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 현대소설

염상섭 단편소설 『전화(電話)』

by 언덕에서 2021. 1. 6.

 

염상섭 단편소설 『전화(電話)』

 

 

횡보 염상섭(廉想涉. 1897~1963)의 단편소설로 1925년 [조선 문단]에 실렸다. 100년 전, 전화를 놓은 다음 날부터 전화를 팔기까지의 며칠 사이에 어느 가정에서 일어난 작은 파문을 그리고 있다. 일상적인 이야기 속에서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고, 현대의 우리 자신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 작품은 우리 이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재 세계와 흡사하다. 그만큼 이 소설은 현실적이고 사실적이다. 1920년대 서울을 무대로 한 이 작품은 전화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부부간의 갈등과 인간의 약삭빠른 이해타산을 치밀한 사실주의 기법으로 묘사했다. 

 염상섭은 민족문학의 실천적인 방법으로서 삶의 모든 문제의 핵심에 돌입할 수 있는 소설의 가능성을 타진하였다. 그 자신의 문학적 견해를 실천에 옮겨 놓음으로써 근대소설의 새로운 장을 열어 놓았다. 그에게서 삶의 가치는 야인 정신으로 일관한 데 있다. 언제고 조선 선비의 강건한 자세와 온화한 손길을 함께 하면서 외유내강한 그의 생활은 늘 가난했지만 정신적으로는 풍요했다고 전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이 주사는 전화 추첨에 뽑혀 아내의 옷과 패물 등을 전당포에 잡히고 300원에 전화를 놓았다. 아내는 이틀 동안이나 애타게 첫 번 전화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렇게 기대했던 전화는 아침 일찍 기생 '채홍'이가 남편을 찾는 전화였으므로 아내는 몹시 기분이 상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회사에 출근한 이 주사는 '채홍'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기분이 밝아져 퇴근길에 방문했으나, 채홍이는 약속이 있다며 아쉬운 듯 밤에 들러 줄 것을 당부한다. 그러나 이 주사는 아침에 전화로 인한 아내의 심술을 생각하며 셔츠와 장갑을 선물로 사서 돌아와 아내의 마음을 돌린다. 아내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던 이 주사는 직장 동료인 김 주사의 전화를 받고 채홍이를 생각하며 외출을 한다. 그동안에 아내는 채홍이가 남편을 찾는 전화를 받았고, 남편으로부터 채홍에 대한 문의 전화를 받는다. 아내는 마음이 상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늦게야 귀가한 이 주사에게 전화의 쓰임이 건전하지 못함을 불평하며 못마땅해한다.

 이 주사는 아내를 달래며 전화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것을 제의한다. 마침 이 이야기를 들은 김 주사는 자신의 아버지가 전화를 오백 원에 살 것이라 말한다. 이 주사는 이 돈으로 전당포에 잡힌 아내의 옷을 찾고, 본집과 기생 '기화'에게 김장을 마련해 준 후 나머지 돈을 용돈으로 쓸 생각에 흡족해한다.

 그러나 김 주사는 부친에게 칠백 원에 전화를 샀다고 거짓말을 하고 이백 원을 가로챈다. 그리고 이 주사를 속이고 몰래 사귀어 온 '채홍'이와 즐기며 새 양복을 맞추어 입는다. 이 사실을 안 이 주사의 아내는 김 주사 부자를 찾아가 이백 원을 돌려받고 좋아한다. 전화를 놓은 지 며칠 사이에 사백 원이나 번 것이다. 아내는 이 주사에게 전화를 다시 놓을 것을 은근히 권한다.

 

 

 염상섭 소설의 미덕은 워낙 많지만 크게 두 가지로 분별할 수 있다. 첫째, 늑장 좋은 횡보 문체의 확립과 둘째, 여성 화자의 자기 정체성 과시가 그것이다. 거의 수집가적 집념으로 우리말을 한껏 끌어모으고 그것들을 풍요롭게 구사한 횡보의 만연체 스타일의 문체는 산문의 바람직한 질량을 툭박지게 부풀려 놓았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학사적인 맥락에서 정산하며 읽을 때 횡보 문체의 이런 성과의 영향이 지금도 한국 소설 일반에 존재하고 있음을 손쉽게 감지할 수 있다.

 흔히 통속 취향이라고 무시하거나 오독하고 있는 대목이 염상섭 소설에서 여성 화자이다. 작가의 소설들을 동시대의 다른 작가 작품들은 말할 것도 없고 요즘 소설들과 비교해 보아도 그의 여성 화자들은 단연 개성적이고 그 능동적 역할이 압도적이다. 작가 활동 당시에는 여성을 사물시할 때 여성은 설 자리를 잃고 권선징악형의 대중소설만 맹위를 떨치게 되었다. 여성의 지위는 ‘근대성’의 한 지표다. 염상섭 소설에는 성녀도 어머니도 아닌 인간으로서 여성성이 힘차게 그 소임을 떠맡고 있다.

 

 

 단편소설 「전화」는 주인공의 집에 전화를 놓은 다음 날부터 타인에게 전화를 되파는 날까지 불과 며칠 사이에 일어난 내용의   소설로 사건을 통해 당대의 사실주의 문학을 접할 수 있다. 

 첫째 사건은, 이 주사 부부의 갈등과 대립이 중심이다. 아내는 남편의 뜻에 따라 문화생활 욕구로 자신의 옷과 패물을 전당포에 맡기고 전화를 놓지만, 전화는 오히려 아내에게 마음의 상처와 갈등을 가져다주는 괴물로 변해 버린다. 자신의 옷가지와 패물을 집어삼켰고, 기생이 남편을 찾는 등 온종일 부아를 돋우어 놓고 밤잠까지 빼앗아가는 괴물이다. 또, 미심쩍었던 남편의 부도덕한 생활이 밝혀져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둘째 사건은, 전화의 매매를 둘러싸고 이익에 약삭빠른 인간들의 생활 모습이 실감나게 펼쳐진다. 이 주사는 아내와의 갈등 해소를 위해 김 주사 아버지에게 전화를 팔게 되는데, 김 주사는 중간에서 전화 판맷값을 속여 가로챈다. 등장인물들이 이처럼 서로 속이고 속고 하지만 이들은 깊이 고민하거나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 이것은 일상적인 생활의 한 부분이고 삶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독자는 이 소설에서 살아 있는 인간의 생동감을 맛볼 수 있고,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반성할 수 있다. 여기서 염상섭의 사실주의 작품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