는 큰딸 정이다. 영감은 그런 딸이 안쓰럽지만 다른 도리가 없다. 둘째 딸 순이는 부잣집 아들 문주와 사귀지만 자신의 집이 문주네 집보다 기울어 걱정뿐이다. 가난한 순이네 사정을 아는 문주는 순이를 책임지려 하지만 이를 안 문주의 아버지는 그들의 교제를 허락하지 않는다.

 문주의 집안일을 봐주는 김 서방이 문주를 시골로 내려 보낸 후 설득시키자며 꾀를 낸다. 문주가 시골로 내려간 사이 김 서방이 영감을 찾아와 딸 단속을 잘 시키라며 협박을 하고 간다. 영감은 카페 여급인 정이가 아닌 순이의 행실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자 망연자실한다.

 효섭의 고등소학교 입학식 날, 아이들의 진학 걱정을 하는 학부형들이 말쑥하게 차려입은 영감에게 아이들을 어떻게 키웠냐고 물어본다. 영감은 얼마 전 복덕방에서 들었던 어느 노인의 이야기를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 양 둘러댄다. 영감은 속으로는 하나같이 말썽인 자식들을 걱정하면서 큰아들은 의학전문학교를 나와 대구의 도립병원 의사로 있고, 둘째 아들은 고등공업학교를 나와 광산 기수를 하는데 이번에 막내아들이 소학교에 입학한다며 씁쓸하게 웃는다.

 

구보 박태원( 朴泰遠. 1909-1986)

 

 작품의 내용은 순이의 일기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나간다. 근대화해 가는 경성(서울) 가운데서도 소외되고 가난하기만 한, 그리고 구습에 얽매어 살아가는 경성 서민의 생활을 보여줌으로써 시대의 변천과 운명을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박태원의 소설에 있어 특기할 사항은, 문체와 표현기교에 있어서의 과감한 실험적 측면과, 또 시정 신변의 속물과 풍속세태를 파노라마식으로 묘사하는 소위 세태소설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특징은 그가 예술파 작가임을 말해주는 중요한 요건이다. 일제강점기 말에 발표한 <우맹(愚氓)> 「골목 안」 <성탄제> 등에도 이러한 경향을 잘 드러낸다.

 박태원은 8ㆍ15 광복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함으로써 작가의식의 전환을 꾀한 바 있다.  6ㆍ25 전쟁 중 서울에 온 이태준ㆍ안회남 등을 따라 월북해 1955년 평양문학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1956년 남로당 계열로 물려 평안남도 강서지방으로 추방되어 작품 활동이 금지되었다가 1960년 복위되었다. 1977년 국기훈장을 수여받았다. 그의 아내 권영희의 구술로 집필된 <갑오농민전쟁>은 북한 최고의 역사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구보학회 김근호는 이 작품을 다음과 같이 평했다.

 (전략) 박태원 소설에서의 골목과 이웃은 매우 중요한 의미화의 장치인데, 다수의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여 주목할 만한 의미항을 형성한다. 즉 박태원은 자신의 소설에서 골목이라는 공간과 그 속의 인정세태를 이웃이라는 관계 개념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제강점기 하에 발표된 박태원 소설을 골목과 이웃이라는 코드로 읽어볼 필요가 있다. 태원 소설에서의 골목은 진정한 이웃을 만들어내고 이웃의 삶을 주조해 내는 형성적 힘을 지닌다. 박태원은 그에 대한 소설적 탐색의 시도 끝에 균형 잡힌 이웃 윤리와 골목의 정치성에 도달하였다. 식민지 도시 경성에 대한 치밀한 관심은 다양한 소설적 실험을 거쳐 행복한 삶에 대한 희망과 그 희망 이 좌절되는 비극적 현실에 대한 형상화로 귀결되는 성과를 낳았다. 골목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도 이웃이 성립되겠지만, 당시 그들을 바라보는 작가 박태원에게도 이웃은 역시 연민과 동정의 시선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사람다운 삶의 가능성을 골목과 이웃에서 찾고자 했던 박태원은 비관적 인식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과정에서도 박태원은 골목과 이웃의 서사를 통해 자율적이면서도 공존하고 연대해야 하는 이웃의 생태학을 보여 주었다. 박태원 소설의 골목과 이웃 탐구는 당시 전체주의적 사회로 향하는 식민지 상황에 대한 미적 저항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런 점에서 박태원의 소설은 탈식민의 서사이다.(후략)

 


 

 

전재 : 소설이나 논문 따위의 글을 출판물에 실을 때에 전체를 다 실음.

 

임화 : 시인ㆍ평론가(1908~1953). 본명은 인식(仁植). 카프(KAPF)를 주도하였고 1947년에 월북하였다.

           저서에 시집 ≪현해탄≫, ≪찬가(讚歌)≫, 평론집 ≪문학과 논리≫ 따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