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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청준 단편소설 『서편제(西便制)』

by 언덕에서 2021. 2. 2.

 

이청준 단편소설 『서편제(西便制)』

 

 

이청준(1939~2008)의 단편소설로 1992년 발표되었다. 「서편제」는 <소리의 빛>, <선학동 나그네>와 함께 작가의 연작소설로, 한(恨)과 소리 혹은 억압과 예술의 관계가 나타난 작품이다. 「서편제는 한과 소리, 억압과 예술에 대한 주제를 다룬 총 8편으로 구성된 연작소설집 <남도 사람> 중에 제일 먼저 창작되었다. 이후 연작소설집 제목을 「서편제로 바꾸어 발간하기도 하였다.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소리꾼 남매의 가슴 아픈 한에서 피어나는 소리의 예술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작품은 일정한 직업 없이 떠돌아다니는 소리꾼이 자기 딸 또한 소리꾼으로 묶어두기 위해 두 눈을 멀게 한다는 내용이다. 비정의 소리꾼 아버지는 딸이 잠자는 사이 두 눈에 염산을 넣기를 결심한다. 그렇게 하면 눈으로 뻗칠 사람의 신령스러운 기운이 귀와 목청 쪽으로 옮겨가서 목소리가 비상해지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아버지가 추구하는 좋은 소리를 위해서 일부러 딸의 두 눈을 멀게 한다는 비극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다. 소설의 작중 화자와 주인공이 이중, 삼중으로 겹쳐지는 방법을 통해 진술되어 각 연작소설이 이어지고 있다.

 이 작품과 이어지는 7편의 연작소설에는 <소리의 빛> <선학동 나그네> <새와 나무> <다시 태어나는 말> <살아 있는 눈> <눈길> <해변 아리랑>이 있다. 그중에서 <소리의 빛>은 이 작품의 속편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서편제 Sopyonje> , 1993 제작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전라도 보성군 보성읍 밖의 한적한 길목 주막이 '소릿재 주막'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이곳에 소리꾼 여인과 북장단을 하는 사내가 나온다. 여자는 그 집의 주인으로 혼자 주막을 운영하고 사내는 하룻저녁 손님이다. 춘향가, 수궁가 등을 들으며 소리에 빠져들어 간 손님은 주막 여인에게 소릿재의 내력을 묻는다. 손님의 재촉으로 여인은 그녀에 앞서 소리를 하다가 이제는 죽은 어느 소리꾼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어느 해 가을, 전남 보성에서 한 소리꾼이 어린 딸 하나와 떠돌며 소리를 하며 살았다. 소리꾼인 아버지가 죽자 딸이 혼자 남아 소리를 하다 떠난다. 소리꾼의 소리는 어린 딸에게 이어졌는데 그 딸의 소리에서 사람들은 아비 소리꾼의 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주막 여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내는 자신의 과거를 회상한다. 한 소리꾼이 사내가 어릴 적에 사내의 어머니를 겁탈하였는데, 결국 어머니는 딸을 하나 낳고 죽어 버린다. 나중에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사내는 소리꾼 의붓아비를 죽이려 하다가 실패하고 소리꾼 부녀로부터 도망친다. 주막 여인은 자신에게 소리를 가르쳐 준 여인이 장님이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여자의 아비가 여자가 잠든 사이 눈에 청강수(염산)를 찍어 넣었다는 것이다. 사내는 이 말에 더욱 충격을 받아 여동생을 찾고 싶다는 소망을 말한다. 

 

영화 <서편제 Sopyonje> , 1993 제작

 이 작품 말미에서의 이야기 진행은 독자를 소름끼치게 만든다. 애당초 소릿재 주막에 들른 손님이 원래 그 소리꾼의 의붓아들이었음을 그리고 그의 딸 역시 의붓동생이었음을 밝혀가기 때문이다. 즉 소리꾼은 주막 손님의 어머니가 관계했던 남자였고, 그 딸은 그 결과로 태어난 소생이었다.

 「서편제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소리꾼 남매의 가슴 아픈 한과 여기에서 피어나는 소리의 예술을 그린 작품이다. 일정한 직업 없이 떠돌이 하는 소리꾼과 그의 딸의 이야기에서 소리에만 미쳐 살아가는 소리꾼이 그 딸 또한 소리쟁이로 만들기 위해 딸이 잠자는 사이 두 눈에 염산을 넣어 두 눈을 멀게 한다. 이렇게 하면 눈으로 뻗칠 사람의 신령스러운 기운이 귀와 목청으로 옮겨가 소리가 비상해진다는 것이다. 즉 좋은 소리를 위해 딸의 눈을 멀게 했다.

 이어지는 소설은 <소리의 빛>으로 「서편제의 속편이라 할 수 있다. 「서편제의 두 주인공, 즉 의붓남매가 역시 전남 장흥 땅 산골 주막집에서 우연히 상봉하는 것을 그리고 있다. 주막집 주방에서 일하며 묻혀 살아가는 시각장애인 여동생을 찾아 떠돌다 그곳에 나타난 오라비는 그녀에게 소리를 청한 다음 자신은 북장단을 듣고 밤새도록 소리판을 벌인다. 그리고 새벽에 다시 헤어진다. 소설 제목 그대로 만질 수 없고 채울 수 없는 소리의 빛처럼 밤새 반짝이던 빛마저도 오간 데 없이 흘러가 버리고, 날아가 버린 소리의 모습만이 남아 있다.

 

 

 1990년대 조상들의 정신세계를 회고하며 그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은 뭐니 뭐니 해도 영화 「서편제가 아닐까 한다. 이 작품은 우리의 기억 속에 잠자고 있던 ‘조상의 얼’을 더듬은 덕분에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영화 「서편제는 별로 유명하지 않았던 이청준의 원작을 다시 읽어보게 만들었다. 

 영화 「서편제는 천년 동안 축적되어 온 ‘정신의 긴장’을 조명했다. 소리의 완성을 이루겠다는 무서운 집념의 세계를 정말 아름다운 영상과 겹쳐서 그려냈다. 그러나 「서편제」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이 ‘정신의 긴장’을 괴물 같은 병적인 집착으로 표현했다. 유봉은 소리를 잘 낼 수 있게 한답시고 일부러 수양딸의 눈을 멀게 만든다. 또 유봉이 눈먼 송화의 머리를 빗겨 주고 비녀를 꽂아 주는 장면을 상기시키면서 근친상간 관계라는 의심의 눈길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 마지막 장면에서 송화는 사생아로 보이는 여자아이를 데리고 다닌다.

  그런데 좀 냉철하게 따져보면, 우리 조상의 지혜는 온건함과 순리의 자연스러움에 있었지 이런 식의 병적인 강박증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 조상들은 아악(雅樂)처럼 유장하고 온건한 것을 아름답다고 여겼다. 그럼에도 「서편제」는 소리의 완성을 위해 수양딸의 눈을 멀게 만드는 정신병자 같은 강박증이 마치 조상의 정신세계를 대변하는 것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여지를 남겼다. 「서편제」는 우리 조상들이 키워왔던 ‘정신의 긴장’을 건드렸지만, 그 특질은 간과했다. 차라리 「서편제라는 소설과 영화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우리는 2000년경에 조상의 정신세계를 정확하게 읽어낸 책과 영화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