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 스코트 피츠제럴드 단편소설 『다시 찾아온 바빌론(Babylon Revisited)』
미국 소설가 F. 스콧 피츠제럴드(Francis scott key Fitzgerald. 1896~1940)의 단편소설로 1931년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2월호에 최초 개재되었고 작가의 단편집 <기상나팔 소리에 술을 마시다>에 수록되었다. 작품 속 몇 가지 지엽적인 사실을 빼고는 작가의 파리에서 경험을 그대로 서술했다고 할 정도로 자전적이다. 국내에서는 〈바빌론 재방(再訪)〉 <바빌론에 다시 갔다>< 다시 찾아간 바빌론> 등의 제목으로도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한때 방탕의 생활을 보냈던 환락의 도시를 배경으로 아내를 잃은 데다 어린 딸마저 처형에게 빼앗긴 남자의 슾프고도 외로운 감정을 묘사한 주옥같은 단편이다.
당시 작가는 여러 단편을 발표하여 큰돈을 벌면 곧장 파티를 열고 음주에 탐닉하였으며, 그러다가 빚을 지면 다시 작품을 마구 써곤 했다. 그런데 이러한 생활 중에도 〈위대한 개츠비〉를 발표하여 공전의 인기를 끌었다. 그 무렵, 그는 두 번째 유럽 여행을 떠났는데 파리에서도 무분별한 파티와 음주로 사교계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런 와중에서 음주 폭행으로 두 번이나 감옥살이를 한 일이 있으며, 그의 아내 겔다는 부부간 치명적 불화 끝에 조현병을 일으켜 입원하기에 이르렀다.
이 작품은 작가의 단편소설 중 으뜸으로 평가받는 수작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 작품은 그가 파리에 머무를 당시 방탕했던 사생활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자전적이다. 여기서는 미국적 물질주의에 매혹보다는 환멸을 더 짙게 드러내보이는데 그 또한 자신의 쓰라린 경험에 바탕한 것이라 보아도 좋을 듯하다.
이 작품은 1954년 <내가 본 마지막 파리(The Last Time I Saw Paris)>라는 제목으로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리처드 브룩스가 감독을,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벤 존슨이 주연을 맡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배경은 1930년대 프랑스 파리. 서른다섯 살의 아일랜드계 미국인 사업가 찰리 웨일스는 처형이 돌보고 있는 딸 오노리어를 되찾기 위해 파리를 방문한다. 오노리어는 아빠를 보고 너무나 좋아하지만, 처형은 그의 방문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바로 이 년 전 경제 대공황 때 사업이 망하면서 술에 절어서 방탕한 생활을 했던 찰리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시절 아내이자 처형의 동생인 헬렌이 죽기까지 했기 때문에, 처형은 더욱 반감을 드러낸다. 하지만 찰리는 계속해서 간곡히 요청하고, 결국 처형은 오노리어에 대한 친권을 돌려주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과거 찰리가 방탕하게 생활할 때 만난 커플과 우연히 마주친다. 그들을 껄끄러워하는 찰리와는 달리 이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찰리에게 무례하게 행동하며 사교계 생활을 이어가자고 한다. 이를 본 처형은 찰리의 품행을 다시금 의심하면서 오노리어에 대한 친권을 주지 않기로 하며, 그렇게 찰리의 부정(父情)은 또다시 인정받지 못한다.
낙담한 그는 술집에 들러 위스키를 마시며 동서에게 전화를 걸어 처형의 마음을 움직여 줄 것을 사정하지만 상대방은 '미안하다'라는 말로 전화를 끊는다. 그는 자식을 데려가고 싶었고 그것 이외에 그에게는 아무런 낙도 없었다. 그는 이제 수많은 훌륭한 생각이나 꿈을 지닌 젊은이가 아니었다. 자신이 이처럼 외롭게 살아가는 것을 헬렌도 바라지 않는다고 그는 확신했다.
1918년 7월 병역 의무 중인 피츠제럴드가 알래스카 주 몽고메리 근처에 주둔하고 있을 때 앨라배마 대법원 판사의 딸인 젤다 세어를 만났다. 그는 깊이 사랑에 빠졌고 벼락출세를 이루어 젤다와 결혼하겠다는 생각으로 뉴욕을 향했다. 그러나 고작 한 달에 90달러를 받는 광고직을 얻었을 뿐이었다. 젤다는 약혼을 파기했고, 피츠제럴드는 한동안 술로 세월을 보낸 뒤 세인트폴로 돌아가 옛날 프린스턴에서 시작했던 소설을 다시 썼다. 1920년 여름 <낙원의 이쪽(This Side of Paradise)>이 출간되었고 그는 젤다와 결혼했다.
1931년 이 작품이 발표된 그해 작가의 아버지는 사망했고, 아내 젤더는 신경쇠약에 시달리며 몇 년 동안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는 20대 초반에 엄청난 성공으로 그토록 그리던 젤더와 결혼에 성공하나 이후의 생활은 행복하지 않았다. 프랑스로 떠난 그들은 사교계에서 명성을 얻지만, 젤더가 프랑스 조종사 에두아르와 외도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피츠제럴드는 알코올과 사랑에 빠진다. 이때의 경험이 소설에 그대로 녹아있다.
소설 속, 술을 자제하고 있는 찰리의 모습은 알코올에 중독된 피츠제럴드와 남자와 놀아나는 아내의 모습과 신경쇠약에 걸린 매리언의 모습은 젤더와 겹친다. 찰리의 아내가 죽었다는 설정은 당시 젤더에 대한 부담감으로 지쳐있던 그의 소망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찰리만큼 피츠제럴드도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6개월 후에 찰리에게 주어진 기회가 현실의 피츠제럴드에게는 쉽게 오지 않았다.
♣
뉴욕에서 주식으로 젊은 나이에 부를 거머쥔 주인공 찰스 웨일즈는 한동안 호사스러운 생활을 즐긴다. 그러다 한순간에 모든 걸 탕진하고 쫓겨나듯 파리를 떠나게 된다. 그는 어느 날 자신이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다시 한번 옛 영광의 도시를 찾는다. 하지만 돌아온 그가 발견한 건 다름 아닌 환멸감이었다. 이 작품 『다시 찾아 온 바빌론』은 피츠제럴드 특유의 낭만적이고 산뜻한 문체, 매력적인 작중인물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전략) 그러나 작품 그 자체로 보아도 이 단편은 한 전범으로 나무랄 데가 없는 성취도를 보여주고 있다. 간명하고도 감각적인 문체와 섬세한 심리묘사가 그렇거니와 전편을 흐르는 불타버린 뒤의 적막감과도 같은 애조(哀調)는 작가에 관한 전기적 지식이 없는 이에게 흔치 않은 감동으로 다가들 것이다.
『다시 찾아간 바빌론』은 짧지만 어떤 면에서는 가장 피츠제랄드 적인 작품이다. 그 자신의 각색에 의해 <내가 본 마지막 파리>라는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번 방영되었다.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8권> 58쪽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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