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시킨 단편소설 『스페이드의 여왕(Pikovaya Dama)』
러시아 시인 · 소설가 · 극작가 푸시킨(Aleksandr Sergeevich Pushkin.1799∼1837)의 단편소설로 1834년 발표되었다. 푸슈킨 이전의 러시아 문학은 서구문학을 모방한 좁은 범위의 귀족문학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 진실한 러시아의 정신, 러시아 사회의 현실적인 모습을 제시함으로써 러시아에 국민문학을 창시한 이는 바로 푸시킨이다. 그는 협의의 고전주의 문학을 청산하고, 낭만주의를 거쳐 종국에는 순 러시아적인 사실주의의 기초를 쌓았다. 그리고 러시아의 문학어와 독자적인 예술 형식을 후세에 남겨놓은 공적은 불멸하다는 평이다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로 추앙되는 푸시킨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그가 셰익스피어, 바이런, 월터 스콧과 일련의 호반 시인1 등 영국의 작가에게 보인 관심에서 알 수 있다. 또한 세계문학에 관한 관심과 '보편적인 감수성', 그리고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시대, 다양한 민족의 기질을 재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것은 '악마적 정열'을 분석한 그의 '단막 비극'과 도스토옙스키 장편소설의 주제와 기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스페이드 여왕』(1834)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스페이드 여왕』은 카드노름으로 단번에 부자가 되려는 젊은 장교 게르만을 통해, 뜬구름 같은 헛된 욕심의 비참한 말로를 그린다. 어느 날 늙은 백작 부인에게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카드 세 장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 뒤부터 그 카드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광기 어린 집착을 보이며 비열한 짓도 서슴지 않는다. 『스페이드의 여왕』은 푸시킨의 산문 중에서 가장 완벽한 균형미를 지녔다고 평가받는다. 이 작품은 일체의 장식이나 부연을 과감하게 제거한 절제된 문장이 특징이다. 또한 완전무결하게 화자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균형 잡힌 구성, 소름 끼칠 정도로 객관적인 내레이션 등으로 산문 문학의 전범을 만들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배경은 19세기 초의 제정 러시아. 사교계에 진출한 젊은 장교 게르만은 노름을 좋아하지만 “여분의 돈을 따기 위해 꼭 필요한 돈을 희생시킬 수는 없다”라는 생각에서 노름판에 언제나 구경꾼으로만 참여한다. 반드시 이기는 석 장의 카드 패를 알고 있다는 늙은 백작 부인 얘기에 솔깃해진 게르만은 그녀의 피후견인인 리자에게 거짓 사랑을 고백해 백작 부인의 방에 들어가는 데 성공한다.
그곳에 들어간 게르만은 당황해하는 백작 부인에게 비밀을 털어놓으라고 종용하지만, 그녀는 놀란 나머지 숨을 거두고 만다. 사망한 백작 부인은 얼마 후 유령으로 나타나 게르만에게 이기는 카드 패는 “3, 7, 에이스”라고 가르쳐 준다. 망설이던 게르만은 이 비밀을 이용하여 대규모 도박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
게르만은 연거푸 두 번이나 거액의 돈을 따지만 세 번째 게임에서 자신이 펼친 카드 속의 스페이드 여왕이 자신을 향해 윙크하는 것을 보게 된다. 순간, 게르만은 ‘스페이드의 여왕’을 에이스로 착각하는 바람에 땄던 돈을 모조리 잃고 이후에는 미쳐 버린다.
(전략) 이 『스페이드의 여왕』은 특별히 환상적인 작품이라기보다는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에 걸치는 시대의 정격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각 장마다 앞머리에 서시나 서언을 배치한 게 그러하고, 사건의 도입 전개 발전 결말의 순서가 정연한데다 친절하게 후일감까지 곁들인 게 그러하다. 낭만주의적 요소는 주로 게르만의 어둡고 비뚤어진 열정의 묘사에서 엿볼 수 있다.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4권> 157쪽에서 인용)
어느 날 밤, 죽은 백작 부인의 망령이 게르만 앞에 나타나 '3 · 7 · 1' 순으로 카드를 내면 반드시 이긴다고 말하지만 대신 다시는 손을 대지 말라고 하고 사라진다. 망설이다 도박장으로 달려간 게르만은 3, 7을 이기고 마지막 전 재산을 걸고 1을 걸었다고 생각했으나 펼쳐진 건 스페이드 여왕이었다. 스페이드 여왕은 카드 속에서 게르만을 보며 윙크한다. 결국, 게르만은 전 재산을 잃고 미쳐 버리고 만다.
푸시킨은 이야기 속 주인공에게 끊임없이 거짓된 생각을 불어넣고 미혹시킴으로써 그를 파멸의 지경까지 몰고 간다. 환상과 상징에, 초자연적인 것과 유령의 존재에 미혹 당하여 게르만과 똑같이 무언가 엄청난 기적 같은 것을 기대했던 독자는 게르만과 마찬가지로 푸시킨과의 게임에서 함정에 빠졌다고 볼 수 있다. 언제나 우리를 자극하고 끌어당기는 이유는 바로 이런 함정 때문인지도 모른다.
♣
(전략)주인공이 백작 부인의 장례식 다음 날 새벽에 보고 들은 것은 아마도 그의 아직 채워지지 못한 열망과 괴로운 죄의식이 어울려 빚어낸 환영과 환청이었을 것이다. 그가 미치기 직전에 본 스페이드 여왕의 섬뜩한 눈웃음도 심리학은 마침내 절망과 공포로 변한 죄의식이 끌어낸 착시쯤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4권 157쪽에서 인용함)
이 작품에서 작가는 불필요한 묘사나 수사를 과감히 없애고 최소한의 단어로 균형 있고 빠르게 이야기를 전개하여 미성숙한 인간 게르만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게르만에게 끊임없이 거짓된 생각을 불어넣고 미혹함으로써 그를 파멸로 몰고 간다. 초자연적인 환상과 상징 그리고 유령의 존재에 홀려 어느새 게르만처럼 독자도 기적을 기대하게 되나, 마지막 순간 뜻밖의 결과에 절로 탄식을 내뱉게 된다.
이 작품 『스페이드 여왕』은 후세 러시아문학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 · <미성년>, 솔로구프 <작은 악마>, 벨르이 <페테르부르크>는 모두 『스페이드의 여왕』에서 제기된 문제를 새롭게 다루고 있는 대표적인 경우들이다. 러시아문학은 모두 『스페이드 여왕』에서 나왔다는 문학사가 루카치의 주장은 결코 무리한 이야기가 아니다.
- 19세기 초 영국 북부의 호수 지방에 살면서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서정적인 시를 썼던 워즈워스(Wordsworth, W.), 콜리지(Coleridge, S. T.), 사우디(Southey, R.) 따위의 낭만파 시인들을 이르는 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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