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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싱클레어 루이스 단편소설 『늙은 소년 액슬브롯(Young Man Axelbrod)』

by 언덕에서 2020. 5. 7.

 

싱클레어 루이스 단편소설 『늙은 소년 액슬브롯(Young Man Axelbrod)』 

 

미국 소설가 싱클레어 루이스(Sinclair Lewis: 1885~1951)의 단편소설로 1927년 발표되었다. 국내에서는 <버들영감, 액셀브로드>라는 제목으로 유명하지만 1996년 발간된 <이문열 세계명작산책>에서는 『늙은 소년 액슬브롯』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다. 미국 최고의 풍자소설가로 평가받는 루이스의 『늙은 소년 액슬브롯』은 늦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와 열심히 공부했지만, 낭만을 만끽하지 못하고 떠나는 늙은 학생이 그리 슬퍼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열심히 살았지만 공허했던 남자가 또다시 열심히 공부하여 65세에 대학에 입학한다. 하지만 별반 얻은 것은 없었고 짧고 강렬한 순간을 만난 것으로 보상받는다. 세상살이에 있어서 단계를 밟으며 제때 알맞은 노력을 투입해야 건실한 열매를 맺는다. 이 작품은 좀 늦더라도 원하던 길을 기어이 밟으며, 온 힘을 다해 삶의 의미를 찾는 건 행복한 일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루이스는 실제로 예일대를 졸업했으며 미국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193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나 이후로는 점점 명성이 바래져 갔다. 어릴 때부터 독서와 글쓰기에 심취했던 그는 대학 때 사회주의적 문학 성향으로 인해 동급생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 소설 속 크누트의 고독이 자신의 체험이었던 셈이다. 작가는 두 번의 이혼 후 알콜중독에 시달렸으며 말년에는 주로 해외를 떠돌며 불우한 생활을 했다.

미국 소설가 싱클레어 루이스 (Sinclair Lewis: 1885~1951)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스칸디나비아에서 이민 와서 미국인이 된 크누트 액슬브롯은 18세에 결혼하여 58세까지 열심히 일해 빚을 갚고 농장도 하나 마련했다. 그사이 아내는 죽고 말았지만, 자녀들은 장성하여 제 몫을 하며 산다.

크누트는 새로운 인생을 계획하는데 하루 18시간씩 일하던 뚝심을 살려 매일 12시간씩 공부한다. 어릴 적 꿈인 ‘유명한 학자가 되어 여러 나라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역사에 능통하게 되어 지혜로운 책들 속에서 아름다운 세계를 마음껏 즐기기 위해서다. 그는 기어이 예일대학에 입학한다.

 '화려하고 세련된 문학의 맛을 보려는’ 크누트의 소망을 안 기숙사 룸메이트 레이는 “당신처럼 늙은 사람은 그따위 쓸모없는 공부보다는 영혼 구제에 관한 문제를 생각해야 할 거요”라며 무시한다. 이처럼 모두 크누트를 괴물 취급하고 상대해주지 않는다. 가난한 고학생들과는 통할 줄 알았으나 그들은 학비를 버느라 바쁘게 뛰면서 불만만 토로한다. 책에 나오는 멋진 학생은 하나도 없고 잡담이나 하는 시시한 녀석들뿐이다. 크누트는 ‘추수 때 우리 농장 헛간 뒤에서 젊은 일꾼들이 떠벌리는 수작하고 어쩌면 저렇게도 같을까?’라고 생각하며 실망한다.

 명문가 자제나 부잣집 아이들은 크누트를 대놓고 무시하고, 존경하는 교수님까지도 크누트가 가까이 가자 경계하며 면박을 준다. 크누트는 그들을 보며 ‘모두 속이 무섭게 늙은 놈들뿐이었다. 돈벌이에 급급한 놈, 죽으라고 경기에서 기록만 내려는 놈, 일생을 두고 채점표에 성적을 써넣을 걱정만 하는 교수들, 모두 어쩌면 이렇게도 늙었을까’라고 개탄한다.

 괴물에다 외톨이가 된 크누트는 혼자 산책을 하며 마음을 달래다가 룸메이트가 ‘속물 풍류객’이라고 험담을 했던 길버트 워시번과 마주친다.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시를 논하고 뮈세 시집을 보여주는 길버트에게 크누트는 매료되고 만다. 대학에 와서 처음 마음을 열고 밤새 얘기를 한 크누트는 ‘오늘 밤은 외국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라며 기뻐한다. 길버트는 자신의 방으로 크누트를 데려가 해외여행 때 구한 진귀한 물건들을 보여주고, 자작시를 읊어준다. 그날 실제로 시 쓰는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에 크누트는 감격하고 만다. 크누트는 길버트가 준 뮈세 시집을 손에 꼭 쥐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다. 젊은이와 늙은이는 오래 결합하지 못하니 다시 길버트가 자신에게 흥미를 느끼지 않을 거로 생각하면서 좋은 기분을 안고 곧장 학교를 떠난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이민 와서 미국인이 되어 자수성가한 크누트 액슬브롯은 60대가 되었지만마음은 청춘이다그는 넉넉지 않은 상황에다 일찌감치 결혼했으니 대학에 가지 못했고그 허전함을 달래려 평생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런 크누프가 선택한 길은 놀랍게도 대학에 가기로 했다는 사실이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소설을 읽다가 예일대 생활을 화려하게 그린 내용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는 막상 공부를 시작했지만 쉽지 않다. 게다가 미국 동부 아이비리그 명문인 예일대는 들어가기 몹시 힘든 곳이다. 좌절도 하고 잠깐 포기도 했지만, 하루 18시간 일하던 뚝심으로 12시간씩 공부하여 기어이 합격한다.

 65세 신입생에게 펼쳐지는 세상은 마음과 같지 않다. 그리고 동기생들은 할아버지뻘인 크누트를 달가와 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단 한 명의 친구를 만난 크누트는 결국 학교를 떠나지만, 늙은 학생은 그리 슬퍼하지 않는다. 열심히 살았지만 공허했던 65세의 남자는 대학에서 짧지만 강렬한 순간을 맛본 것에 만족한다. 좀 늦더라도 원하던 일을 기어이 해내며, 온 힘을 다해 삶의 의미를 찾는다.

 

 

 (전략) 삶에는 시기마다 거기에 걸맞은 단계와 환경이 있다. 대학은 학문의 최종적인 성숙을 이루는 곳이기는 하지만 예순다섯의 노인이 무얼 새로 시작하기에는 합당한 삶의 단계도 환경도 아니었다. 액슬브롯은 그걸 어긴 벌을 소외와 고독으로 받는다. 그가 젊은 날에 눈부시게 바라보았던 학문과 예술의 이데아는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고 낭만적인 대학 생활이나 달콤하면서도 풍성한 우정도 그의 것은 못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하룻밤 무슨 황홀한 꿈처럼 다가온 충족이 그 모든 것을 보상한다. 손자뻘밖에 안 되는 시인 지망생을 만나 우정을 나눈 하룻밤이 그랬다. 비록 고급스럽고 세련된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는 예술과 학문의 원래적인 가치와 의미를 맛볼 수 있었던 몇 시간은 울적하고 불만에 차 보냈던 지난 일 년을 보상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 내가 대학에 온 목적은 바로 이거다. 이 하룻밤을 위해 나는 대학에 왔다. 이 기분을 잡치기 전에 어서 떠나야지.”

 그 엉뚱한 늙은 소년은 그같은 중얼거림과 함께 대학을 떠난다. 어쩌면 그것은 새로운 눈뜸이 아니라 그의 예순다섯 나이가 헛되지 않아 얻게 된 눈썰미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고 생각할 때 그대로 남아있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 우리가 무엇을 자신만만하게 외치는 순간도 가장 확실한 것은 그 순간 우리가 그렇게 느꼈다는 것뿐이다. 늙은 소년 액슬브롯은 바로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3권 231쪽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