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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헤르만 헤세 단편소설 『험한 길(Ein Schmerzhafter Weg)』

by 언덕에서 2020. 1. 24.

 

헤르만 헤세 단편소설 『험한 길(Ein Schmerzhafter Weg)』 

 

독일 소설가·시인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1877~1962)의 단편집 <Märchen>에 수록된 소설로 1919년에 발표되었다. 'Märchen'이란 원래 '짧은 이야기'라는 뜻으로, 아이들에게 읽히기 위해, 고대부터 전승되어 온 동화를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02년 [민음사]에서 『환상동화집』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이 작품 험한 길19164월과 5월에 쓰였다. 헤세의 위기가 고조된 시기로 심리학자 융의 제자 랑 박사에게 정신분석적인 치료를 받던 때였다. 작품 속 등산안내자는 다분히 심리치료사를 암시한다. 그는 지도력과 냉정함을 지닌, 인간적인 나약함은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다. 동행자인 주인공은 그에게 동의하고 그와 비슷해지고 그를 따르고 싶으면서도 그 완벽함에 내심 반감이 생기기도 한다. 긴장과 위험을 무릅쓰고 험한 산을 등반하는 것이 부질없는 일인 양 생각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괴로운 길>이란 제명으로도 번역되어 소개되기도 했다. 헤르만 헤세는 1946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독일 소설가&middot;시인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1877~1962)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협곡 입구에 다다른 나는 걸음을 멈추고 마을을 되돌아본다. 그곳은 따스하고 흐뭇한 세계였으며, 산으로 올라가려는 나를 자꾸 부르는 듯했다. 안내인에게 쉬었다 가자고 하며 주저하다가, 나는 산행을 계속했다.

  다시 돌아본 마을은 아무런 매력도 없는 거친 장소가 되어 있었다. 산길은 험했다. 나는 말 없이 슬픈 마음으로 안내인을 따라가면서 점차 용기를 회복했다. 정상에 올라 보니 그 장소는 고독과 공허, 황량하게 구멍이 뚫린 어지러운 공간이었으며 '울음'이 내 안에서 치밀어 올랐으나 울면 안 되었다. 이후 내 마음은 맑아졌고, 마음이 맑아짐에 따라 미끄러운 바위도 없어졌다.

  마침내 봉우리에 올랐을 때는 상상조차 못 할 환희가 생겨났다. 그곳의 검은 새가 도약하자 안내인과 나는 행복과 환희의 고통으로 경련하면서 어머니의 가슴을 향하여 날아갔다.

 

 

 

 

 

 이 작품은 단편 소설이면서도 짧은 내용에 비해 심오한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다. ''는 험한 산길과 편안한 마을 사이에서 고민하는데, 여기서 '산길''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한 구도의 길'이고, '마을''평범하고 안일한 삶의 공간'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햇살이 눈 부신 정상에 도달하자 헤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새의 안내' 모티브가 나온다. 작가가 이후에 발표한 소설 <데미안>에 등장하는 '아프락사스'와 같은 존재다. 산봉우리에 이상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그 위에 검은 새가 앉아 영원을 노래하고 있다. 새는 날갯짓을 하며 세상 속으로 몸을 던진다. 그러자 안내인도, 주인공도 뒤를 따른다.

  여기서 는 죽음과 부활과의 불사조 같은 관계를 상징한다. 그것은 무의식의 아니마 anima가 의식으로 상승하여 인간을 그 운명의 지배자로 만드는 것을 암시한다.

 

 

  구도의 길에 나선 ''는 자신의 선택에 대하여 수많은 번민을 하지만, 결국은 힘겹게 뜻을 이룬다. ''가 발견한 것은 환희의 세계가 아니라, 고독과 전율의 세계였다. 그러나 그것은 마침내 인간이 영원한 안식의 세계로 비상할 수 있도록 하는 바로 그 통로였다 고독한 수행의 길을 통하여 존재의 본질을 발견하고, 그것을 통하여 삶을 초탈하는 힘을 얻는다는 것, 거기에는 실존의 철학이 담겨 있고, 동양적인 초월의 정신이 담겨 있다.

  ‘산길과 마을은 대조되는 의미를 지니는데, 전자는 존재의 본질을 찾기 위한 구도의 길이고, 후자는 평범하고 안일한 삶을 위한 장소이다. 나는 마을의 유혹을 뿌리치고 산 정상에 오르게 되는데, 그곳은 고독과 전율의 세계였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한 안식의 세계로 비상할 수 있도록 하는 통로가 되어준다.’  고독한 수행의 길을 통하여 존재의 본질을 발견하고 삶을 초탈한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작가의 철학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