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도어 드라이저 장편소설 『제니이 기어하아트(Jennie Gerhardt)』
미국 소설가 시어도어 드라이저(Theodore Dreiser.1871∼1945)의 장편소설로 1911년 발표되었다. 여주인공의 이름을 그대로 제목으로 삼은 이 소설은, 우리나라에서는 1960~70년대 <아, 제니이>, <제니이의 슬픔> 등의 제목으로 번역 소개되었다.
미국 인디애나주 테러호트에서 출생한 드라이저는 복잡한 가정환경과 생활의 곤궁 때문에 어린 시절을 고난 속에서 보냈다. 1894년 뉴욕으로 이주하면서 점차로 창작에 손을 대고, 처녀작 <시스터 캐리>를 1900년에 출판하였다. 그러나 가난한 여자가 운명에 농락되어 타락해 가는 과정을 그린 내용 때문에 반도덕적이라는 이유로 출판이 금지되었다. 드라이저는 수년이 지나자 잡지 편집자로서 성공하여, 「제니이 기어하아트」를 발표했다. 그의 작품은 미국 사회의 나쁜 여파에서 오는 인간의 비극을 꼼꼼하게 써넣은 묘사가 일품으로, 성공한 아메리카 사실주의의 기념비적 작품이 되었다. 이 작품은 미국에서 영화로 만들어졌으나 우리나라에 소개되지는 않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제니이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의 맏딸로 태어나, 병든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을 부양한다. 많은 동생을 부양하는 것도 그녀의 몫이다. 제니이는 빼어나게 고운 미모에다 마음조차 천사처럼 착한 여성이다.
제니이는 열여덟 살 때 어느 고급 호텔 세탁부로 들어가게 되면서 나이 많은 독신 국회의원에게 정조를 빼앗긴다. 그러나 순진한 그녀는 곧바로 그 남자를 사랑하게 되고, 국회의원도 제니이와 결혼할 결심을 한다. 그러나 그는 얼마 안 있어 심장마비로 죽고, 제니이는 유복자를 낳는다.
아이를 어머니에게 맡기고 다시 부잣집 하녀로 들어간 제니이에게 그 집 아들이 접근해 온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제니이는 그를 받아들인다. 두 사람은 비밀리에 동거생활에 들어가지만 결국 정식 결혼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남자는 재산을 상속받기 위하여 제니이를 버리고 아버지의 뜻을 좇아 어느 부잣집 딸과 결혼한다.
혼자가 된 제니이는 국회의원의 핏줄인 딸아이를 기르며 쓸쓸히 살아가지만 결국 그 딸마저 일찍 죽어 혼자가 된다. 제니이는 다시 고아를 입양하여 키워보지만, 그녀에게 새로운 행복은 찾아오지 않는다.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을 연상시키는 이 소설은, 여주인공이 극빈 계급의 여성이라는 점에서 <여자의 일생>과는 다르다. 드라이저는 ‘최후의 자연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프랑스의 에밀 졸라가 시작한 자연주의를 뒤늦게 받아들여 평생 자연주의 소설만 썼기 때문이다. 자연주의는 사실주의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더욱 냉혹한 ‘해부’를 신조로 한다. 그러다 보니 사회의 밑바닥 인생을 자주 그리게 되고 인생의 비극성을 더욱 과장하여 부각하게 되었다.
「제니이 기어하아트」 역시 미국이라는 거대 산업사회의 밑바닥을 해부하고 고발한 작품이다. 부자들은 흥청망청 돈을 물 쓰듯 써대는데, 제니이의 집안은 매일 끼니 걱정을 해야 한다. 제니이의 아버지를 가난한 노동자로 그린 것은, 산업 발달의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희생이 얼마나 컸는가를 부각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그토록 예쁘고 착한 제니이가 결국 부자의 정부(情婦) 노릇을 하다가 쓸쓸히 노년을 맞게 되는 과정을 그린 것도, 하층계급 신분으로 태어난 인간의 억울한 불행을 고발하기 위해서이다.
♣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이 소설은 자연주의 소설이라기보다는 '낭만적 ‘순정소설’ 같은 느낌으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제니이라는 인물 설정 자체가 지극히 비현실적인 ‘청순무구’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 점이 같은 작가의 소설 <시스터 캐리(blog.daum.net/yoont3/11302376)>와 다른 점인데, 캐리는 시골의 가난한 집 딸로 태어났지만 대도시로 와서 빼어난 미모 덕분에 대스타로 출세한다. 그러나 「제니이 기어하아트」는 글자 그대로 ‘여필종부’형으로 그려져 있다. 그 점이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을 것이다.
(전략) '그늘진 인생을 사는 여인'을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들은 너무나 많다. 대표적인 예로는 뒤마 피스가 지은 <춘희>가 있고, 우리나라의 경우엔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이 있다. 이런 소설들은 대개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매춘부나 호스티스로 살아가면서도 끝까지 순정을 지켜 한 남자를 사랑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런 종류의 소설들이 19세기 이후로 소설의 한 영역을 차지하다시피 된 것은, 역시 도시의 산업화에 따른 유흥문화의 증가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젊은 여성들 가운데 열 명에 한 명은 접객업소 종사자라는 얘기가 있다. 매춘부나 매소부(賣笑婦)의 수요가 그 정도로 많은 걸 보면, 고루한 도덕주의자들이 아무리 '퇴폐 척결'을 외쳐본댔자 '몸을 파는 아가씨'들의 숫자가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 요즘 들어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여권신장의 결과로 이젠 몸을 파는 아가씨뿐만 아니라 '몸을 파는 총각'들 숫자 역시 서서히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돈 때문에 몸을 팔거나 부자의 세컨드 노릇을 하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이 거의 안 나오고 있다. 예전과 달리 여성의 직업선택 기회가 늘어났고, 따라서 '돈 때문에 할 수 없이 몸을 파는 여성들'보다는 '당당한 직업의식을 갖고서 몸을 파는 여성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리얼리즘 소설이라고 해도 소설에는 역시 감상적 동정심을 유발하는 여주인공이 나와야 재미있다. 흔히 '최루성 멜로드라마'라고 불리는 비련의 러브스토리가 아직도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런 종류의 소설 가운데서 내가 가장 감동을 받은 소설은 20세기 초의 미국 작가 시어도어 드라이저가 쓴 <제니이 기어하아트>이다. (후략) <(故 마광수 수필집<자유에의 용기> 326쪽에서 인용)
'외국 현대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스토옙스키 장편소설 『미성년(未成年, Podrostrok)』 (0) | 2021.01.15 |
---|---|
나쓰메 소세키 장편소설 『그 후(それから)』 (0) | 2021.01.08 |
서머싯 몸 장편소설 『케이크와 맥주(Cakes & Ale)』 (0) | 2020.12.08 |
마테를링크 동화극 『파랑새(L'Oiseau Bleu)』 (0) | 2020.06.08 |
알퐁스 도데 단편소설 『마지막 수업(La dernière classe)』 (0) | 2020.0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