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 단편소설 『고향(故鄕)』
중국 작가 루쉰(魯迅:1881~1936)이 1921년 발표한 단편소설로, 1923년 8월에 단편 소설집 <납함(吶喊)>에 게재되었다. 중국의 현대소설 창시자로 추대되고 있는 루쉰의 이 소설집은 1918년으로부터 1922년 사이에 쓴 소설 14편을 수록하고 있는데 단편소설 『고향(故鄕)』은 그중 대표작이다.
주인공이 살았던 고향에 관한 관찰을 통하여 신해혁명1 전후에 날로 파산되어 가고 있던 구 중국 농촌사회의 현실을 개괄하고 봉건제도와 그 세력이 육체적ㆍ정신적으로 농민들에게 준 박해와 유린을 심각하게 폭로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루쉰은 중국 사회에 대한 희망이 농민에게 있음을 밝히고 있다. 동시에 장기간 봉건 계급 사상의 통제하에서 형성된 그들의 보수적이며 우매하고 마비된 정신 상태를 심각하게 드러내어 표현했다.
작품에 등장하는 룬투(閏土)라는 인물은 그 당시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빈곤한 농민의 전형적 형상이다. '나'는 고향에 돌아와 옛날 죽마고우 '룬투'를 만나게 되고, 그 만남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대비하는 일인칭 소설로 농민이 당했던 재난을 그리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나는 매서운 추위를 무릅쓰고 이천여 리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20여 년 만에 고향을 찾아왔다. 고향에 오니 그곳은 나의 어렸을 때의 아름다운 추억이 살아 있는 곳이 아니었다. 발전된 것도 없이 모두 이상하게 변했을 뿐이었다.
나는 이제 고향을 영영 이별하기 위하여 왔는데, 어머니는 떠나는 것이 몹시 섭섭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이웃과 친척들에게 인사를 하라고 하셨다. 나는 어렸을 적 같이 놀던 룬투가 보고 싶었다. 룬투도 내 얘기를 자주 했다고 했다. 룬투는 우리 집의 농사일을 도와주던 하인 같은 이의 아들이었다.
마침내 룬투가 왔지만, 그는 몹시 변해 있었다. 옛날처럼 정겨운 모습은 보이지 않고 가난 속에서 아주 현실적인 사람이 되어 있었으며, 내게도 존댓말을 사용하였다. 그곳 사람들은 모두 나를 옛날 사람이 아닌, 출세해서 달라진 사람으로 취급했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얻어가기를 바랐다. 그런 모습은 내게는 몹시 역겨웠다. 나는 고향을 떠나는 배 안에서 고향과 고향 사람들을 생각하며 슬픔에 잠겼다.
여러 해 동안 고향을 떠나 있던 주인공인 ‘나’는 집을 정리하고 가족을 데리러 귀향하여, 어릴 적 동무인 룬투를 만난다. 룬투가 늙고 생활에 쪼들리며 신분이 매우 멀어졌기 때문에 어릴 적 동무인 자기를 ‘나으리’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나’는 추억이 사라진 것을 보고 슬퍼한다. 그러나 ‘나’의 조카와 룬투의 어린 아들은 옛날의 자기들처럼 사이좋게 놀고 있다. 고향을 떠나는 배 속에서 ‘나’는 이다음 세대의 꿈만큼은 잃게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며, 염원과 체념의 두 가지 생각에 사로잡힌다. 추억과 현실이 교차하는, 루쉰의 작품 중 서정적인 작품이다.
(전략)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없다고 할 수도 없다. 그건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사실 땅에는 원래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길이 되는 것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위 구절에서 애국적이고 계몽적이며 사실적인 작가가 사회주의적이고 비판적이며 전투적인 문사로 변모하기 전의 예비단계 같은 면모가 느껴진다. 중국 절강성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국민당 정치탄압의 여파로 폐결핵을 앓다가 죽어간 그의 파란 많은 삶은 이미 소년 때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대부호이자 집안의 중심이었던 조부가 갑자기 체포, 투옥되고 이로 인해 그의 일가가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사건이 발생한 것은 그가 열세 살 나던 해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아버지는 지병인 폐결핵이 악화되고 가족의 헌신적인 간호에도 불구하고 3년 뒤 세상을 떠났다.
'누구라도 평온한 가정에서 곤궁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겠지만 나는 이 과정 속에서 세상 사람들이 가진 대부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 첫번째 소설집 <납합(吶喊)>의 자사에서 이렇게 회고하고 있거니와 갑작스런 집안의 몰락을 통해 그가 배운 것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를 움직이는 냉혹한 힘의 논리였다.(<이문열 세계문학산책>8권 156쪽에서 인용함)
단편소설 『고향』은 소설집 <납함(吶喊:방황)>에 수록된 작품으로 1919년 루쉰이 북경에서 고향에 돌아와 가사를 정리할 때에 얻은 경험이 바탕이 되었다고 전한다. 이 작품은 다른 작품에 비교하여 감상적인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고 있지만, 낡은 사회로부터 새로운 사회로 이행해 가는 과도기에 볼 수 있는 가치관의 혼란 상태를 잘 그려 내고 있다.
♣
룬투의 모델이 되었던 실제 인물은 저우쭤런의 회고에 따르면 장원 쉬이(章运水)라고 알려져 있다. 그는 사오싱 동북쪽 해변 출신으로 루쉰의 집안에서 하인으로 일했다. 루쉰은 장윈 수이와의 네 번의 만남 중 처음과 마지막 만남을 토대로 하여 이 소설을 창작했다고 전해진다. 물론 소설적 형상화와 실제 사건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긴 하지만, 소설에서 묘사된 모습과 루쉰의 전기적 사실을 종합함으로써 루쉰의 문학적 입장과 이 작품의 특징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단편소설 『고향』은 그의 세계적인 작품 <광인일기>, <아Q정전>과 함께 루쉰의 대표작 중의 하나이다. 루쉰의 작품이 대부분 풍자성이 강한 데 비해, 이 작품은 서정적인 면이 강하게 나타나 있어, 이를 통하여 그의 따뜻한 인간성을 엿볼 수 있다. 작품 속에 묘사된 고향은 바로 루쉰의 고향이며 ‘나’는 루쉰 자신이라고 볼 수 있어, 일종의 신변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루쉰의 여러 작품 중에서 ‘고향’은 특히 많은 사람이 애독하는 작품이다.
- 신해혁명(辛亥革命)은 1911년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성립시킨 중국의 혁명이다. 이 혁명은 중국사에서 처음으로 공화국을 수립한 혁명이라서 공화혁명이라고도 불린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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