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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계용묵 단편소설 『별을 헨다』

by 언덕에서 2021. 2. 16.

 

계용묵 단편소설 『별을 헨다』

 

 

 

계용묵(桂鎔黙 ,1904~1961)의 단편소설로 1946년 12월 24일부터 31일까지 7회에 걸쳐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다. 이후 1949년 [수선사]에서 표제작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이 작품은 광복 후 월남한 사람들의 애환과 인정을 잘 보여주는 작가의 후기 단편 중 대표작이다. 주인공이 분노나 정의감 있는 인물로 그려진 점이 주목할 만하다. 광복 후의 어려운 시대상황이 잘 드러나 있어서 사료적 가치도 풍부하다.

 작가는 과작인데다가 문장에 대한 엄격한 수련과 통제는 특출하기로 유명하다. 그에게 작품이란 인생의 반영이 아니라, 언어로 조각된 창조물일 듯하다, 이러한 태도를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견지해 나갔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신념이 실상은 한국의 선비 기질에 면밀하게 이어져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들은 상당한 평가를 받는다.

 그 중에서도 <심월(心月)> <백치 아다다> 「별을 헨다」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워낙 과작이고 또 지나치게 예술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장편이 되지 못하고 단편으로 일관되었다. 그 단편도 <이불> <물> <매미> 등 매우 짧은 콩트로 된 것도 적지 않다. 매사에서의 엄격성이 이처럼 소재와 작품의 길이를 한정한 것으로 판단된다.

 

1945년 해방 당시의 남대문 시장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만주에서 살다가 독립이 되자 아버지의 유골을 파서 고국으로 돌아온 어머니와 주인공 '나'는 일년이 다 되어 가지만, 집 한 칸 마련하지 못하고 초막에서 지낸다. 찻길보다 배편이 안전하다고 배를 타고 돌아와 인천에 상륙하니 삼팔선은 그어졌고, 국경 아닌 국경(삼팔선)을 넘어도 보았으나 동행자가 총에 거꾸러지는 걸 보고는 다시 돌아왔다. 서울도 내 땅이라 보퉁이를 풀어 놓았지만 마땅히 거처할 곳이 없다. 그나마 지금까지 살고 있던 초막마저 비워야 할 형편이 되었다.

 나는 진고개 너머의 어떤 일본 집에 수속없이 들어와 사는 사람을 내쫓고 정식으로 수속하여 그 집에 살게해 주겠다는 친구를 만나러 나선다. 만주에서 나올 때 배 안에서 우연히 사귄 친구로 그는 일방적으로 약속을 해 놓고 갔다. 호의는 감사했지만, 그것이 도리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친구를 만나 거절의 뜻을 전하려고 가는 길이다.

 친구에게 거절의 뜻을 표하자, 친구는 한심하다고 하다가 나중에는 반편이라고 꾸중을 한다. 나는 복덕방을 전전하며 집을 알아보지만 어디를 찾아다녀도 방은 없다. 젊은 놈이야 한데서 겨울을 넘길 수 있지만, 어머니는 환갑을 넘긴 몸이다. 정말 이북으로 가 보아야 하나 생각하니 이북이 더욱 간절해지기만 한다.

 아들이 돌아오는 소리를 듣고 어머니는 기대에 차 반긴다. 어머니는 낙엽을 긁다가 또 들켜서 곤욕을 치루었다고 말한다. 나는 어머니에게 아무래도 이북으로 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말을 한다. 이튿날 담요를 팔아 여비를 마련해서 서울역으로 간다. 청단까지 가는 차표를 들고, 하나 남은 담요에는 아버지의 유골을 말아 등에 지고 서 있을 때, 고향 마을 사람을 만나 감격하여 손을 잡고는 반가워한다. 그들은 이북에서 이남으로 오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북은 살 곳이 못된다고 말한다. 그들은 또한 이남에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러한 그들에게 이남도 마찬가지라고 하니 못내 실망을 한다.

 두 집 식구들은 서로 한심해 하며 우두커니 서 있다. 어머니와 아들은 북으로 가도 시원찮을 것 같다고 말하면서 서성거리는 동안에 승객들은 다 빠져 나가고 대합실 안에 차가운 공기만이 쨍하게 휘이 떠돈다.

 

1949년 [수선사]에서 간행된 창작집의 표지, 나무로 된 집의 창에서 별을 헤는 사람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 작품은 만주에서 궁핍한 생활을 하다가 해방 후 희망을 품고 귀국했지만, 여전히 가난한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을 내세워서 당시 일반 민중의 힘들었던 삶을 잘 드러낸다. 하지만 주인공은 궁핍한 삶에서도 인간적인 애정을 잃지 않는다. 당장 자신이 추운 겨울을 거적 따위로 겨우 바람이나 막으며 지내야 될 상황에 처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남에게 줄 정도로 양심을 버리지는 않는다. 자신도 집에서 쫓겨났던 경험이 있기에, 자신으로 인해 쫓겨나게 될 그 사람을 동정하고 가엾게 여긴다.

 그에 반해 그가 귀국 도중 배에서 만난 친구는 그와는 다른 인간성을 가진 사내이다. 잠바를 파는 사내가 분명히 어려운 형편임을 알고 있음에도, 반도 안 되는 값으로 잠바를 흥정하고, 그것을 당연시 여긴다. 그것이 살기 힘든 이곳에서 살아갈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궁핍한 생활로 인해 인정과 타인에 대한 배려를 잃을 수밖에 없는 당대 현실을 반영하는 인물이다. 서울역에서 만난 고향 처자 역시 살 곳이 없어 정처 없이 떠도는 당대의 궁핍한 삶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해방 이후 분단된 현실에서 가장 큰 사회적 문제점 중의 하나인 귀환민들의 주택난을 반영한 작품으로서 월남인들의 애환을 통해 당시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계용묵 후기 단편 중의 대표작품이다. 특히, 현실에 대해 관조적 태도를 보여온 작가의 기존 태도와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현실에 밀착하여 시대적 혼란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현실에 대해 총체적인 인식에 도달하지 못하면서 현실에 대한 환멸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해방공간에 대한 성찰을 드러내는 중요한 작품이다.

 “자네도 이런 데 눈뜨지 않으면 파리똥 세게 되네, 괜히…….”

 “파리똥두 집이 있어야 헤지, 난 별만 헤네”

 작품의 제목에서 나타나는 ‘별’은 노숙자가 바라보는 하늘의 별이다. 가난한 삶, 그러나 최소한의 양심은 잃지 않으려는 의지, 그리고 막연하지만 다가오리라 믿고 있는 희망을 나타낸다. 주인공은 가진 것이 없어 심지어 파리똥이 붙을 만한 천장마저 없는 곳에서 겨울을 나겠지만, 그래도 하늘의 별을 세며 이겨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