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古典을 읽다

고대소설 『주생전(周生傳)』

by 언덕에서 2019. 5. 21.

 

 

고대소설 주생전(周生傳)

 

 

 

 

 

조선 중기 선조 때의 문인 권필(15691612)1593년 지은 전기(傳奇)소설로 한문 필사본. 11책이 전한다. 작품의 끝에 지은이가 봄에 송도에 갔다가 역관에서 이 작품의 주인공인 주생을 만나 필담으로 그의 행적을 듣고 돌아와 서술한 내용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주생전은 기이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조선 전기의 소설에서 사실성이 주목받는 조선 후기 소설로 넘어가는 과도기인 조선 중기에 지어진 절절한 사랑 이야기다. 현실의 부귀영화를 떨치고 방랑에 나선 주생과 기생 배도, 양가의 규수 선화의 삼각관계를 다뤘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현실적인 인물들과 배경, 달라진 사랑의 양상을 과감히 시도한 이 작품은 문학사적 의미는 물론, 뛰어난 비유와 묘사로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한 삽입 시가와 연서 등을 통해 문학적인 아름다움도 함께 맛볼 수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중국 명나라 때에 주회라는 청년이 전당에서 살다가 아버지를 따라 촉주로 가서 태학에 다니면서 수차 과거를 보았으나 계속 실패하였다. 과거를 포기하고 장사차 길을 떠나 강호를 유랑하였다. 우연히 고향 전당에 이르러 어릴 때의 벗이었던 처녀 배도를 만나 사랑을 나누었다.

 배도가 노승상 부인의 총애를 받아 그 집에 드나드는 것을 엿본 주생은 몰래 배도를 따라갔다가 승상의 딸 선화의 미모에 혹하여 연정을 품게 되었다. 승상 부인은 배도로부터 주생의 탁월한 학식을 듣고 주생을 아들 국영의 스승으로 청하였다. 주생은 배도의 집에서 국영을 가르쳤다.

 그러나 선화에 대한 연정을 참지 못하여 왕래의 불편을 핑계로 승상댁에 들어가 국영을 가르치면서 선화와 밀애에 빠졌다. 이를 알아차린 배도가 원망하자 주생은 배도의 집으로 돌아왔으나 배도에 대한 사랑은 이미 식어 있었다.

 배도는 사랑을 잃고 괴로워하다가 죽었다. 승상의 아들 국영도 우연히 병사하자 주생은 의지할 곳이 없어 전당을 떠났다. 수천 리 밖에서 선화를 그리워하던 중에 이웃 노인의 중매로 선화와 혼인이 성립되어 9월에 혼례를 올리기로 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주생은 종군서기로 징발되어 선화에게 알리지도 못한 채로 조선 땅 송도까지 와서는 이루지 못한 인연을 통탄했다. 그리움으로 병이 나서 머물러 있던 중에 서술자를 만나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했고, 이에 서술자는 이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겼다.

 

 

 우리 고대소설에 흔히 볼 수 있는 비현실적인 요소가 나타나지 않는 이 작품은 삼각연애를 중심으로 남성의 탐욕과 이기적인 사유, 여성의 선천적인 애욕과 질투심을 그렸다. 작자인 권필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짧은 인생을 불우하게 살다간 자신의 운명을 주인공의 낭만적인 생애로 재생시킨 것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모든 인물이 불우한 상태로 하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거대한 자연과 운명 앞에 인간이 그 왜소함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슬픔을 서정적으로 표현, 작품 전체를 우수로 가득 채우고 있다.

 이 글의 서술자는 남성 중심의 이기적인 서술 태도를 보이며, 서술자는 배도의 비극적 삶보다는 선화와 혼사를 이루지 못한 주생의 비극적 운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조선시대가 남성 위주의 사회였기에 남자의 이기적임은 허물이 되지 않는다고 저자는 생각했을 듯하다. 이런 모습은 후대의 춘향전 같은 소설이 여주인공의 삶과 의지에 초점을 맞추어 민중적 서술 시점을 취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점이다.

 

 

 『주생전은 한 젊은 선비와 두 여인 사이에서 이루어진 비극적인 사랑을 전기(傳記) 형식을 빌어 그려낸 작품이다. 주인공 주회는 지나칠 만큼 이기적이나 이런 게 인간의 이야기를 적은 소설의 특징인지도 모른다. 또한 고전소설에서 흔히 보이는 비현실적 요소는 없다. 배경ㆍ사건ㆍ인물 등이 모두 현실감을 지니고 있고 주요 인물들이 비극적으로 좌절하고 슬픔을 표현하는 서정시가 수많이 삽입되어 작품의 전체 분위기가 우수로 차 있다.

 이 작품은 다른 작품과는 다른 점이 선비의 신분을 떨치고 장사꾼으로 나서는 주생의 모습에서 새로운 시대 의식을 엿볼 수 있으며, 배도라는 기생은 애정을 통해서 신분을 상승시키려는 민중들의 소박한 삶의 가치관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고전 소설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비현실적인 성격에서 벗어나 상당한 사실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점에서 후대 소설의 배경 설정에 모범이 되었으리라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