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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을 읽다

고대소설 『강도몽유록(江都夢遊錄)』

by 언덕에서 2019. 5. 14.

 

고대소설 『강도몽유록(江都夢遊錄)』 

 

 

작자ㆍ연대 미상의 조선 시대 전기체(傳奇體) 소설의 한 특색인 몽유록계 한문 고대소설로 필사본이며 201책으로 전한다. [국립중앙도서관]에 1책짜리 유일본이 소장되어 있는데, <피생명몽록(皮生冥夢錄)>과 함께 묶여 있다.

 병자호란 당시 강도(강화도)가 청나라 군병에 의해 함락됨으로써 죽게 된 많은 여인의 원령이 주인공의 꿈에 나타나, 조정 대신과 강화 수비를 맡았던 관리들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그 지어진 연대는 병자호란 이후인 것으로 여겨진다.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므로 병자호란 이후에 나왔다고 추정된다.

 이 작품은 다른 몽유록계 소설과 마찬가지로 꿈을 꾸는(입몽) 과정과 꿈을 깨는(각몽) 과정을 가지는 공식을 가지고 있다. 한편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하면서 난리 중의 관료들의 행위를 규탄하면서 반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원생몽유록> <달천몽유록> <피생명몽록(皮生冥夢錄)> 등과 함께 현실비판형 몽유록으로 분류된다. 형식은 허구이지만 얘기되는 내용은 거의 사실이므로 역사적 사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는 점에서 그 교육적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현재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피생명몽록>과 한데 묶여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적멸사의 청허선사가 강도에서 죽은 수많은 사람의 시신을 거두기 위해 연미정 기슭에 움막을 짓고 지낸다. 어느 날 꿈에서, 병자호란 당시 강도에서 죽은 열다섯 여인의 혼령이 한곳에 모여 울분을 토하는 광경을 엿보게 된다.

 첫 번째로 말하는 여인은 당시 영의정을 지낸 김류의 부인으로서, 남편이 능력 없는 아들 김경징에게 강도 수비의 책임을 맡겼고, 아들은 술과 계집에 파묻혀 강도가 쉽게 함락되게 하였다며, 남편과 아들을 함께 비난한다.

 두 번째 여인은 김경징의 아내로서, 자기 남편이 강도가 함락되게 만든 책임으로 죽임을 당한 것은 마땅하나, 같은 죄를 지은 이민구ㆍ김자점ㆍ심기원은 전쟁 후 오히려 벼슬이 오른 것은 공평치 못한 일이라고 비난한다.

 세 번째 여인은 왕후의 조카딸로서, 남편은 전쟁 중에 눈이 멀고 그 부모도 돌아가셨다며 애통해한다.

 네 번째 여인은 왕비의 언니로서, 적군이 들어오기도 전에 자기 아들이 자기를 찔러 죽이고서 정렬로 표창케 한 사실을 어이없어한다.

 다섯 번째 여인은 강도가 함락된 데에 자신의 남편이 책임이 있음을,

 여섯 번째 여인은 강도 유수를 맡았던 시아버지의 책임을,

 일곱 번째 여인은 아들의 책임을 각각 말하며 개탄한다.

 여덟 번째 여인은 남편이 오랑캐의 종이 되어 상투를 잘랐다며 비난한다.

 아홉 번째 여인은 서울로부터 홀로 강도에까지 피난을 왔다가 무참히 죽임당한 원통함을 토로한다.

 열 번째 여인은 지휘관이었던 자기 남편의 잘못과 이름 있는 관리의 아내이면서도 오랑캐에게 몸을 내준 동생의 실절을 비난한다.

 열한 번째 여인은 마니산 바위굴에 숨었다가 오랑캐의 겁박을 피해 절벽에서 투신한 여인으로서, 으깨어진 비참한 몰골로 원한을 토로한다.

 열두 번째 여인은 결혼한 지 두 달 만에 전쟁을 만나 물에 빠져 죽었으나, 남편은 그 사실을 모르고 아내가 오랑캐 땅에 들어갔는지, 길에서 죽은 것인지 의심하고 있다며 탄식한다.

 열세 번째 여인은 자신의 시아버지가 강하게 척화를 주장하여 대의를 드러냄으로써, 자신이 그 공로로 하늘 궁전에서 선녀로 노닐게 되었음을 자랑한다.

 열네 번째 여인은 그 할아버지의 고결한 지조의 공로로 인해 천당에 들어가 있게 되었다고 한다.

 열다섯 번째 여인은 기생으로서, 뒤늦게 정절을 지키려 하였으나 전쟁을 만나 목숨을 버렸다는 얘기를 하면서, 전쟁 중에 절의 있는 충신은 하나도 없고, 늠렬1한 정절은 오직 여인들만이 보여 주었다고 개탄한다. 여인들의 통곡 소리에 청허선사는 꿈에서 깬다. - 한국민족대백과에서 발췌.

 

 

 

 꿈이라는 허구형식을 빌리고 있는 이 소설은 병자호란 때 강화도 함락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토대로 하여 관료들의 행위를 규탄하고 반성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조정 신하들의 그릇된 처사를 교묘한 수법과 기발한 독창으로 고발하고 있는 점이 높이 평가받고 있다. '강도'는 임시 왕도로 정해졌을 당시 강화도의 호칭으로 소현세자를 비롯한 왕족들이 피난을 갔던 곳이다.

 『강도몽유록』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전쟁 중에 허무하게 죽어간 것을 한탄하는 여인들, 그리고 가장 많은 경우로, 전쟁에 임하여 관료로서의 책무와 인간적인 본분을 다하지 못한 남편ㆍ자식ㆍ시아버지의 행위를 비난하는 여인들, 그리고 시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척화를 주장한 공로로 자신들이 하늘 세계에서 선녀로 있게 된 것을 자부하는 여인들이다.

 이렇게 볼 때이 작품에는 당시 인조반정의 공신세력에 대한 비공신 세력의 반발이 담겼다고 판단된다당시 비난받은 공신세력의 허물은 인사의 문제군사력의 사적인 소유경제적 침탈 행위그리고 병자호란 때에 화의론을 내세움으로써 임금이 무릎 꿇고 항서를 올리는 치욕을 겪게 했기 때문이다. 

 

 

 이긍익의 <연려실기술2>에서는 “강도에 머물러 있은 지 9일 만에 청군이 숙의와 빈궁 및 두 대군과 대군의 부인을 협박하여 나오게 하고 드디어 군병을 풀어놓아 크게 노략질하고 관청과 집을 모두 불사르며 목을 베 죽이고 얽어매어 온 섬을 도륙한 후에 군병을 몰아 강을 건너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갓난아이가 눈 위에 기어 다니면서 살기도 하고 혹은 죽기도 하며 혹은 죽은 어머니의 젖을 여전히 빨고 있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수효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강도몽유록』은 이런 병란의 기록을 우리들에게 전해주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쓴 저자는 자신의 이름과 작품을 쓴 시기를 예상치 못한 후환이 들이닥칠까 봐 감추고 있으나 이 작품은 청허선사가 “연미정 남쪽 기슭에다 풀을 베어 초막을 엮었다. 선사는 이 초막에서 법사를 베풀었고, 날이 저물면 잠시 불을 지펴 죽이나 밥을 지어 허기를 달랜 뒤 말린 풀 더미 위에 고단한 몸을 뉘였다.”고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그해 6∼7월경이 아니면 그 다음해 여름을 작품속의 배경으로 설정하고 있는 듯하다.

 또한몽유록은 주로 관료사회에서 소외된 사대부들의 사회적 갈등과 역사과정에 관한 관심의 고조에서 유발된 독특한 서사 유형이라고 규정하기도 한다목격담의 형식은 감추어진 사태의 진상을 드러내고자 하는 작자의 의도를 가장 효과적으로 수식할 수 있는 서사적 방안이며무고하게 희생된 원혼의 등장은 사회적 부조리와 역사과정의 모순을 부각할 수 있는 극화의 한 방안일 것이다.

 이 작품의 내용상 특질로 지목될 수 있는 것은 부인들의 대화 가운데서 추출되는 불교적 내세사상 및 도교적 내세관이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유일본으로 '피생몽유록'과 한데 묶여 있으며 고전소설의 그릇된 역사적 사실을 신랄하게 꼬집어 비판하고 기발하게 고발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1. 추위가 살을 에는 듯함. [본문으로]
  2. 조선후기 학자 이긍익(李肯翊, 1736∼1806)이 지은 조선시대 야사총서(野史叢書)이다. 저자가 부친의 유배지인 신지도(薪智島)에서 42세 때부터 저술하기 시작하여 타계(他界)할 때까지 약 30년 동안에 걸쳐 완성하였다. 그의 아버지 원교 이광사가 책이름을 휘호하였다. 이 책은 기사본말체로 된 야사로서 저자의 사견이 개입되지 않았고 인용한 400여종의 저서의 명칭을 하단에 분명히 기록해두고 있다. 내용은 원집에 태조 이래 현종까지의 283년간(1392∼1674) 각 왕대의 주요한 사건을 적어 나갔고, 각 기사 끝에는 그 왕대의 상신(相臣)·문신(文臣)·명신(名臣)의 전기(傳記)를 덧붙였다. 속집은 숙종조(肅宗朝) 47년간(1674∼1720)의 일들을 원집의 형식대로 적었다. 별집은 조선시대의 역대관직(歷代官職)을 비롯하여 각종 전례(典禮)·문예(文藝)·천문·지리·변위(邊圍)·역대 고전 등을 항목별로 그 연혁을 수록하고 역시 인용한 책 이름을 부기하였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