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의 희곡

이오네스코 희곡 『코뿔소(Rhinoceros)』

by 언덕에서 2019. 12. 9.

 

이오네스코 희곡 『코뿔소(Rhinoceros)』

 

 

루마니아 출신 프랑스 극작가 외젠 이오네스코(Eugene Ionesco.1912 ∼ 1994)의 희곡으로 1960년 초연되었다.

 이오네스코의 극(劇)은 '블랙 코미디'라고 불린다. 그것은 일순간 웃음을 자아내지만, 배후에 섬뜩하고 잔인한 느낌을 담고 있는 블랙 유머를 포함하여 냉소․잔인․음산하면서 풍자적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도 인간이 코뿔소로 변한다는 희극적인 소재를 이용해 현대 생활의 밑바닥에 깔린 존재에 대한 불안감을 극화하고 있다.

 이오네스코는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소년 시절을 프랑스에서 보내고 부쿠레슈티 대학을 졸업하였다. 그는 비평 활동을 하다가 1938년부터 프랑스에 정착하여 근대시를 연구하였다. 오늘날 그의 이름은 세계적인 희곡 작가로 알려졌지만, 1956년 〈의자〉가 두 번째로 상연되기까지만 하더라도 푸대접을 받았다. 그는 기존 희곡의 관습을 완전히 뒤집어엎어 놓았다.

 일상적인 상황이 어느 틈에 환상적이며 기괴한 방향으로 뻗어 나간다. 예를 들면 아파트에 버려둔 시체가 자랄 대로 자라서 산 사람이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기도 하고, 평생을 함께 살아온 부부가 서로 통할 수 없는 이야기를 평행선처럼 늘어놓기도 한다. 이것은 모든 것이 부조리하고 전도된 세계이며, 우리가 애써 마련해 놓은 관습의 껍데기가 찢겨 버리는 세계이다. 이러한 세계가 그의 몇몇 단편에 그대로 반영된다. 그의 단편은 희곡화되기 전에 이루어 놓은 것으로서 『코뿔소』만 하더라도 1960년에 상연된 동명 희곡의 원형이다. 모든 사람이 무소로 변하는데 무소가 될 수 없는 자기 자신을 한탄하는 이 단편의 주인공 앞에서 우리는 휴머니즘을 운운할 수가 없다. 단지 현대 문명이라는 조건 앞에서 허탈한 웃음을 웃고 쓰디쓴 고민을 맛보게 될 따름이다. 이문열이 편찬한 <이문열 세계명작산책>에서는 『무소』라는 제명으로 소개되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프랑스 어느 시골 마을의 광장에는 우유부단하고 무사안일주의 성격의 베랑제와 그의 친구인 깔끔한 신사 장이 찻집 테라스에 앉아 일요일 아침을 보내고 있었다. 갑자기 그들 앞으로 코뿔소 한 마리가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마구 달려가자 장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베랑제는 무관심한 듯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자 장은 친구에게 능동적이고 활력 있게 살아가라고 충고했다.

 다음 날, 회사에도 코뿔소가 몰려들었다. 마을 곳곳에서 사람들이 코뿔소로 변하기 시작했다. 베랑제는 장이 자기 눈앞에서 코뿔소로 변하는 것을 목격했다. 마을은 이제 코뿔소들의 천국이 되어 떼로 몰려다니며 건물을 하나 둘 부수기 시작했다.

 베랑제는 자신도 언제 코뿔소가 될지 몰라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의 애인마저,

 “우리야말로 틀림없이 비정상적일 거예요.”

라는 말을 하며 코뿔소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혼자 남겨진 베랑제는 그들처럼 되어가지 않겠다고 외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코뿔소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절망감이 감돌 뿐이었다.

 

[사진 : 연합뉴스]

 

 

 작가의 청년 시절 대부분은 유럽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을 때이며유럽 전체가 정신적으로 불안했던 시기였다그 시대적 상황은 수많은 지식인이 코뿔소로 상징되는 어떤 힘의 이데올로기에 마취되도록 유도했다많은 사람들이 그 이데올로기의 공격성과 전염성집단성에 무기력하게 방조 혹은 참여하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자신의 정신을 포기했다결국이 작품은 바로 그러한 비인간적인 폭력에 별 저항 없이 추종하여 집단의 익명에 가담하는 비인간성혹은 거기에 동참하여 스스로 그 세계에 안주하는 아류들을 고발한다.

 이 작품은 이오네스코의 대표적인 부조리극의 하나이다. 작가가 이 글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은 코뿔소가 되는 것, 즉 인간이 개성을 잃고 군중 속에 매몰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통렬히 비판한다. 즉, 현대인을 압제하고 있는 군중의 폭력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베랑제는 출판사에 다닌다. 그는 옷차림도 별 볼 일 없고 시간관념도 없는 데다가 늘 술에 만취해 있는 무기력한 남자이다. 그는 사람들이 코뿔소로 변해가는 것에 대해 무관심했지만, 친구까지 변해 버리자 큰일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라고 말하며 모든 사람처럼 되기를 거부하고, 사람들이 그를 작은 세계에 사는 소시민이라고 비웃을지라도 자신만의 태도를 고수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코뿔소는 무엇보다도 작가 이오네스코의 개인적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그 경험은 존재론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이며 현실적이다즉 작가는 인간성을 위협했던 잔혹한 전쟁과 나치즘의 광기를 직접 체험했다이 작품은 독일의 나치와 같은 파시즘에 대한 풍자이며그와 흡사한 독재 권력의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며 번민하는 인간의 드라마다.

 이 작품 『코뿔소』는 병든 정신만이 그 존재를 믿을 수 있는 가공의 사회와 사건들을 제시한다. 그러한 상황을 통해 다수만으로 확보되는 진실의 허구성을 드러낸다. 진실은 그저 진실일 뿐 다수와는 본질에서 무관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다수에 맹목적인 믿음을 보낸다. 끝내 홀로 남게 된 주인공마저 코뿔소의 삶을 동경하고, 스스로 코뿔소가 되기를 갈망하는 현상은 코뿔소가 그 사회의 다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전략) 사람들은 모두가 서로 다르다는 점에서 변종이며 이 작품 『코뿔소』는 그런 변종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대를 지배하는 가치관이란 실은 작품 속에 나오는 무소의 미덕처럼 별 근거없으면서도 다수가 품고 있기 때문에 신앙처럼 되어버린 허상이고, 어쩌면 우리는 이미 무소로 살고 있는지 모른다. 아니면 아직은 약하고 흰 살가죽에 싸여 있지만 속으로는 그것을 불안하고 부끄러워하며 열심히 무소의 뿔과 가죽을 갈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이문열 세계명작산책> 9권 118쪽에서 인용)

 지난 몇 개월 동안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른바 '조국 사태'를 통해 대중의 여론이 반으로 나뉘어 '니가 맞다, 아니다 내가 맞다' 또는 '내가 지지하는 진영이 맞다, 아니다 그 반대다' 하며 격렬하게 충돌함을 목격했다. 자신이 맞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가진 가치관의 근거는 무엇일까? 시대를 지배하는 가치관이란 작품 속에 나오는 코뿔소처럼 별 근거 없다. 그러면서도 다수가 품고 있는 허상이기 때문에 신앙처럼 되어버린 허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