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외국 현대소설

서머싯 몸 장편소설 『케이크와 맥주(Cakes & Ale)』

by 언덕에서 2020. 12. 8.

 

서머싯 몸 장편소설 『케이크와 맥주(Cakes & Ale)』

 

 

영국 소설가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 : 1874~1965)의 단편소설로 1930년 발표되었다. 명성에 감춰진 한 작가의 무명시절과 파경을 맞게 된 결혼생활의 내막을 소개하면서 한편으로는 20세기 초반 영국 문단과 런던 사교계의 세태를 냉소적으로 풍자한 소설이다. 「과자와 맥주라는 신선한 제목은 셰익스피어의 희극 <십이야>(Twelfth Night)의 대사에서 따온 것으로 '가볍게 즐기는 유쾌한 연회'를 의미한다. 또한 이 제목은 작가로 명성을 얻고 난 후에도 체면과 허례를 중시하지 않고 무명시절 찾던 마을의 선술집에 들러 맥주와 과자를 놓고 마을 서민들과 어울리곤 했다는 드리필드의 작품 속 일화와 연결된다. 「과자와 맥주는 출판되고 나서 대작가 드리필드의 모델이 토마스 하디라는 소문으로 한 때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서머싯 몸은 20세기 초반부터 60여 년 동안 창작활동을 한 영국 작가다. 널리 알려진 <인간의 굴레>, <달과 6펜스> 등의 걸작을 비롯해서 주옥같은 많은 단편을 남겼고, 드라마 작가로도 꽤 성공을 거뒀다. 이 작품 <과자와 맥주>는 작가의 원숙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달과 6펜스>와 함께 예술가의 삶을 다루고 있다. ‘소문을 꺼리는 가정의 비밀’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과자와 맥주는 다소 냉소적이면서도 희극적인 ‘어른을 위한 동화’이다.

 「과자와 맥주」는 1930년 3월부터 7월까지 잡지 '하이퍼'에 연재되었고, 같은 해 9월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몸은 그의 최고 걸작이 <인간의 굴레(Of Human Bondage, 1915>라는 일반적인 의견에 찬성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가장 애착을 가진 작품은 「과자와 맥주라고 밝힌 바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화자 역할의 ‘나’, 윌리엄 애션덴은 작가로서 입지를 굳힌 중년 독신 남성으로 현재 런던에 거주하고 있다.

 주인공 로지는 보수적이고 좁은 시골 동네 블랙 스테이플에서 술집 접대부로 일하던 여자로 작가 드리필드의 아이를 임신하여 그와 결혼한다. 그러나 결혼 전부터 관계를 갖고 있던 건달 조지와도 계속 내연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로지는 자신의 아이를 병으로 잃는다. 하지만, 소설 속 화자인 '나' 애션덴을 포함한 주변의 예술가 지인들과도 계속 연애 행각을 벌인다. 그러던 중 남편 몰래 한 가족의 가장인 건달 조지와 함께 미국으로 도망친다.

 이후, 세월이 흘러 세상 사람들은 조지와 로지가 모두 사망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화자 애션덴은 미국 출장 중 로지의 연락으로 70대가 된 로지를 만난다. 그녀는 소문과 달리 노년을 잘 보내고 있다. 로지는 자신 삶의 발자취를 죄다 알고 있는 애션덴을 대함에 있어 전혀 거리낌이 없다. 자신이 감정에 솔직한 삶을 살아왔음을 여한 없어 한다.

 

영국 소설가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 : 1874~1965), 우측

 

 소설 초반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로지의 삶은 일반적 도덕관념의 기준으로 뭔가 맞지 않는 특이한 여인이다. 그러나 작가가 마지막 노년의 로지를 기술한 몇 페이지에서 이런 감정이 확 바뀌며, 독자로 하여금 로지가 멋진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주인공 로지는 ‘사랑에 헤픈 여자’로 카페 여급 출신이다. 그러나 권태로운 결혼생활을 이겨내지 못하고 예전의 버릇대로 이 남자 저 남자와 끊임없이 바람을 피운다. 그러다가 어느 건달 유부남과 눈이 맞아 미국으로 도망쳐 버린다. 로지는 전혀 죄의식 없이 바람을 피우며 성을 즐기고, 자기를 원하는 남자라면 누구든 가리지 않고 쾌락을 베풀어주는 여자다. 그녀의 육체는 남자를 굴복시키기 위한 도구도 아니고,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방편도 아니다. 그녀의 육체는 자신도 즐거움을 느끼면서 남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랑의 샘물이다. 그래서 그녀와 잠자리를 같이 하는 남자들은, 그녀가 자기 이외의 남자와 놀아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전혀 질투심을 느끼지 못한다. 그것은 로지의 남편 역시 마찬가지다.

  로지가 건달 유부남을 택해 미국으로 사랑의 도피를 하는 것도, 그 남자만 사랑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에게 강한 동정심을 느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그 사내가 파산을 하고 도망가는 신세가 되자, 무일푼이 된 사람을 자기라도 돌봐줘야겠다는 의무감이 로지로 하여금 남편을 배반하게 만든다. 로지는 말하자면 ‘야한 백치미’를 가진 순진무구한 여성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과자와 맥주」는 서머싯 몸이 소설가로서도, 극작가로서도 성공을 거둔 원숙기에 쓴 작품이다. 마음에 드는 남자라면 누구에게나 몸을 허락하면서도 마음은 더없이 아름다운 로지의 삶을 중심으로, 문단의 내막과 문예론 등을 에세이 형식으로 그렸다. 몸은 오랫동안 작가로서 폭넓은 활동을 펼치며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그중에서도 이 소설은 <인간의 굴레>, <달과 6펜스>와 더불어 손꼽히는 명작이다. 몸도 자신의 작품 가운데 이 작품을 가장 좋아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여든 번째 생일을 기념하여 하이네만 출판사에서 이 작품을 1천 부 한정 호화판으로 찍어내기도 했다.

 (전략) 내가 ‘야한 여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권태>·<광마일기>·<즐거운 사라>·<불안>·<자궁 속으로> 등의 장편소설을 쓰게 된 것은 「과자와 맥주」에 나오는 ‘로지’의 인상이 내 머릿속에 너무나 깊이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성에 죄의식 없이 자유로운 여자, 그리고 한없이 따뜻하고 화려한 여자, 그런 여자에의 원망(願望)이 나의 연애 체험을 더욱 다양하게 해주었는데, 내가 추구했던 이상적 여성상의 원형이 ‘로지’였다.

 서머싯 몸은 40세 이후에 더욱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다른 작가들이 40세 이후 보수적 권위주의자로 돌변하거나 작품생산에 무력감을 느껴 정치적 처신으로 일관하는 데 비해, 몸은 늙어갈수록 더욱 자유분방한 열정을 추구했다. 이 또한 내게 영향 준 바 크다. 나 역시 몸처럼 ‘늙는 것에 굴복하지 않고 더욱더 열정적으로 야한 예술혼을 불태우고 싶다. (故마광수 에세이 <자유에의 용기> 330~331쪽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