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소설 『죽부인전(竹夫人傳)』
고려 말엽의 학자 가정(稼亭) 이곡(李穀. 1298∼1351)이 지은 가전체 설화(說話)1로 작자는 이색(李穡)의 아버지로서 문장에 뛰어났는데, 이 설화는 대나무를 의인화하여 곧은 절개와 그 무사(無嗣)2함을 그린 작품이다. 이는 일종의 '열녀전'으로서, 남녀관계가 문란하였던 당시의 사회상을 풍자한 설화이다. 조선시대 학자 서거정의 <동문선> 권 100에 실려 전한다.
내용은 죽씨의 조상이 조상 대에 큰 공을 세웠고, 후손들은 재주가 뛰어났으며, 절개가 굳어 세상의 칭송을 받았는데, 죽부인 역시 어진 부인으로 바르고 깨끗하기 어려움을 무릅쓰고 절개를 지키며 살아갔다는 이야기다. 유교적인 가치관인 '열(烈)'을 주제로 하여, 열녀전적, 교훈적 내용이다. 이렇듯 사물을 의인화하여 전기(傳記) 형식으로 서술하는 문학 양식인 가전체가 조선조에 들어와 춘향전 등과 같은 열녀상을 낳게 하는 원류가 되었으리라는 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송나라 작품인 장뢰의 <죽부인전>의 영향을 받았으리라고 추측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부인의 성은 죽(竹)이요, 이름은 빙(憑)이며, 위빈인(渭濱人) 운의 딸이다. 그 조상은 음률에 밝아 황제가 뽑아 악(樂)을 맡게 하였었다. 주(周) 나라 때에는 간(竿)이라는 인물이 있었으니 또한 죽씨의 후손이었는데, 태공망과 더불어 위빈에서 낚시질했다.
태공이 바늘을 만드는데, 간이 말하기를,
"나는 들으니, 큰 낚시에는 바늘이 없다고 합디다. 낚시의 대소는 굳음과 곧음에 있는 것이니, 곧은 자는 나라를 낚시질 할 수 있고, 굽은 자는 고기를 얻음에 불과하다고 합디다."
하였다. 태공이 이 말을 따르니, 후에 과연 문왕의 스승이가 되어 제 나라 군주에 봉함을 받게 되었다. 간의 현명함을 들어 위빈으로써 식읍으로 삼으니, 이 죽씨가 위빈에서 일어나게 된 연유이다. 지금은 자손들이 퍽 많아서 임(箖)ㆍ어(箊)ㆍ군ㆍ정(筳) 들이 모두 이것이다. 양주(揚州)에 옮긴 자는 조탕이라 부르고 호중(胡中)으로 들어간 자는 봉(篷)이라고 한다.
죽씨는 대개 문무의 재주가 있으니, 세상에 있어 변(籩)ㆍ궤(簋)ㆍ생(笙)ㆍ우(竽)는 예악(禮樂)에 쓰이고 사어(射漁)의 비(微)함에까지 이르러 전적(典籍)에 실리니, 여기저기에 볼 수 있는 바이다.
오직 감만이 성이 극히 둔하여 마음이 막혀서 학문하지 않고 마치었다. 익모녀(益母女)를 얻어 자식 하나를 낳으니, 이가 곧 부인이다. 어려서도 정숙한 모습이 있었는데, 이웃에 의남(宜男)이 있어 음사(淫詞)로서 이에 덤비니 부인이 노하여 말하기를,
“남녀가 비록 다르나 절(節)을 지킴은 같은지라 한번 사람에게 꺾이면 어찌 다시 세상에 서리오.”
라고 함에 의생(宜生)은 부끄러워 가 버리고 말았다. 성장한 후 송대부(松大夫)가 예로 부르니, 부모는,
“송공은 군자라 그 아조(雅操)가 우리 집과 더불어 알맞다.”
하고 드디어 시집을 보냈다.
부인의 성(性)은 갈수록 더욱 견후(堅厚)하여 혹 일을 맡아 분별할 때에는 그 빠름이 마치 칼로 잘라 풀어 버리는 듯하였다. 송공은 부인보다 18세 위였는데, 늦게 선(仙)을 배워 곡성산에 들어가 석화(石化)하여 돌아오지 않으니, 부인은 홀로 있어 때로는 위풍을 노래하니, 그 마음은 요요하여 스스로 지니지 못하였다.
『죽부인전』은 대나무를 의인화해서 현숙한 여인의 모습과 함께 여성의 정절에 관하여 서술한 교훈적인 글이다. 작가는 먼저 죽씨의 가계(家系)를 들어 조상의 훌륭하였음과 후손이 뛰어났음을 말하였다. 이는 후대 고대소설이 주인공의 출생을 미화하는 방법과 유사하다, 이러한 가정에서 태어난 주인공은 어려서부터 정숙하였으며, 지조 높은 군자와 결혼한 뒤는 더욱 강직하고 깔끔하게 생활을 하다가 남편을 잃은 뒤는 절개를 지키다가 생애를 마쳤는데, 나라에서 알고 포상하였다는 이야기로 되어 있다.
이 이야기는 유교 사회에서의 여성의 한 이상형으로서 열녀의 표본을 내세운 내용이다. 이 이야기는 후세에 많이 발생하는 '열녀전' 류의 원형이라고 보아도 좋을 듯하다.
♣
죽부인은 대로 엮은 통발 모양의 것으로 여름에 이것을 안고 있으면 바람이 잘 통하여 시원하므로 남자가 안고 자는 것이므로 '부인'이라 부른다. 그러나 여기서는 대나무와 소나무의 절개를 주제로 하여 사대부의 절개를 강조한 것이다.
이곡이 살던 당시의 고려는 유교 사회가 아니었으므로 궁궐은 물론, 여염에서도 남녀관계가 극히 자유로웠다. 유교를 공부하는 학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모습이 문란과 퇴폐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이 퇴폐적인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하여 일종의 열녀전을 『죽부인전』이라 칭하여 세상에 내어놓은 듯하다. 죽부인을 당시의 이상적인 여인상으로 부각하려는 저자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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