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테를링크 동화극 『파랑새(L'Oiseau Bleu)』
벨기에 시인ㆍ극작가 M.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 1862 ~ 1945)의 동화극으로 6막 12장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이 몽환극은 1906년에 완성되어 1909년에 파리 파스켈(Fasquelle) 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1908년 스타니슬랍스키는 이 극을 모스크바 예술 극장에서 공연하였으며, 이후 이 작품은 런던, 뉴욕 등 전 세계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며 공연되었다. 프랑스에서는 1911년 3월 레잔 극장(Théâtre Réjane)에서 스타니슬랍스키가 구상한 연출 방식에 따라 공연되었다. 또한, 이 극은 영화로도 각색이 되어 1911년부터 “영화로 찍은 연극”이라는 형태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민중극장 배우들에 의해 공연되었다. 미국에서는 모리스 투르뇌르(Maurice Tourneur)가 1918년에, 월터 랭(Walter Lang)이 1940년에 영화로 만들었으며, 1987년 조지 쿠커(Georges Cukor)는 엘리자베스 테일러(Elizabeth Taylor)와 함께 영화로 각색하였다.
이 작품은 나무꾼의 남매 틸틸과 미틸이 크리스마스 전야에 꾼 꿈을 극으로 엮어 작자의 인생관을 아름답고 알기 쉽게 나타낸 명작이다. 가난한 나무꾼의 자녀 틸틸과 미틸 남매가 크리스마스 전야에 꾼 꿈을 극으로 엮어서 인간의 행복이 어디에 있는가를 암시한다.
이 극은 발표 당시부터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 이후로 세계 각국에서 번역되고 또 연극으로 공연되어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현대의 고전이다. 작가가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갖고 쓴 이 극은 비록 아동극의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거기에 담긴 깊은 의미는 많은 성찰이 필요하다. 요컨대 이 극은 교훈적이면서도 환상적이고 시적인 작품이다. 마테를링크는 1911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초라한 오두막집에 사는 남매 틸틸과 미틸에게 어느 날 밤 요술쟁이 할머니가 찾아온다. 할머니는 자신의 아픈 딸을 위해 남매에게 파랑새를 찾아 달라고 부탁한다. 틸틸과 미틸은 할머니가 건네준 마법의 다이아몬드가 달린 모자와 함께 파랑새를 찾아 빛ㆍ개ㆍ고양이, 그리고 설탕과 빵의 요정을 거느리고 꿈의 세계로 긴 여행을 시작한다.
‘추억의 나라’에서 이미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 할머니, 형제자매 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밤의 궁전’에서는 으슥한 동굴이나 무덤 앞에서 두려움에 떨기도 하는 등 재화(災禍)의 실상을 보고, ‘숲’에서 자연의 공포를 알고, ‘행복의 궁전’에서 물질적 행복의 허무함을 목격한다. 또한 남매는 참다운 행복은 건강과 정의, 어머니의 사랑 등이며, ‘파랑새’는 마음속에 살고 있음을 계시 받고, ‘미래의 나라’에서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을 만난다.
이처럼 두 아이는 ‘추억의 나라’, ‘밤의 궁전’, ‘미래의 나라’ 등 동화 속에서나 볼 법한 환상적인 세상을 차례로 찾아간다. 틸틸과 미틸은 새로운 곳에 갈 때마다 우여곡절 끝에 파랑새를 발견한다. 하지만 그곳을 떠날 때마다 파랑새는 죽어 있거나, 색깔이 변하거나, 날아가 버린다. 틸틸과 미틸은 결국 파랑새를 찾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온다. 꿈에서 깨어나자, 그토록 찾아 헤매던 파랑새가 자기 집 새장에 든 것을 발견하며 그 새가 파랗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작품은 동화극으로 보이지만 사상적으로는 참된 지혜에 의한 생명 내면의 빛을 파악한다는 작자의 근본 사상이 표현되어 있고, 참된 현실이란 영혼이 꾸려나가는 비밀의 생명이라는 신비 사상이 표현되어 있다.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는 내용이 환상적인 아름다운 시상 속에 나타나 있다. 동화극이지만 인생에 대한 깊은 명상이 여러 곳에 담긴 걸작이다.
이 극에는 훨씬 깊은 철학적 의미가 깃들어 있다. 그것은 우리의 삶과 우리가 삶에서 추구하는 행복에 관한 작가의 성찰이 상징이라는 수법으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고백을 추론해 보면 메테르링크는 그의 철학적 메시지를 무겁지 않은 방식으로 전달하기 위해 아동극 형식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이 극을 통해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와 몇 가지 특별한 관점에 대해 논해보자면, 먼저 ‘파랑새’가 상징하는 행복이란 과연 무엇이며 행복은 또 어디에 있는가에 관한 부분이다.
아이들이 파랑새를 손에 넣더라도 새는 곧 색깔이 변해버리거나 죽어버리거나 날아가 버린다. 그들이 파랑새를 오래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이란 그것을 손에 넣으면 곧 변질하여 버린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따라서 진정한 행복이란 밤의 궁전의 파랑새처럼 우리가 꿈꿀 때, 소망할 때만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꿈꾸는 것 자체가 바로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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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또한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아주 사소한 일상 속에 있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행복,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행복, 부모의 사랑을 받는 행복 등과 같이 일상의 평범한 것들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우리는 잘 깨닫지 못하고 있는데, 틸틸과 미틸은 꿈속의 여행을 통해 이것을 깨닫는다.
한편, 기억에 대하여 작가는 놀랍고도 독특한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메테르링크는 이 세상에서든 다른 세상에서든 어떤 사람도, 어떤 것도 진정으로 죽지 않는다고 말한다. 즉 그가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한 그 사람은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 동물이나 사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틸틸과 미틸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손자들의 기억 속에 살아 있으므로 죽지 않은 것이다.
이 극의 표현상 특징으로는 메테르링크는 상징이라는 수법을 통해 자신의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요정(이웃집 여인)의 아픈 딸을 위해 찾는 파랑새는,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 혹은 추구하는 이상에 불과하다. 또 상징주의 작가들이 현상 세계 그 이면의 세계에 천착하였듯이, 메테르링크 역시 이 극에서 꿈과 환상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꿈에서 깬 틸틸이 자신의 오두막이 아름답게 변하였다고 느끼는 것은, 오두막이 변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틸틸의 시각이 변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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