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중편소설 『새하곡(塞下曲)』
이문열(李文烈. 1948 ~ )의 중편소설로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새하곡』은 군대라는 사회의 축소판을 통해, 개인이 억압적 체제 속에서 겪는 절망과 무력감을 드러낸다. 작가는 군대 내 갈등과 계급적 불평등을 통해,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는 벗어날 수 없는 구조적 모순을 묘사한다. 군대에서 겪는 상하 관계와 폭력, 억압은 사회에서도 유사하게 반복되며, 이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겪는 한계와 고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작품은 또한 자유와 선택의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주인공 이 중위는 군대가 특수한 사회가 아니라, 현대 사회 전체가 개인을 억압하는 구조를 지녔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군대의 체제는 곧 사회의 축소판이며, 개인은 어느 곳에서든 집단에 소속되어 규율과 위계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 작품이다.
이문열은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새하곡(塞下曲)」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작가는 197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나자레를 아십니까>로 당선된 이후, 1979년 [동아일보] 중편 부문에 「새하곡」도 당선되어 ‘신춘문예 2관왕’으로 문단에 화려하게 등단했다. 중앙일간지 신춘문예, 특히 [동아일보] 중편 부문 당선은 그의 작가적 출세를 위한 디딤돌이 되었다.
이후 이문열은 <사람의 아들> <들소> <사라진 것들을 위하여> <어둠의 그늘> <황제를 위하여> <달팽이의 외출> <이 황량한 역에서> 등을 잇달아 발표했다.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현란한 문체와 해박한 지식이 뒷받침된 능란한 이야기 솜씨로 풀어내어 우리 시대 최고의 영향력 있는 인기작가로 불리게 되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야전 포병대의 통신장교인 이영훈 중위는 홍군과 청군으로 나뉜 사단 규모의 대규모 전술훈련에 참가한다. 그는 통신장교로서 강 병장과 박 상병이라는 나이 많은 기간병들과 함께 작전을 수행한다. 강 병장과 박 상병은 장교인 이 중위보다 훨씬 경험이 많고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인물들이다. 이들의 숙련된 모습은 이 중위에게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그는 그들의 경험과 능력에 경외감을 느끼면서도 계급에 따른 간극을 실감한다.
작전이 시작된 후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발생한다. 탈영 사고와 폭행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며, 사병들에게 잔혹하게 대하기로 유명한 심 소위와 강 병장 간의 갈등이 고조된다. 심 소위는 사병들을 억압하는 상급자로, 강 병장과 갈등을 빚는다. 특히 강 병장은 경계 작전 중, 이전에 이유 없이 박 상병을 구타했던 심 소위에 대한 복수심을 품고 그를 응징한다. 이에 따라 장교와 사병 간의 긴장감은 더욱 고조된다.
이 중위는 이러한 갈등 속에서 강 병장의 과거와 그의 행동 동기, 심 소위에 대한 복수 사건의 자초지종을 듣게 된다. 강 병장은 과거 육군사관학교를 중퇴한 후 입대하여 복무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인생에 대한 회의와 좌절이 심 소위와 충돌하게 된 원인이다.
그사이에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한다. 수송부 문 중사가 술에 취해 나타나, 전날 밤에 있었던 작부 살인사건의 범인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이 사건의 희생자는 문 중사의 꿈에 나타났던 동거녀였으며, 그가 범행을 저지른 경위는 문 중사의 혼란스러운 내면 상태를 반영한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했던 김 일병이 대공 초소 부근에서 목을 매어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김 일병은 최근에 아내가 갓 태어난 아이를 시댁에 맡긴 채 도망간 일로 깊은 절망에 빠져 있었으며, 이러한 개인적 비극이 그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이 사건은 이 중위와 군대 내 다른 인물들에게 깊은 충격을 안겨준다(김 일병의 자살은 단순한 개인적 문제를 넘어, 군대 내 억압적인 구조 속에서 병사들이 겪는 절망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그려진다).
김 일병의 자살 사건 이후, 이 중위는 더 이상 부대 내의 갈등과 폭력에 무관심할 수 없게 된다. 그는 김 일병의 목을 맨 현장을 지켜보면서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대대장과 군수 장교가 시체 앞에서 군사적 절차와 대응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동안, 이 중위는 무심코 한마디를 던진다.
“그게 바로 병사의 절망이지요.”
이 말은 이 중위가 군사 체제 속에서 사병들이 느끼는 무력감과 절망을 대변하는 순간으로, 작품의 절정을 이루는 장면이다. 이 중위는 군대라는 조직 안에서 체제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자신과 병사들의 처지를 통감한다. 그는 사병들이 안고 있는 비극적 현실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소설은 이 중위가 군대 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을 목격하고 그 속에서 느끼는 무력감을 토로하는 장면에서 결말을 맞이한다. 강 병장과 심 소위의 갈등과 복수, 문 중사의 고백, 김 일병의 자살 사건을 통해 이영훈 중위는 군대라는 체제 속에서 병사들의 절망과 고통을 직시한다. 이 중위는 그들의 절망을 해결하지 못하는, 자신의 위치와 신념에 대한 깊은 회의를 느끼며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한자의 ‘塞’는 막히다는 뜻의 ‘색’으로도 읽지만, 요새(要塞)처럼 ‘새’로 읽는 경우도 많다. 소설 <새하곡>(塞下曲)은 원래 변방의 싸움터를 읊은 한시들이 즐겨 쓰는 제목에서 따온 말이다. 출새곡(出塞曲), 입새곡(入塞曲), 종군행(從軍行) 등도 모두 비슷한데, 이런 작품을 통칭해 '변새시(邊塞詩)'라고도 한다. 이백은 ‘오랑캐가 가을을 타고 내려오니 천자의 군사들이 출병한다’로 시작하는 <새하곡>을 남겼고, ‘사람을 잡으려면 먼저 말을 쏘고, 도둑을 잡으려면 먼저 우두머리를 잡으라’라는 유명한 말은 두보의 <출새곡>에서 비롯됐다.
이문열의 데뷔작 「새하곡」에서 이영훈 중위의 부대는 홍군과 청군으로 나눈 사단 규모의 훈련에 들어간다. 통신 과장 이 중위 수하에는 강 병장과 박 상병이라는 '늙은 병사'가 있는데, 이들은 장교보다 훨씬 우수한 능력을 지닌 이들이다. 이들은 군생활이 만든 극도의 무력감에서 오는 절망감과 허무함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발버둥을 칠수록 이들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정신병적인 환청과 죽음을 경험하며 고통스러워한다. 이러한 모습들을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에 부닥친 다양한 인물 군상을 통하여 보여주는 '노래'가 단편소설 「새하곡」이며, '변방을 지키는 병사들의 노래'이다.
작전 중에 예기치 못한 탈영 사고와 폭행 사고가 터지고, 사병들에게 난폭하게 대하기로 유명한 심 소위와 강 병장 간 마찰이 일어난다. 장교, 하사관, 사병들은 각각의 계급의 한계와 삶에 대한 절망을 드러내고 죽음과 절망 속에서 작전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작전은 성공적이었으나, 이 중위는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병사의 절망'에 대해 깊이 체감하게 된다.
♣
(전략)
“군대가 아주 특수한 사회란 생각ㅡ 박 상병도 그런가?”
“예, 약간은.”
“그런데 나는 도무지 그게 이해 안 돼. 먼저 자유의 문제. 내가 보기에는 본질적으로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어. (중략)
이 시대에는 이미 순수한 개인이란 존재할 수가 없어. 어디를 가든 우리는 집단에 소속하게 되어 있고, 그 집단은 또 나름대로의 위계와 규율을 우리에게 강요할 거야. 예를 들어 우리가 취직을 한다는 것은 대대장이나 사단장이 전무나 사장으로 바뀌는 정도야. 명칭은 감봉이나 징계 따위로 다르지만, 그곳에도 빳다와 기합 같은 게 있지. 그리고 때로 그것은 우리가 이곳에서 체험하는 것보다 몇 배나 더 가혹하고 철저해.”
“그렇지만 거기에는 선택의 자유라든가 창의의 개발 같은 게 있지 않습니까?”
“선택의 자유라고? 그렇지만 한 집의 가장으로서 생계가 걸린 직장을 팽개치기가 이곳에서 탈영하는 것보다 더 쉬울 것 같은가? 또 수천수만의 종업원이 있는 회사에서 한 말단 사원의 창의라는 것이 포대의 ☞'소원 수리'보다 대단할 거 같은가?” - 본문에서
이 중위가 근무하는 해당 부대에서 똑똑한 병사들은 식욕과 게으름에 지나치게 탐닉한다. 먹고 쉬는 일 외에는 그들이 추구할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중위는 우수한 병사들이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지 않은 채 회피하는 이유를 궁금해하고 이 질문에 대해 강 병장은 '병사의 절망'이라고 짧게 대답한다.
작품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병사가 절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역병으로 군생활을 한 경험이 있는 이라면 누구라도 인정할 것이다. 설사 박사 학위를 가졌다 하더라도 의사나 법관이 아니라면 사병으로 복무 기간을 보내야만 한다. 사병으로 입대한 이상, 사병 이상의 능력을 펼칠 수는 없는 곳이 군대다. 또한 군대는 계급사회이고 경직된 조직의 구조로 통제되는 사회이다. 비단 군대만이 아니라, 조금 시선을 넓혀보면 우리 사회 전체가 이러한 구조적 모순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작가는 말하고 있다. 회사라는 조직은 군대보다야 덜하지만 엄격한 상하 관계의 계급과 실적주의라는 목표가 있다. 영업 또는 마케팅에서도 ‘고객’이라는 훨씬 까다로운 '주적'이 존재한다. 이 작품이 발표된 때는 1979년.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군인이 20년가량 장기집권하던 시기였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군대 메커니즘은 곧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소원수리(訴願受理) : 하급자가 군대나 기업에서 조직 내부의 불합리함이나 고충을 알려 이를 바로잡기를 청하면 상급자 또는 상급 부서에서 이를 받아들여 처리함. 또는 그런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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