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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을 읽다

고대 그리스 서사시 『일리아스(Ilias)』

by 언덕에서 2019. 10. 7.

 

고대 그리스 서사시 『일리아스(Ilias)』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Homeros.BC 800?∼BC 750)의 작품으로 전하는 그리스 최대 최고 서사시로 1만 5693행, 24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마다 그리스 문자의 24 알파벳순으로 이름이 붙어 있다. 옛날에는 권마다 그 내용에 부합되는 이름이 붙어 있었고, 알파벳순으로 이름을 붙이는 방법은 BC 3세기에 처음으로 쓰인 권별법이었다. 『일리아스』는 트로이의 별명 이리오스(Ilios)에서 유래한 것이며, ‘일리오스 이야기’라는 뜻이다. 10년간에 걸친 그리스군의 트로이 공격 중 마지막 해에 일어난 사건들을 노래한 내용이다.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을 제재로 한 서사시이다. 트로이 전쟁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꾀어 트로이로 납치해갔기 때문에 일어났다. 이 서사시의 가장 뛰어난 점은 소박하고 단순한 인간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주인공 아킬레우스는 그리스의 첫째가는 영웅이면서도 다정다감한 청년으로 그려져 있다.

『일리아스』는 비극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사건에 집중하여, 트로이 공방 50일 동안의 이야기 속에 10년의 전망을 담았으며, 과거를 뒤돌아보고 미래를 암시함으로써 비극성을 강조하였고, 여러 가지 비유로 자연계와 인간계의 관계를 특색 있게 묘사하였다. 무용담을 노래하고 그리스 기사도를 찬양한 이 시는 BC 900년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시는 마침내 그리스의 국민적 서사시가 되었고 교육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으며, 유럽 서사시의 모범으로서 라틴문학을 거쳐 유럽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2004년 볼프강 페터슨에 의해 <트로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제작되었다.

 

영화 [트로이], 2020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트로이 왕자 파리스는 아름다운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유혹하여 트로이로 납치한다. 이 때문에 그리스 소국들은 힘을 합해 트로이로 쳐들어간다. 전쟁이 일어난 지 10년이 되는 해에 그리스군에 전염병이 돈다. 이는 그리스군 총수 아가멤논이 아폴론의 제사장 크리세스의 딸을 제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아폴론 신이 퍼뜨렸다. 아가멤논은 할 수 없이 그 딸을 돌려주고, 그 대신 아킬레우스 장군이 얻은 소녀를 가로챈다. 이에 화가 난 아킬레우스는 전쟁에 나갈 것을 거부하고, 어머니인 바다의 여신 테티스를 통해 제우스 신에게 아가멤논이 자신을 존중할 때까지는 그리스군이 지도록 해 달라고 부탁한다. 제우스는 이 부탁을 들어준다. 그 결과 그리스군은 트로이군에게 무참하게 패한다. 이에 아가멤논은 잘못을 뉘우치고 아킬레우스에게 사과한다.

 하지만 아킬레우스는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싸움터에도 나가지 않는다. 아킬레우스의 친구 파트로클로스는 그리스군의 패배를 안타깝게 여겨 아킬레우스의 갑옷과 전차를 빌려 싸움터에 나갔다가 헥토르에게 패해 죽고 만다. 아킬레우스는 친구의 죽음에 슬퍼하고 분노한다. 마침내 그는 친구의 원수를 갚기 위해 아가멤논과 화해하고 싸움터에 나선다.

 아킬레우스가 싸움터에 나오자 트로이 군사들은 두려움에 떨며 성안으로 도망친다. 오직 헥토르 한 사람만이 성밖에 버티어 서서 아킬레우스와 맞선다. 그리하여 두 영웅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진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찔러 죽이고 그 시체를 전차에 매달아 질질 끌고 다니며 트로이 진영에 능욕을 보인다. 헥토르의 아버지인 늙은 프리아모스 왕은 아들의 시체를 되돌려 받기 위해 아킬레우스를 찾아온다. 프리아모스 왕을 본 아킬레우스는 고향에서 자신을 걱정하고 있을 노부모를 생각하고는 시체를 돌려준다.

 

영화 [트로이], 2020

 

 『일리아스』는 ‘일리온의 노래'라는 뜻으로 일리온에 도읍을 두고 있는 트로이군에 보복하기 위하여 그리스 각지로부터 모여 원정해 온 아카이아1군의 전쟁역사에 대한 내용이다. 특히 그중에서 그리스군 제일로 손꼽히는 용장 아킬레우스와 전군의 지휘자 아가멤논 사이의 다툼으로 시작되는 이른바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주제로 삼았다.

 이 서사시를 24권으로 나눈 이는 알렉산드리아 시대 호메로스 연구의 제1인자 아리스타르코스였다. 비록 대충의 줄거리가 그리스 전설의 트로이 전쟁 중의 한 에피소드 묘사에 불과하나, 올림포스에 높이 자리 잡은 제우스 신 일족의 판테온2을 잘 그렸다고 평가받는다. 한편, 아킬레우스 밑에 용맹한 아이아스, 노련한 네스토르, 지모의 오디세우스, 그 밖에 디오메데스ㆍ메넬라오스ㆍ아킬레우스의 절친 파트로클로스가 있고, 저쪽 트로이 편에는 늙은 왕 프리아모스에 그의 맏아들인 용장 헥토르를 선두로, 아우 파리스ㆍ헬레노스ㆍ아이네이아스ㆍ뤼키아의 장수 사르페돈과 글라우코스, 나아가 새벽의 여신 멤논(Memnon), 아마존의 여장군 펜테실레아 등이 있다.

 이 작품의 영향은 그리스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 언어와 기법은 유럽 서사시의 모범으로 라틴 문학을 거쳐 유럽 문학, 나아가 유럽 문화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일리아스』는 서양 문화 가장 밑바닥에 자리한 작품이며, 이 작품을 기반으로 그 위에 층층이 쌓아 올린 문화적 재산의 근원으로 그들의 삶을 지탱하는 정신적 근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런 점에서 『일리아스』는 그리스 문학이 전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이자 유럽 문학의 효시이다. 신의 뜻에 따라 트로이 전쟁을 수행하는 그리스군과 트로이군의 비극적인 운명, 즉 전쟁과 죽음과 삶에 대한 인간의 통찰을 1만 5693행에 담고 있다. 서양 문화 가장 밑바닥에 자리한 작품이다. 서양 문명은 이 작품을 기반으로 그 위에 층층이 쌓아 올린 문화적 재산의 근원으로 유럽인의 삶을 지탱하는 정신적 근원을 보여준다.

 아킬레우스는 전리품의 분배를 둘러싸고 아가멤논과 다투고 분에 못 이겨 전쟁터에서 물러 나와 어머니인 여신 테티스(Thetis)의 청으로 제우스를 움직여 마침내 전황은 그리스 편에 아주 불리하게 된다. 그의 친구 파트로클로스는 이에 견디지 못해, 끝내 화해를 거부하는 아킬레우스에 간청하여 그의 갑옷을 빌려 입고, 출전하여 크게 공을 세웠으나, 마침내 헥토르의 손에 죽는다.

 용장 아킬레우스는 친구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분연히 일어나 헤파이스토스가 특별히 만들어 준 투구와 방패를 하고 나아가 트로이군을 산산이 무찌르고, 헥토르를 죽인다. 이리하여 『일리아스』는 아들 시체를 돌려달라고 간청하러 홀로 그리스 군진으로 향하는 노왕 프리아모스의 속죄 이야기로 끝난다. 이 사나운 전투의 묘사 속에 담긴 약간의 에피소드는 『일리아스』가 지니는 소설적이고 인간적 재미를 보여주는 최대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헥토르와 아내 안드로마케의 대면, 헬레네와 트로이 장로들의 상봉, 제우스를 사랑의 띠로 꾀어내어 잠들게 하는 헤라의 이야기 등이다. 일리아스 는 또한 고대 그리스인이 가장 애독한 책으로, 그들 교육의 주요 부분을 이루었고, 사상적ㆍ문학적으로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현존하는 텍스트는 거의 아리스타르코스의 유포본으로 추정된다.

 

 

 

 

 

  1. 고대 아카이아는 서쪽으로는 엘리스, 남쪽으로는 에리만토스 산과 아르카디아, 동쪽으로는 시키온에 접해 있었다. 언덕이 많은 이 해안 지방은 파트라이를 행정 수도로 삼고 있는 지금의 아카이아 주와 거의 일치하지만, 오늘날에는 킬키니 산 서쪽을 동쪽 경계선으로 삼고 있다. BC 4세기초 아카이아의 12개 도시는 아카이아 동맹을 결성했다. 헬레니즘 시대에 이 동맹은 그리스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 세력이 되었다. 이 동맹은 BC 198년 로마에 투항했지만 BC 146년에 로마는 동맹을 해체하고 로마의 마케도니아 속주에 합병시켰다. BC 27년에 아카이아는 테살리아 남쪽의 그리스 전역을 포괄하는 로마 원로원 속주 아카이아의 중심지가 되었다. 아카이아는 1460년에 투르크에 점령당했다가 1828년에 해방되었다. [본문으로]
  2. 판테온(라틴어: Pantheon)은 그리스어 ‘판테이온(Πάνθειον)’에서 유래한 말로,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이라는 뜻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