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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김연수 장편소설 『밤은 노래한다』

by 언덕에서 2020. 12. 31.

 

김연수 장편소설 『밤은 노래한다』

 

 

김연수(金衍洙. 1970~)의 장편소설로 2008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간행되었다. 작가의 세 번째 역사소설 『밤은 노래한다』는 일제강점기 때 지식인 계층으로 만주에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한 남자의 애인이 죽으면서 펼쳐지기 시작한 사건들을 추적한 작품이다. 어느 날 주인공은 연인이 죽기 직전 보내온 한 장의 편지를 받으면서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게 된다. 이 작품의 배경은 1930년대 초반의 북간도로 주인공의 뒤를 따라가면 항일유격 근거지에서 일어난 비참한 사건, 즉 ‘민생단 사건’과 마주하게 된다.

 ‘민생단 사건’은 오늘날의 북한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김일성을 비롯한 항일무장투쟁 출신 지도자들 역시 민생단 사건의 격랑을 피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남긴 트라우마는 주체사상, ‘어버이 수령’과 인민들 간의 독특한 혈연적 유대관계, 자주노선, 정치적 생명론 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역사학자 한홍구는 지적했다.

 이 소설은 박도만, 최도식, 안세훈, 박길룡 등 혁명을 꿈꾸는 네 명의 중학생과 그들의 친구인 이정희라는 신여성, 그리고 만철(滿鐵)의 조선인 측량 기사로 이정희를 사랑했던 김해연이라는 남자에게 찾아온 잔인한 세상에 관한 이야기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역사물을 표방한 청춘소설이기도 하다.

 

▲ 민생단 사건 관련자들의 기록을 불태우는 북한의 상상화로 추정되는 위 그림은 김일성의 너그러움을 표시한 듯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배경은 1930년대 초반, 만주철도의 직원으로 대련에서 일하다가 용정으로 파견된 20대 청년 김해연이 주인공이다. 그는 측량작업을 하면서 간도 임시파견대 중대장인 일본인 나카지마 타츠키 중위와 친해지게 된다. 이후 김해연은 민족파 공산주의자 박길룡의 소개로 알게 된 신여성 이정희를 좋아하게 된다. 이후 네 명은 자주 술자리를 갖는다. 좌익 혁명조직의 일원인 인텔리 여성 이정희는 이 모임을 통해 토벌대의 정보를 수집하여 혁명조직 상부에 보내다가 발각되자 김해연에게 ‘어서 피해라’는 비밀 메시지를 남기고 자살한다.

 김해연은 일본 경찰에 연행되어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 과거 공산주의운동을 하다 전향하여 영사관 경찰보조원으로 근무하는 최도식을 만나게 된다. 조사를 받고 무혐의로 풀려난 김해연은 대련으로 돌아갔으나 연인이었던 이정희의 자살이라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아편중독자가 된다. 다시 용정으로 돌아온 김해연은 이정희가 목을 맨 나무에 자신도 목을 매어 자살을 시도한다. 김해연은 죽지 않고 살아났으나 그 심리적 후유증으로 말문이 막히고 만다.

 이후 김해연은 용정의 한 사진관에서 일하게 되는데 하필 그곳은 공산주의 혁명조직과 연관된 곳이다. 김해연은 그곳에서 공산당 밀정 역할을 하는 빨치산 처녀 여옥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김해연은 고등학교 시절 은사인 나카무라 선생의 권유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여옥과 함께 경성으로 떠나기로 약속한다. 경성행을 얼마 앞둔 두 사람은 일본군 토벌대의 총격을 받아 여옥은 오른쪽 다리를 잃는다. 여옥은 혁명조직의 재봉대에서 일하게 되고 김해연 역시 빨치산 근거지에 남아 혁명의 격랑에 휩쓸리게 된다.

 이후 중국공산당은 만철 직원 출신인 지식분자 김해연의 입당을 승인하고, 그를 대련으로 다시 보내 혁명사업을 시키려 한다. 대련으로 떠나기 전, 여옥에게 인사를 하려 유격대장 박도만과 함께 약수동으로 향하던 김해연은 어랑촌 빨치산 소비에트에서 민족주의 공산조직으로부터 민생단 혐의자로 체포된다. 

 학생 시절부터 읽힌 이들 관계의 파국은 비극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된다. 살아남은 김해연은 혼미한 정신으로 권총을 품고 용정의 총영사관으로 찾아가 옛 애인 이정희를 밀고한 최도식을 죽이려다 미수에 그친다. 대신 그는 간도 임시파견대의 중대장 나카지마를 찾아가 그의 머리에 총구를 겨눈다. 김해연은 나카지마를 납치하여 어랑촌 근거지에서 고립된 조선인들을 빠져나가게 하는 것을 석방 조건으로 내건다. 오직 조선 사람만으로 조선혁명군을 조직하겠다던 박길룡은 이때 포위를 빠져나오다 김해연에 의해 사살된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른 후, 김해연은 다시 용정으로 가, 총영사관 경찰을 그만두고 만주 중앙은행 용정사무처에서 일하는 최도식을 암살하려 하다 그로부터 혼돈의 진원지가 된 이정희의 마지막 모습과 그녀의 편지가 전해진 사연을 듣는다.

 

 

 이 소설은 잔인한 청춘물이다. 시대와 배경은 1930년대 용정 등에서 벌어진 간도의 <민생단 사건>이지만, 펼쳐지는 사연은 당대를 살아간 젊은이들의 삶과 고통이다. “시체만이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폭력적인 땅에서 객관의 세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겪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소설은 식민지 조선이라는 암울한 현실과 상관없이 일신의 영달을 위해 살아가던 주인공 김해연의 시선과 목소리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만철(남만주철도주식회사) 측량 기사이던 그는 사랑을 잃고 방황하다 역사적 상황에 부닥친다. 이를 통해 그의 삶은 통째로 변화된다. 그 중심에 “지금 어디에 있나요? 제 말은 들리나요?”라고 묻는 신여성 이정희의 편지 때문이다.

 사랑과 혁명, 동지와 배신, 가치와 환멸. 그 속에서 김해연은 자신을 둘러싼 ‘비밀’에 한 발짝 더 다가간다. 인민 해방과 공산 혁명이라는 현실 속으로 들어감에 따라 그는 세상이 빛과 어둠, 진실과 거짓, 고귀함과 하찮음 따위로 나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밤이 노래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그리고 그 밤은 “이제는 움직이지 않는 시체만이 자신이 누군지 소리 내 떠들 권리를 지닌” 사건을 드러낸 긴 시간이기도 하다. 그 사건은 <민생단 사건>으로 목숨을 함께 걸었던 항일 혁명 동지끼리 의심의 늪에 빠져 서로 죽고 죽이는 장면은 실제 벌어진 일이었다.

 

 

 

 <민생단 사건>은 간도 지역에서 독립운동가들이 일본의 첩자라는 누명을 쓰고 중국공산당에 살해된 사건이다. 일제의 괴뢰정권인 만주국이 수립되자 한·중 민족을 분열시키고 항일유격대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일제는 민생단을 조직했다. 민생단의 첩자들이 항일세력 내에서 '간도 자치'를 내세우며 분열 공작을 획책하자 항일유격대 세력들은 첩자를 색출하기 위한 ‘반민생단투쟁’을 전개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중국공산당 동만 특별위원회와 항일유격대의 지도직을 차지한 중국 공산주의자들이 민족 배타주의에 빠져 한국인 항일투사의 대부분을 민생단으로 간주해버렸다. 그 결과 500여 명의 항일운동가가 체포·살해되었으며, 많은 하부조직이 마비 상태에 빠졌다. 항일세력 내에 막대한 피해를 가져다준 ‘반(反)민생단 투쟁’은 이후 동만 특위 및 동북 인민혁명군 제2군 간부회의를 계기로 그 폐해가 시정되기 시작했다. 

 ‘조선 혁명을 위해 싸우려면 먼저 중국혁명부터 이루어내야 한다’라는 현실적 입장의 ‘국제주의자’ 박도만 일파와 동만(東滿)에서 중국공산당에 입당한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이 “모두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면서 죽어가는‘ 현실을 견딜 수 없었던 민족적 성향이 강한 박길룡 일파는 민생단 문제로 격돌하게 된다. 시작부터 모순된 조건 아래에서 혁명을 달성하기 위해 달려들었던 젊은이들이었지만 끝내 혁명의 숭고한 뜻을 품은 동지들끼리 서로를 의심하고 총부리를 겨누어야 했던 <민생단 사건>은 처참하다. 

 작가는 이를 소설로 담아내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려갔으나 끝내 그것이 실패하면서 단순히 통계적 수치로만 남게 된 사람들 각각의 고유한 면을 서술했다. 그리고 이는 1930년대 초반 북간도라는 특수한 상황에만 갇히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수많은 ‘김해연’들에게 ‘비참하게 죽는 순간에 역설적으로 얻게 되는 진실’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민생단 사건]  

 1931년 9월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자, 만주 각지에서는 조선혁명군과 한국독립군 등 조선인 독립군 부대와 중국인 항일 의용군이 각지에서 봉기하여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며, 두 항일 세력간에 연합전선을 형성하려는 움직임도 구체화되었다. 이에 당시  [매일신보] 부사장으로 있던 박석윤은 일제의 만주침략을 적극 뒷받침하고 한ㆍ중 양 민족을 이간시키며 우리 민족의 항일투쟁을 저지하기 위해 그해 10월경부터 조선총독부 및 간도일본영사관 당국의 후원과 조종을 받고 밀정조직  [민생단]을 조직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였다. 그는 먼저 동민회(同民會) 계열의 친일주구배 조병상 및 북간도의 친일파 김동한, 김택현, 이경재, 이인선, 최윤주 등과 협의하여 민생단 조직준비를 시작하였다.  

 계속해서 천도교 지도자 이인구와및 전성호 등 친일 민족개량주의자와 반공주의자들을 규합한 그는 일본군 대좌 출신 박두영을 단장으로 하는 [민생단]을 1932년 2월 5일 룽진(龍井)에서 마침내 발족시켰다. 이 단체는 겉으로는 생존권확보(생활안정)와 독특한 문화건설, 자유로운 천지의 개척(낙토의 건설)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한ㆍ중 양 민족을 이간하여 중국공산당 조직 및 산하대중단체를 파괴하고 독립군 등 무장 세력을 탄압하려는 반공, 친일의 간첩(밀정) 조직이었다.

  [민생단]은 우여곡절 끝에 그해 7월에 곧 해체되었지만 이들 주구배들의 특수공작은 어느 정도 성공하여 이른바 박두남 체포사건을 계기로 조선인 혁명운동가와 중국인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게 되었다. 즉, 이를 고비로 중국공산당 만주성 위원회 산하의 동만특위(東滿特委) 등 한,중 양 민족연합의 항일무장투쟁 세력 내부에서 조선인 대원을 거의 일제의 밀정으로 단죄하는 잘못된 숙청작업이 진행되었다. 이리하여 1935년까지 간도지역 에서만 200여 명(일설에는 500여 명), 기타 지역까지 합하면 500여명의 조선인 운동가들이 무고하게 민생단원으로 몰려 희생되는 참변이 벌어졌다. 

  결국 간도 자치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민생단 사건]으로 인해 만주의 한ㆍ중 항일운동 세력은 커다란 타격을 받게 되었고 두 민족간의 연대는 와해될 위기에 빠졌다. 중국공산당 계열의 운동세력이 주도한 항일무장투쟁은 물론, 우리 민족의 민족주의 계열 세력이 주도한 독립운동도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