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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키플링 중편소설 『왕이 되고 싶었던 사나이(The man who would be king)』

by 언덕에서 2020. 3. 26.

 

키플링 중편소설 『왕이 되고 싶었던 사나이(The man who would be king)』 

 

영국 소설가 키플링(Joseph Rudyard Kipling.1865.1936)의 단편소설로 1888년 발표되었다. 1865년 인도 봄베이 출생한 키플링은 18821889년 간에는 인도의 저널리즘계에서 활약하였다. 또 세계 각지를 여행했는데 그의 작품은 인도 대륙을 소재로 한 것들이 대다수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소박한 이야기를 적은 기행 단편집 <고원 평화( Plain Tales from the Hills)>(1888), 이리에게 양육되고 가지가지 야수에 뒤섞여서 숲속의 규율에 잘 따르는 소년을 묘사한 단편 소설집 <정글 북(The Jungle Book)>(1894), 라마승을 따라 여행을 떠나는 고아의 이야기 <(Kim)>(1901) , 인도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써서 명성을 얻었다. 한편, 인도 주둔군의 군대 생활을 주제로 한 시집 <병영의 노래>(1892) 외에 <일곱 바다(The Seven Seas)>(1896) <퇴장의 노래>(1897) 등의 시편이 제국주의의 풍조에 편승하여 애국시인으로 선전되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특징이 없고 표현 수법은 거칠어 얼마 후에는 시대에 뒤떨어지고 말았다는 평을 받곤 했다. 그럼에도 키플링은 <정글북>으로 1907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이 작품  왕이 되고 싶었던 사나이』는 1800년대 후반의 인도와 아프가니스탄 사이에 위치한 가상의 국가 '카프리스탄'이라는 나라의 왕이 되려는 야망을 품은 두 젊은이의 삶과 죽음을 냉소적이고 유머러스한 문체로 그리고 있다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한 인도 변방의 한 지역에서 부랑 생활을 하던 두 젊은이의 사적인 욕망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영국 주류 사회의 눈높이에서는 양아치나 다름 없는 두 젊은이가 유럽의 열강이 아직 차지하지 않은 지역의 주인 노릇을 자신들이 해보겠다는 야심을 드러낸다. 19세기 후반의 신대륙을 찾아 떠나는 다소 낭만적인 필치와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쓰인 이 소설은 인간의 삶에 대해 여러모로 성찰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작품은 1975년 존 휴스턴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었다. 

 

영화 [왕이 되고 싶었던 사나이], 1975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두 사기꾼 모험가 다니엘 드라보트과 피치 카르네헨은 인도에 주둔했던 영국 군인이었다. 즉, 다니엘은 피치라는 부인물(副人物)을 거느리고 인도를 떠도는 소(小)악당 혹은 건달로 절도, 총기밀수, 협박 등 건달 짓을 일삼다 인도에서 추방된 뒤 아프가니스탄 동부의 산악지대 카프리스탄 외지로 떠나 통치자 행세를 하기로 계획한다.  

  혹독한 기후를 이겨내며 힘들게 산을 넘은 두 사람은 아름다운 골짜기에 도착하고, 거기서 만난 빌리 피쉬와 함께 사제들의 보물을 훔쳐내려는 음모를 꾸민다. 그들 일행은 배교자들의 도시 시칸더굴을 습격하고, 그 와중에 다니엘이 가슴에 화살을 맞게 되지만 펜던트1 덕분에 목숨을 건지게 된다. 이를 본 원주민들은 화살에 맞고도 죽지 않은 다니엘을 신이라고 믿게 되고, 알렉산더 대왕의 화신이 된 듯한 다니엘은 왕으로 취임하여 그들에게 재산을 바칠 것을 요구한다.

  다니엘은 점차 자기 기만적인 오만에 빠져들고 보물을 갖고 떠나기보다는 자신이 진짜 신이라고 믿기 시작한다. 다니엘은 원주민 여인과의 결혼까지 강행한다. 그러나 신과 결혼한다는 두려움에 떨던 원주민 여인, 록산느는 다니엘의 얼굴을 물어뜯는다. 다니엘의 얼굴에서 흐르는 피를 보고 그가 신이 아님을 알아챈 원주민들은 두 사람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신도 악마도 아닌 사람일 뿐이야."

  누군가 크게 외치자 사제와 주민들은 일제히 다니엘에게 달려든다. 거짓의 가면이 벗겨질 때, 신처럼 떠받들었던 사람들의 배신감은 폭동으로 이어진다. 눈앞에는 죽여 버리겠다며 몰려든 군중, 등 뒤에는 천 길 낭떠러지. 쫓기다 총까지 맞은 다니엘은 더 도망갈 곳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다니엘은 목숨을 구걸하는 대신 협곡 사이, 자신이 건설한 흔들다리 위에 올라 비장하게 소리친다.

  "이 망할 놈들아! 신사답게 죽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겠다! 이 빌어먹을 놈들아. 이제 다리를 끊어!"

  그가 신인 줄 오해하고 왕으로 떠받들었던 사람들은 마지막 포효마저 조롱했지만, 다니엘 드라보트 자신은 비로소 진짜 인간, 진짜 문명인, 진짜 왕이 된 순간이었다. 그는 끝도 없는 협곡 아래로 떨어지며 바위 이곳저곳에 몸이 부딪쳐 산산조각 깨져 죽고 만다.

  동료였던 피치 카르네헨도 주민들에게 붙잡혀 두 손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통을 당하지만 죽지 않고 살아나 도시로 돌아온다. 그가 유일하게 안고 온 것은 황금 왕관을 쓴 말라비틀어진 다니엘의 머리뿐이다. 그러나 만신창이가 된 피치의 몸 또한 오래 견디지 못하고 곧 숨을 거둔다.

    

영화 [왕이 되고 싶었던 사나이], 1975

 

  인도 주재 신문사의 기자인 ''는 우연히 부랑 생활을 하던 두 젊은이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닥치는 대로 살던 그들은 마침내 왕이 되어보겠다는 욕망을 품게 되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별 반응이 없자 그들의 길을 떠난다.

  술수와 우연을 통해 두 젊은이는 원주민들의 왕이 되어 신적인 대우를 받게 되나 우연한 계기로 진실이 밝혀지고 둘은 결국 원주민들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는 처지가 되고 만다작가는 두 젊은이와 원주민, 어느 쪽의 편도 들지 않은 채 인간의 내면과 욕망의 결과를 독자 스스로 판단하게 한다. 술수와 함께 우연의 일치로 신의 자리까지 오르게 해 준 주민들에 의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아이러니다.

  결국, 왕을 만드는 것과 왕을 죽이는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평범한 인간을 왕으로 만든 주민들이 결국 자신과 같은 인간임을 알고 분개한 것은 타당성이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품게 한다. 이것이 거짓의 가면을 쓰고 왕이 될 수는 있었으나 본래 왕이 될 자격은 없었던, 그러나 왕이 되고 싶었고 용감하게 왕위에 도전했으며 잠시나마 왕좌에 앉았던 사내의 최후이다.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로 지배하던 시대에 영국에서 건너온 두 부랑자인도에서 사기와 협잡을 일삼으며 그냥 그렇게 살아가던 두 사나이는 자신들의 술수가 통할 법한 새로운 땅으로 들어가 왕이 되기를 희망하고 길을 떠난다작은 부정과 큰 부정작은 부패와 큰 부패가 뒤섞여 만들어낸 '통치권의 공백'이라는 사회적 공황 상태를 보여주는 소설이다신식 총으로 상징되는 문명의 위력과 비밀결사로 상징되는 절대자의 위력을 풍자하고 있다.  

 

  

 

  1800년대 서구 세계는 발달한 문명을 앞세워 그들의 영향이 아직 미치지 않은 곳에서 주인 행세를 하겠다는 나라가 대다수였다. 상업혁명과 산업화 이후 커진 경제력을 바탕으로 식민지를 개척하던 유럽 열강의 그러한 뜻은 평범한 시민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이 소설은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한 인도의 한 지역에서 부랑 생활을 하던 두 젊은이의 사적인 욕망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유럽의 열강이 아직 차지하지 않은 지역의 주인 노릇을 자신들이 해보겠다는 야심을 드러낸다.

  두 주인공은 술수로 왕이 되고 마침내 신적인 대우를 받게 된다. 하지만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는 법이다. 왕을 자처한 다니엘 드라보트는 자신이 선택한 여자를  왕비로 삼으려는 단순한 사고로 인해 사기행각과 욕망이 드러나 원주민에게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전략) "이 망할 놈들아! 신사답게 죽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겠다!

  반란을 일으킨 원주민들에게 사로잡혀서 계곡의 줄다리 위로 끌려 간 상태에서 그렇게 태연하게 말하는 다니엘은 이미 지난 날의 건달 사기꾼은 아니다. 그리고 흔들흔들하는 다리 한가운데까지 걸어가, "자, 이 빌어먹을 놈들아, 이제 다리를 끊어!" 하고 외칠 때 그는 진정한 왕이 된다. 빌어먹을 놈, 즉 거지는 그들이 건달로 떠돌 때조차도 마음놓고 경멸할 수 있는 계층이었다. 그렇게 다니엘은 자기를 죽일 수 있는 자들에게 가차없는 경멸로 명령하고 아득한 죽음으로 떨어져 내린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왕답게 죽는 순간에 비로소 그는 왕이 된다. (<이문열세계명작산책>7권 264쪽에서 인용) .

  죽음에 이르러서도 왕이었던 사실을 인정받으며 죽으려는 태도는 씁쓸함을 남긴다해골 위의 왕관의 모습에서 인간적 욕망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은 인간의 모습을 노골적으로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키플링 특유의 냉소적이고 유머러스한 생각을 구어체로 풀어나가기 때문에 읽기에 부담이 없다. 주인공에 대한 어떠한 동정이나 야유 없이 차분하게 전개해 나가며, 독자의 시선을 유도한다. 또한, 왕이라 추대했다가 자신과 같은 인간임을 알았을 때 여지없이 배반하는 주민들의 모습에도 어떠한 감정이 묻어나지 않는다. 키플링은 100여 년이 지난 오늘, 드라보트와 카르네헨, 두 인물을 통해 인간 내면의 욕망과 그 결과에 대한 모든 판단을 독자에게 남긴다.

 

  1. pendant. 가운데에 보석과 같은 장식을 달아 가슴에 늘어뜨리게 된 목걸이.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