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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을 읽다

고대소설 『정을선전(鄭乙善傳)』

by 언덕에서 2019. 5. 7.

 

고대소설 『정을선전(鄭乙善傳)』 

 

 

작자ㆍ연대 미상의 (계모를 소재로 한) 고대소설로 국문 필사본ㆍ활자본으로 전하며 유소저전이라고도 한다. 필사본으로는 국립중앙도서관에 3종이 있으며,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1종이 있다. 또 단국대학교 율곡기념도서관 나손문고에 무자년 필사본 1, 무신년 필사본 1종이 있고, 필사 연도 미상의 1, 그리고 낙질본 2종이 있으며, 제목은 다르나 내용은 동일한 <유소저젼>이 있다. 활자본으로는 1917년에 간행된 박문서관본이 있다. 내용은 거의 같고, 주인공 을선이 출생하는 과정과 자손에 대한 부분이 간략하게 처리된 것과 부연된 내용의 차이가 있다. 또한, 이본으로 <유희현전>이 있는데, 작품의 서사구조는 거의 같고, 등장인물에서만 차이를 보인다. 장서각도서ㆍ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경상좌도 계림부 자산촌에 정진희라는 재상과 부인 양씨가 혈육이 없어 근심하던 중 을선이라는 아들을 낳으니, 용모와 재질이 뛰어났다. 또한, 익주 땅에 유한경이라는 재상이 노씨라는 후처와 딸 추연을 데리고 살았는데, 유재상의 회갑 때 정재상이 을선을 데리고 놀러 왔다가 을선이 그네 뛰는 추연을 보고는 집에 돌아와 상사병이 든다.

 이 사정을 안 정재상이 청혼하니 유공 또한 기뻐하여 혼약하고, 을선은 과거에 나아가 장원급제한다. 드디어 추연의 집에서 혼례를 올리고 첫날밤을 맞게 되면서 사건이 발생한다. 유소저의 계모 노씨가 결혼을 시기한 나머지 자기의 사촌오빠를 시켜 추연과 간통한 남자로 자처하게 하여 네 비록 시랑 벼슬을 하였으나 남의 계집을 품고 누웠으니 죽기가 아깝지 않은가 보구나.”라고 떠드니 을선이 추연을 의심하게 하고는 그날 밤, 자기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아연실색한 추연이 변명도 못 한 채 울다가 죽고 만다. 이후 시신 근처에 가는 사람이 모두 죽고, 추연의 혼령이 나타나 울면 그 울음소리를 듣는 모든 사람이 죽었다. 딸의 죽음으로 충격 받은 유공 또한 죽고 그 마을은 폐촌이 되고, 오직 추연의 유모만이 남아 있었다. 익주가 폐촌이 되었다는 상소를 받은 임금이 을선을 보내자, 을선이 유모에게서 자초지종을 듣고 그제야 자기의 불찰을 깨달았다.

 을선은 추연의 혼령이 시키는 대로 금성산에 가서 신기한 구슬을 얻어와 방 안에 있는 추연의 시신에 놓아 그녀를 회생시켰다. 을선이 추연을 충렬부인으로 봉하여 원비로 삼고 사랑하니, 을선과 먼저 혼인하였던 초왕 딸 정렬부인이 이것을 시기하였다. 을선이 출정한 사이에 정렬부인이 남장한 시비를 보내어 충렬부인을 오해받게 하니, 시어머니가 이를 알고 대로하여 충렬부인을 죽이려 하였다.

 시비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난 충렬부인은 지함에서 혼자 아들을 낳고 사경에 이르게 되었다. 을선이 이 소식을 듣고는 황급히 돌아와 진상을 밝혀내었는데 임금은 정렬부인을 죽일 죄인을 대우하여 독약을 내려 스스로 죽게 하였다. 그리고 충렬부인과 아들을 구하여, 이후로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고 부부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죽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유추년이라는 여성이 결혼 첫날소박당한다계모의 계략에 의한 것이었는데 신랑은 완벽하게 속아 넘어갔다신부가 받은 충격은 얼마나 컸겠는가첫날밤과 함께 그녀의 미래와 사회 속에서 그녀가 설 자리가 무너진다그녀는 충격으로 죽기에 이르렀고귀신이 되었을 정도다.

 이 작품은 계모형 가정소설로, 전반은 남녀 주인공들의 결연, 중반은 계모와의 갈등, 후반은 남편을 둘러싼 부인들 사이의 사랑다툼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중국의 지명과 관직명이 섞여 있어 중국 것과 혼동되고 있는 결점이 있다. 영웅소설과 가정소설의 복합형 소설인데 유추연의 처지에서 보면 계모 노부인의 모함에 견디지 못하여 자결한 여주인공의 원한을 푸는 이야기이고, 을선의 처지에서 보면 영웅의 출세담이다.

 사건의 전개는 꿈에 의한 예시성이 강조되고 있다. 유추연의 삶이 죽기 전의 생, 죽은 뒤의 원혼의 생, 환생한 뒤의 생이라는 세 단계로 구성되었고, 계모형 가정소설을 환생담과 영웅담으로 연결한 특징을 보인다.

 

 

 유추년은 진실과 결백이 소통되지 않자 죽음을 택했고귀신이 된 그녀는 사랑과 구원에 의해 회생되었다이 회생은 두 사람의 소통으로 가능했다신부를 향한 신랑의 반성과 사랑이 방황하는 귀신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장화홍련전보다 덜 알려진 이 작품은 경북 경주에 사는 정 재상의 아들 을선과 계모의 학대 속에서 자란 유 재상의 딸 추연의 파란 많은 애정과 여인들의 시기와 질투로 인한 비극을 그린 가정소설이다. 초반에는 계모의 학대를 그렸고, 후반에는 유ㆍ조 두 부인의 쟁총, 여주인공을 대신하여 옥중에서 희생되는 시비1등을 소재로 다루었다. 이야기 전개에서 시련을 중첩해 동정심을 자극하거나, 군담 등 흥미 중심의 삽화를 편입시키는데 연속되는 사건 자체만으로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이런 구성 때문에 문제의식이 둔화하면서 작품세계가 흥미 중심으로 통속화되고 있다. 그러나 <장화홍련전>처럼 이야기가 단조롭지 않고 비현실적인 면 또한 적어서 소설적인 구성은 훨씬 뛰어나다.

 최근에는 『정을선전』에 나타난 '부정누명(不貞陋名)'이라는 소재에 착안하여 음모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는 음모 소설로 보기도 한다. 음모에 주목하면서 이 작품을 살펴보면, 작품의 전반부는 계모 노 씨와 유추연 사이에 발생하고, 후반부는 정을선을 중심으로 조왕의 딸인 조 부인과 유추연 사이에서 발생한다. 우리의 고전 소설 작품에서 부정누명의 소재를 활용하고 있는 소설(숙영낭자전,사씨남정기,옥련몽,조생원전,장화홍련전)은 적지 않지만, 『정을선전』처럼 음모가 소설 전체를 관통하며 사건을 이끄는 작품은 드물다고 할 수 있다.

 

 

  

 


  1. (侍婢)「명사」 곁에서 시중을 드는 계집종.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