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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손창섭 단편소설 『비 오는 날』

by 언덕에서 2020. 12. 18.

 

손창섭 단편소설 『비 오는 날』

 

 

손창섭(孫昌涉 : 1922~ 2010)의 단편소설로 1953년 11월 [문예]지에 발표되었다. 손창섭은 전후 세대 문학의 대표 작가이며, 그의 작품이 보여 주는 음울한 분위기와 비정상적 인물만이 등장하는 불구의 모습은 전후 문학의 상징적 의미를 집약시켰다.

  손창섭의 소설들은 시대적 조건이나 사회 환경에 압도되어 살아가는 인물들을 주로 그리고 있다. 8·15 광복과 6ㆍ25 전쟁이라는 격변기의 역사적 조건에 의해 형성된 병리적인 사회 현상 속에서 병리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들이 그의 소설에 산재해 있다. 그의 소설의 인물들은 따라서 기성 질서에 순종하지 못하고 새로운 가치관에도 접근하지 못하는 국외자, 즉 소외된 변두리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보여 준다. 손창섭 소설 속의 인물들은 사회의 낙오자들이다. 이 낙오의 책임은 어느 정도 인물 자신에게 있지만, 그 상당 부분은 그들이 사는 시대와 사회로 돌릴 수 있다. 비로 이 인간들을 피폐하게 만드는 사회적 조건이 작품의 현실적 배경이다.

  이 소설은 6ㆍ25 직후의 부산을 배경으로 동욱(東旭) 남매의 불행을 그리고 있다. 비가 오는 음산한 풍경을 배경에 깔면서, 이상 성격자 동욱(東旭)과 신체장애인 동옥(東玉)의 절망과 무기력이 음울한 문체로 표현되어 있다.

 

1953년 ≪문예≫ 11월호에 발표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6ㆍ25 당시, 임시 수도 부산에 피난 온 대학생 원구는 친구 동욱의 집에 가 본 후부터 비가 내리는 날이면 그들 남매에 관한 생각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동욱(東旭)은 누이동생 동옥(東玉) 과 1ㆍ4 후퇴 때 월남하여 살고 있다. 동욱(東旭)은 밥보다 술을 더 좋아한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형편으로 동옥(東玉)이 초상화를 그려서 그나마 생계를 해결하고 있는 형편이다. 동옥(東玉)은 감수성이 예민한 처녀로 소아마비 때문에 왼쪽 다리를 전다. 동욱(東旭)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착실한 교인이며 목사 지망생이었다. 그러나 6ㆍ25 전쟁이 그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고 말았다.

  원구를 처음 만났을 때 적대감을 보이던 동옥(東玉 은 만남이 되풀이되면서 점차 태도가 부드러워지며 원구에게 호감을 보인다. 동욱(東旭) 은 원구에게 동옥(東玉)과 결혼하기를 권유한다. 동욱(東旭) 남매가 사는 집은 그들의 비참한 생활만큼 황폐한 판잣집이다. 비가 갠 어느 날 손수레에 잡화를 벌여 놓은 원구에게 동욱(東旭) 이 찾아와서, 통역 장교 모집에 응시하려다 절차가 복잡하여 그만두었다고 말한다. 며칠 후 원구가 동욱(東旭)의 집에 찾아갔으나, 동옥(東玉)은 주인 노파에게 빌려준 돈을 떼여 그녀의 얼굴에서 자조적인 웃음밖에 발견할 수 없었다.

  다시 며칠 후, 동욱(東旭)의 집을 찾아간 원구를 동욱(東旭) 남매가 아닌 낯선 사내가 주인이라며 맞는다. 그 사내는 동욱(東旭)은 외출한 채 소식이 없고, 세 들어 살던 집마저 주인이 몰래 팔고 도망가고 동옥(東玉)이도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동옥(東玉)이 얼굴이 반반하여 어디로 가 몸을 판들 굶어 죽기야 하겠느냐는 사내 말소리를 등지며, 원구는 자기가 동옥(東玉)을 팔아먹었다는 자책감에 빠진다.

 

 

  손창섭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대체로 음울하다. 동시에, 상식을 깨뜨리고 의외의 충동으로 삶과 대치한다. 그들은 비사회적이며 우발적이다. 그들은 넓은 세계에서 호흡할 수 없으며 늘 폐쇄되어 있다. 그 상징적 공간이 <혈서> 등에 중심 배경으로 놓여 있는 '방'인데, 이 소설 역시 예외가 아니다.

  작가 자신도 그의 소설을 '나와의 공존과 공감을 허용하지 않는 기성 사회, 기성 권위에 대한 억압된 인간적 발산'이라고 규정했다. 결국 그의 소설을 냉소와 자조, 허위에 대한 불신, 애정의 마비, 생활의 분열로 규정짓게 한다. 특히, 이 작품 <비 오는 날>의 경우는 전쟁 상황의 한가운데에서 이루어지는 삶이기에 그 분위기가 더욱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이를 짙게 물들이는 것이 '비가 온다'라는 눅눅한 배경 설정이다.

 

 

  역사적 조건이 빚어 놓은 병리적 사회 현상이 개인을 암울하고 절망적인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그 상황 속에서 개인은 무기력하게 피폐해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 소설의 주제다. 이때 '비 오는 날'이란 상황 설정은 피난지에서 폐가나 다름없는 동욱의 집과 함께 주제를 더욱 선명히 부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소설은 사회적 배경과 상황적 배경, 시간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을 적절히 배합하여 생존의 비극성을 밀도 있게 구현해 낸다.

  동옥은 육체적 불구로 인해 세상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동옥(東玉)은 그녀가 그린 초상화를 미군들에게 팔아 연명해야 한다. 이들은 삶의 막다른 골목까지 내몰린 인생들로 그들 남매는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 희생된 인물들이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가 내리는 음습한 분위기 속에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불구인 등장인물들의 무의미하고 무기력한 삶이 그려졌다. 이 작품은 절망에 처한 전후의 폐허 상태와 맞물린 인간의 병적이고도 무기력한 내면 상태를 파헤쳐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모멸의 극한을 형상화했다. '인간 모멸 의식'으로 일관한 손창섭 소설의 원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