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외국 현대소설

H.G. 웰스 단편소설 『벽 속의 문(The Door in the Wall)』

by 언덕에서 2020. 4. 30.

 

H.G. 웰스 단편소설 『벽 속의 문(The Door in the Wall)』 

 

영국 소설가 · 역사가 · 과학 저술가  H. G. 웰스(18661946)의 단편소설로 1940년에 발표되었다. 그는 켄트 주의 하층 중류 계급 출신으로서 어려서부터 점원 노릇을 했으며, 독학으로 과학을 공부했다. 열여섯 살 때는 문법 학교의 교사가 되었고, 그 후 남켄징턴의 문리 대학에 들어가 헉슬리에게 사사받고, 1888년에 동물학 전공으로 런던 대학을 졸업했다.

  수년간의 교사직을 거친 그는 1893년에 잡지 기자가 되어 본격적인 저술 활동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생물학 교본〉 〈시측계〉 〈놀라운 방문〉 〈모르 박사의 섬〉 〈보이지 않는 사람〉 〈세계 대전등 과학지식에 분방한 상상을 뒤섞은 낭만적 과학 소설을 썼다. 또한, 사회의 여러 가지 현상을 배경으로 수많은 작품을 쓰고 문명 비평, 정치, 역사 등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한때 그는 사회주의적 사회관, 세계 국가의 이상을 꿈꾸었으며, 1차 세계 대전 후인 1920세계 약사(略史)에서 자기의 입장을 사적으로 입증하였다. 소련을 여행하여 그 참상을 그늘 속의 러시아, 그리고 이상적인 세계인의 관념을 1921문명의 구제에서 드러냈다. 그 밖의 작품으로 · 왕이었던 왕· 세계인의 질서· 신세계에의 안내자· 타임머신>· <투명인간> · 우주 전쟁〉 등이 있다. 그의 단편은 60편에 달하는데 벽 속의 문은 후기 작품에 속하는 것으로, 단지 가공적인 상상에만 그치지 않고 신비적인 색채가 농후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국내에서 여러 제목으로 소개되었는데 <담장에 난 문> · <벽 안의 문> · <초록 문> · <담장의 문등 다양한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1996년 출판된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4권에서는 「벽문」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화자인 에게는 친한 친구가 있다. 그의 이름은 라이어닐 월러스로 정치에 몸담은, 신중하고 과묵한 친구다. 월러스는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죽기 전 그는 나에게 이상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그것이 거짓말이라 생각하면서도 쉽게 마음에서 떨쳐낼 수가 없었다. 월러스는 자신이 이상해진 것은 '벽 안의 문에 들어가면서부터라고 회고했다.

  그는 길을 가다가 붉은 담쟁이덩굴이 덮여 있는 흰 담장에 난 초록색 문을 보게 되었다. 문을 열자 안에 있는 정원은 놀랄 만큼 아름다웠다. 안에는 표범이 뛰노는 아름다운 정원이 등장했고 그곳에서 즐겁게 지내다 소년은 정원 밖으로 나왔다. 그때 어디선가 침울한 표정의 여인이 나타나 책 한 권을 보여 주었다. 거기에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에 관한 기록이 적혀 있었고, 가족들 모습도 그려져 있었다. 책장을 넘겨 초록색 문 바깥에서 주저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자마자 그는 어둑한 웨스트켄싱턴 거리로 돌아와 있었다.

 윌러스는 그 일을 아버지에게 고했으나 거짓말을 한다며 종아리만 실컷 맞았다. 문 안에서의 행복한 기억을 잊지 못한 그는 다시 데려가 달라고 기도하며 밤마다 눈물로 지샜다. 초록색 문은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계속 나타났다.

  그가 다시 벽의 문을 마주하게 된 것은 늘 다니던 길을 벗어나 학교에 갈 때였다. 초록 문과 마주친 그는 깜짝 놀랐지만 지각할까 봐 그대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학교가 파한 뒤 아이들을 데리고 그 문을 찾아보지만 찾기는커녕 짓궂은 놀림만 받게 되었다. 열일곱이 된 윌러스는 옥스퍼드 장학생 선발 시험을 보러 마차에 탔을 때 다시 그 문과 마주치지만, 옥스퍼드행을 택했다. 이후 윌러스는 수천 번도 더 그 정원의 꿈을 꾸었지만 아름다운 여인들, 유명 인사들과 어울리는 동안 점점 기억이 희미해졌다. 그런데 마흔이 된 최근 그는 또 문을 보았다. 일주일 전, 총리와 함께 산책하며 은밀히 정치 문제를 논하던 중이었다. 평화에 이르는 기쁨의 문, 세상의 무미건조함과 허영에 찬 화려함을 벗어날 수 있는 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외면했고 문은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 내가 여기 있는 거야!"

  "그 기회를 놓쳤다는 사실이 나를 파괴하고 있네. 지금 내 맘은 달랠 수 없는 후회뿐이야."

  지금 내 옆에는 그의 사망 기사가 실린 신문이 펼쳐져 있다. 그는 어느 공사장의 문으로 들어갔다가 떨어졌다고 한다. 공사장 문이 그에게 어떤 추억을 일깨운 것일까? 그가 걸어 들어간 문은 우리에게는 위험과 죽음의 길이었다. 과연 윌러스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을까?

 

 

 

 

  그 순간 내 뒤로 문이 힘차게 덜컹거렸어나는 밤나무 낙엽과 택시들 그리고 상인들의 마차로 북적대던 거리를 잊고 있었네일종의 중력의 법칙처럼 규율과 복종이 존재하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지난 망설임과 두려움도 모두 잊고 판단의 자유도 잊고 내 삶에서 나와 친숙한 모든 것들을 잊고 있었어나는 그 순간 아주 명랑하고 놀랍게도 행복한 어린애가 되어 있었네마치 딴 세상에 사는 것 같은. -본문에서

  이 작품 벽 속의 문』은 주인공이 철없는 어린 시절에 잠깐 들어갔던 어떤 정원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곳에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결코 맛볼 수 없는 온갖 동경과 아름다움과 행복이 존재한다. 그 뒤에도 주인공은 그곳으로 들어가는 '벽 속의 초록빛 문'과 몇 번이나 마주쳤지만, 발목을 붙잡는 세상사 때문에 항상 지나치고 만다. 영혼이 맑은 한 소년의 순수한 어린 시절의 꿈이 세속적 욕망으로 멀리하게 되고 결국 하얀 담장의 초록색 문을 찾다 죽게 된다. 이 작품은 이상과 현실의 경계를 말하고 있다.

 

 

 (전략) 사람에게는 누구나 이 작품세계와 같은 문이 하나씩은 있다. 삶의 어느 시기 아직 때 묻지 않은 영혼의 눈으로 세상을 돌아보다가 만나게 되는 신비하고 환상적인 세계로의 입구이다. 비록 흰 벽에 난 초록의 문은 아닐지라도 그것을 지나면 현실의 질서들은 무력해지고 상상력은 무한한 자유로 아름다움을 즐기고 기쁨을 누린다.

  그 문은 또한 이 작품의 주인공에게서처럼 모든 사람에게 일생 한 번만 열린다. 철이 든다는 말은 그 문의 기억을 잊었다는 말이고 그래서 대개는 그런 문이 있었다는 것조차 잊은 채 어른이 되어간다. 더러 그 문을 소중히 기억하는 사람도 이 세상에서 다시 그 문을 찾으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도 그 일이 불가능함을 알 만큼 철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문을 다시 찾는 일이 전혀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때 묻지 않은 유년의 상상력과 그것에 대한 순진한 믿음만 있으면 그 문은 우리 앞에 나타날 수도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 앞에 몇 번이고 그 문이 다시 나타난 것은 성년의 삶이 언제나 비정한 현실감과 영악한 계산만으로 채워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만 모자라는 것은 용기였다. 눈앞의 성취, 닥쳐올 현실의 기회를 박차지 못해 그는 그 문을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4119쪽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