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소설 『임경업전(林慶業傳. 임장군전)』
작자, 연대 미상의 고대 군담소설로 1책으로 구성되며, 한문본과 국문 목판본ㆍ활자본이 함께 전하나 한문본이 선행본이며 <임장군전> <임충신전> 등의 여러 이본이 있다. 전하는 판으로는 목판본 3종과 활자본이 있다.
목판본 모두 경판본 <님장군젼>으로서,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27장본, 일본 도요문고에 소장된 21장본, 단국대학교 율곡기념도서관 나손문고에 소장된 16장본이 있고, 활자본은 세창서관에서 간행된 『임경업전』이 있다. 목판본과 활자본은 전체적인 내용상으로는 별 차이가 없으나, 활자본은 뒤에 이루어진 임경업의 연보를 참조하여 보충한 것으로 보인다. 인조 때의 명장 임경업의 생애를 전기체로 엮은 작품인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치른 뒤의 척외사상, 특히 배청사상이 전편을 통해서 그 심층에 깔렸다.
조선 시대에 저작된 대부분의 군담소설이 사실을 비현실적으로 과장하거나 허구화한 데 대하여, 이 작품은 비교적 정사적 사실에 충실한 고대소설이다. <임충민공실기(林忠愍公實記)>를 비롯해 <조선역대명장전> <국조인물지> 등의 임장군 실전과 그 내용이 거의 일치한다. <박씨전>과 자매편적 성격을 가지는 작품으로, 임경업의 행적과 무용 등을 엮은 작품인데, <박씨전>과 마찬가지로 병자호란의 치욕에 대한 보복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임경업전』은 정조의 명령에 따라 임경업에 관한 유문ㆍ비문ㆍ행장ㆍ연보ㆍ사당봉안제문ㆍ현령록 등의 실기를 모아 1791년에 간행된 <임충민공실기>를 참고하고, 민간에서 구전되는 설화를 토대로 하여 창작된 것으로 보인다. 경판본 <님장군전> 끝에 김자점을 처치하고 임경업의 집에 정문을 세우며, 장군의 고향인 달천에 서원을 세우고 장군의 화상을 모셔 제사 지내도록 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사실 및 역모의 누명을 쓰고 죽은 임경업이 1697년(숙종 23)에 신원복관되고, 1726년(영조 2)에 달천에 충렬사가 건축된 사실을 아울러 참조할 때, 이 작품의 형성은 1726년 이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충주 달천촌에서 태어난 임경업은 25세에 무과에 급제, 사신을 따라 중국에 가게 되었는데 호국이 가달의 침략을 받아 명나라에 장수를 요청하자 임경업이 대신 출전하여 물리친다. 그 뒤 호국이 강성해져 조선을 위협하자 조정에서는 임경업을 의주부윤으로 삼는다.
호국군은 임경업을 두려워하여 함경도 쪽으로 돌아 쳐들어 와 서울을 공격, 인조가 항복하기에 이른다. 이 소식을 듣고 임경업은 돌아가는 호국군을 공격하려 하나 인질로 잡힌 세자의 만류로 할 수 없이 그만둔다.
호국왕은 명나라를 치겠다면서 임경업을 대장으로 보내 달라고 요청한다. 김자점이 적극 나서서 조정에서는 임경업을 보내게 되었는데, 임경업은 호국으로 가던 중 호송하던 병사를 죽이고 머리를 깎고 중으로 변장하여 명나라로 간다. 그는 명나라군과 힘을 합해 호국을 치려고 하나 간계에 걸려 호국으로 잡혀가게 된다.
호왕은 임경업의 인품과 충절에 감탄하여 죽이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조선으로 돌려보낸다. 돌아온 임경업은 김자점의 음모에 말려들어 원통한 죽임을 당한다.
인조는 꿈에 나타난 임경업의 얘기를 듣고 김자점을 잡아 죄를 묻고 처형한다.
이 소설은 임진왜란ㆍ병자호란을 겪은 뒤의 척외사상의 밑바탕이 되고 있으며, 전기적 요소가 많은 다른 군담소설에 비교해 비교적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나라가 어려울 때 뛰어난 영웅의 출현을 바라는 민중의 소망이 반영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이 소설은 병자호란의 영웅 임경업을 전설화한 작품인데, 역사적 전쟁을 취급한 것인 만큼 조선 소설의 공통된 해피엔딩이 아니고, 비명의 폭사로 끝나는 독특한 수법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소설의 내용은 실제 사실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병자호란은 정해진 국가의 운수로서 결코 우리 민족의 힘이 부족한 때문이 아니라는 의식과 조정에 김자점과 같은 간신이 있어서 임경업과 같은 유능한 인물이 제대로 활약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호란과 같은 국치를 당하였다는 집권층에 대한 비판의식을 아울러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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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비운에 쓰러진 명장의 일생을 영웅화한 작품으로 역사소설에 속한다. 호국에 대한 강한 적개심과 나라가 위기에 처했는데도 개인의 사리사욕만을 일삼던 간신에 대한 분노를 민족적ㆍ민중적 차원에서 소설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역사적 사실이 부분적으로 반영되어 있으나, 기실은 외적의 침입으로 수난을 겪은 조선조의 국민이 모두 지난 역사를 반성하고 국난 중에 영웅의 활약을 갈망하고 있음에 부응하여 <임진록> <박씨전> <최고운전> 등과 함께 창작된 허구적 작품이다. 조선 후기 민족의식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 임경업(林慶業.1594.선조 27∼1646.인조 24) : 조선시대 무관. 호 고송(孤松). 1618년 무과에 급제, 1624년 이괄의 난 때 정충신의 휘하에서 진압에 공을 세워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 1등이 되고, 그 뒤 평양중군(平壤中軍)ㆍ청북방어사(淸北防禦使) 겸 의주부윤(義州府尹) 등을 역임. 병자호란 때는 백마산성에서 잘 싸워 적의 진로를 차단했다. 그 뒤 1638년 평안도 병마절도사 겸 안주목사(安州牧使)에 올랐다가 1640년 청 나라의 요청으로 주사상장(舟師上將)이 되어 명 나라 공격에 나섰으나 철저한 친명 배청파(排淸派)로서 명 나라와 내통했다. 이를 청 나라가 탐지, 체포되어 압송 도중 탈출, 회암사에 들어가 중이 되었다가 1643년 명 나라로 망명, 명군충병(明軍總兵)이 되어 청 나라 공격에 나섰으나 포로가 되었다. 이때 심기원의 모반사건에 관련되었다는 김자점의 모함을 받아 옥사당하였다.
☞ 심기원 역모사건 : 1644년(인조 22) 인조반정의 1등 공신 심기원(沈器遠)이 주도하여 회은군(懷恩君)이덕인(李德仁)을 추대하려다가 발각된 역모 사건이다. 황익(黃瀷)·이원로(李元老) 등은 심기원이 병자년의 치욕 이후 인조의 미온적 태도에 불만을 품고 이같은 상황을 타개하고자 역모를 모의하게 되었다고 고변하였다. 훈국(訓局) 대장(大將)구인후(具仁垕) 등의 재빠른 조치로 심기원 일당은 일망타진되었다. 심기원은 역모 사실을 부인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구인후, 황익 등은 역모 진압의 공으로 영국공신에 봉해졌다. 1642년(인조 20) 명나라로 도주할 때 심기원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임경업도 이 역모와 관련된 것으로 의심을 받아 후일 청(淸)에서 소환되어 고문을 받다가 사망하였다.
☞ 김자점(金自點.1588.선조 21∼1651.효종 2) : 조선 인조 때 문신. 자 성지(成之). 호 낙서(洛西). 본관 안동. 질(礩)의 5대손.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이귀(李貴) 등과 모의하여 인조반정에 공을 세워1등공신에 훈록되어 낙흥부원군(洛興府院君)에 봉군되고, 영의정에 이르렀다. 그의 손자 세룡을 인조 후궁 조귀인의 딸 효명옹주와 결혼시키고, 세력을 잡아 조정을 문란시켜 파면되었다. 효종은 즉위 후 김상헌 등의 제현(諸賢)만을 가까이 하자 이를 질시하여 효종이 청 나라를 치려 한다는 사실을 청 나라에 밀고하니, 청병(淸兵)이 국경에 와서 사실 여부를 질문하였다. 이에 역모(逆謀)로 몰려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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