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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황석영 단편소설 『몰개월의 새』

by 언덕에서 2020. 12. 11.

황석영 단편소설 『몰개월의 새』

 

 

황석영(1942~ )의 단편소설로 1976년 [세계문학] 1월호에 게재된 작품이다. 제목 <몰개월의 새>는 주인공인 작부 미자와 해병대 군인 한 상병을 의미한다. ‘몰개월’은 동네 이름이다. 미자는 대전을 떠나 포항으로 왔고, 한 상병은 서울을 떠나 포항으로, 월남으로 향한다. 이들이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상황을 그곳의 새(鳥)로 비유했다. 이렇게 정착하지 못하는 사람끼리 주고받는 동정과 위안은 서로를 위로하는 안식이 된다. 이는 한 상병이 미자를 술집 작부가 아닌 지켜줘야 하는 한 명의 여성으로 대하는 모습에서 발견되며, 이에 고마워하는 미자의 모습 역시 그러하다.

  황석영의 작품의 여러 유형 중에는 개인을 물화시키고 인간미를 상실케 하는 조건에서도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을 통해 훼손된 가치를 극복하고자 하는 작품으로 <객지>, <돼지꿈>, 「몰개월의 새」등이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몰개월은 포항 해변의 마을 이름이다. 어디서 흘러왔는지 작부들이 두세 명 기거하는 곳이다. 해병대 특교대 대원 한 상병은 비 오는 날 술에 취해 고랑에 처박힌 한 여자를 구하게 된다. 그 여자는 몰개월의 술집에서 일하는 작부 ‘미자’였다. 이후 미자는 한 상병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면회를 온다. 보퉁이에 김밥과 고구마를 싼 채 곱게 한복을 입고 부대로 온 것이다. 미자는 담배 한 갑을 선물로 주며 자신이 일하는 ‘갈매기 집’으로 놀러 오라고 말한다.

  어느 날, 미자를 만나기 위해 부대 담을 넘었던 한 상병은 계급 높은 군인에게 미자가 뺨을 맞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들은 중사나 상사급의 간부들이었고 한 상병은 사병에다 담을 넘은 관계로 그 광경을 보고도 어찌할 수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갈매기 집을 빠져나와 달아나려는데 뒤에서 미자가 그를 부르며 눈물을 터트린다. 미자는 코피가 터져 얼굴이 피투성이였다. 한 상병은 그들 몰래 미자를 개울로 데려가 얼굴을 씻긴다. 한 상병은 미자를 좋아하지만, 성관계를 갖지 않는다. 미자를 식구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한 상병의 부대가 월남으로 떠나는 날, 부두에는 안개가 자욱하다. 길 좌우에는 몰개월의 여자들 모두가 가장 좋은 옷을 차려입고 손수건과 꽃을 흔들어 댄다. 미자는 그날 면회 왔을 때 옷차림으로 치마를 펄럭이며 하얀 것을 트럭에 앉은 한 상병을 향해 던진다. 한 상병은 배에 오른 후 미자가 던진, 손수건에 싼 것을 풀어보니 플라스틱으로 조잡하게 만든 오뚜기 한 쌍이 보였다. 그를 실은 배가 남중국해를 지나갈 때 한 상병은 그것을 바다에 던져버린다.

 

영화 <알포인트>, 2004

 

  소설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주인공은 베트남 참전을 앞둔 포항에 주둔한 해병대 특교대 병사이다. 그곳에서 주인공인, 갈매기라는 술집의 작부인 미자를 만난다. 주인공은 미자에게 식구 같은 연민을 느끼게 되고 두 사람은 점차 서로를 사랑하게 되지만 성관계를 갖지는 않는다. 군인들이 전쟁터로 떠날 때 몰개월의 여자들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군인들을 배웅한다. 미자 역시 한복을 입고 나타나 주인공에게 인형을 선물한다.

  한 상병은 월남으로 가는 도중 배 안에서 그것을 남중국해에 버린다. 주인공은 전쟁터에서 모진 세월을 보내면서 미자를 비롯한 몰개월의 여자들이 보여준 사랑의 의미를 깨닫는다.

  (전략) 어떤 인생이든 의미 없는 인생은 없다. 그들에게 소중한 순간이고 그러한 삶도 칭찬받아야 한다. 몰개월의 작부였던 수많은 ‘미자’는 자신을 거쳐 가는 수많은 남자를 사랑하기도 하고, 떠나보내기도 한다. 연애편지도 보내고, 이별할 때 선물을 주기도 하면서 숭고한 사랑인 것처럼 표현한다. ‘미자’들의 행동이 유치하고 헛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어차피 자신의 몸들을 기억조차 못 할 남자들에게 마음을 준다는 아이러니한 상황 때문에. 하지만 ‘미자’에게 한 상병과 만남은 그 자체로 소중하였고, 삶의 한순간에서의 희망일 수도 있다. 나도 미자였다면 그렇게 했을 것 같다. (본문에서 )

 

 

 (전략) 나는 승선해서 손수건에 싼 것을 풀어보았다. 플라스틱으로 조잡하게 만든 오뚜기 한 쌍이었다. 그 무렵에는 아직 어렸던 모양이라, 나는 그것을 남중국해 속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작전에 나가서 비로소 인생에는 유치한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서울역에서 두 연인이 헤어지는 장면을 내가 깊은 연민을 가지고 소중히 간직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미자는 우리 모두를 제 것으로 간직한 것이다. 몰개월 여자들이 달마다 연출하던 이별의 연극은, 살아가는 게 얼마나 소중한가를 아는 자들의 자기표현임을 내가 눈치챈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몰개월을 거쳐 먼 나라의 전장에서 죽어간 모든 병사가 알고 있었던 일이다. (본문에서)

  작가는 자신의 경험으로 이 작품을 썼다고 후술했다. 소설 속 한 상병은 남은 가족이나 옛 여자친구에게 연락하지 못한다. 자신이 향후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이러한 한 상병을 감싸주는 것은 사회의 최약자인 술집 작부 미자다. 미자의 동정마저 쉽게 누릴 수 없는 병사의 모습은 독자를 숙연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