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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을 읽다

고대소설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

by 언덕에서 2019. 4. 12.

 

고대소설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

 

 

   

조선 초기 학자 김시습(金時習.1435.세종 17∼1493.성종 24)이 지은 한문 소설로 원본은 전하지 않고 일본 동경에서 목판본으로 간행된 작자의 소설집 <금오신화>에 실려 있다. 국내의 것으로는 김집의 수택본 한문 소설집에 <만복사저포기>와 더불어 필사된 것이 있다. <금오신화>는 작품에 제목을 구체적으로 붙였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도 있다.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은 '이생이 담장 안을 엿본 이야기'라는 뜻으로 그 전의 「○○전」류의 제목 형식과는 사뭇 다르다. 매월당 김시습의 <금오신화>에 수록된 『이생규장전』은 죽음을 초월한 남녀 간의 애정을 그린 것으로, 전반부는 이승의 현실적인 사건을, 후반부는 이승과 저승을 초월한 세계를 그린 2단 구성으로 되었다이 작품은 인간이 귀신의 트라우마 치유를 돕는 것은 물론이고 이를 넘어 깊은 사랑을 공유하는 것으로 종결하여 훈훈한 여운을 남긴다.

 이 작품은 전반부에서는 살아 있는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루고 후반부에서는 산 남자와 죽은 여자의 사랑을 다룬 애정 소설이다. 특히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사랑을 다루었다는 점을 주목해 명혼소설(冥婚小說) 또는 시애소설(屍愛小說)이라고도 부른다 

 이 작품에 드러나는 귀신과의 사랑은 이미 <수이전>에 등장하는 최치원에게 나타나 있어 작가는 이러한 전설을 바탕으로 삼아 작품을 창작한 것으로 보인다그런데도 이 작품이 설화의 일종인 전설이 아니고 소설인 까닭은 자신들의 사랑을 좌절시키려는 세계의 횡포에 주인공들이 치열하게 저항하는 데 있다그 극적 모습이 귀신과의 사랑이다현실적으로 좌절된 사랑을 귀신과의 사랑으로 바꾸어 성취시키는 것이 분명 역설이지만 이 점이 이 소설의 전기1 소설의 구조적 특징을 지님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개성의 낙타교 옆에 살고 있던 이생은 나이가 열여덟으로 얼굴이 말끔하며, 재주가 뛰어나 일찍부터 국학2에 다녔다. 그때 선죽리 부근의 귀족 집에 최랑이 살았는데, 나이가 열여섯쯤 되었고, 재색을 아울러 갖추어 주위에서 칭찬이 자자했다.

 이생은 학교에 갈 때 항상 최랑의 집 앞을 지나가곤 하였는데, 어느 날 최랑 집 담 밖의 수양버들 그늘에 앉아 쉬다가 우연히 최랑이 시를 읊는 광경을 엿보게 된다. 이생은 국학에서 돌아오는 길에 최랑의 시에 답하는 시 세 수를 써서 담 안에 던지니, 최랑이 황혼에 만나자는 답을 전한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은 매일 저녁 만나게 되는데, 이생의 행동을 수상히 여기게 된 부친은 이생을 꾸짖은 후 영남지방의 농사 감독으로 내려보낸다. 이생을 만나지 못하게 된 최랑은 식음을 전폐하고 자리에 눕게 된다. 최랑이 부모에게 그간의 사정을 모두 이야기하자, 즉시 청혼하여 두 사람 간의 인연이 맺어지게 된다. 두 사람이 혼인한 뒤 이생은 대과를 거쳐 높은 벼슬에 올랐고, 서로 사랑과 공경으로 행복하게 살았는데, 신축년(공민왕 10) 홍건적의 난리에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최랑은 홍건적의 칼에 죽임을 당한다.

 홍건적이 물러가자 이생은 자신이 살던 곳을 찾아가 쓸쓸한 심회를 읊다가 죽은 최랑의 환신을 만나 양가 부모의 유골을 거두어 합장하고 함께 즐거운 세월을 보낸다. 몇 해가 지난 후 최랑은 인간 세상에 오래 있을 수 없음을 이생에게 말하는데, 이생도 또한 함께 황천으로 가고자 한다. 그러나 최랑은 이생의 수명이 아직 남았음을 말하고 다만 자신의 유골을 거두어 달라고 부탁한 뒤 사라진다.

 이생은 최랑의 부탁대로 그녀의 유골을 거두어 부모 곁에 안장하였는데, 아내를 지극히 사랑한 나머지 병이 들어 두어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 소설은 작품의 배경과 등장인물을 우리나라로 정한 것으로 보아 작가의 자주적인 성격을 볼 수 있다죽은 최씨 여자의 등장은 민간에 널리 퍼져 있는 귀신의 존재를 부정했던 작가의 사상과 일치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인 구조를 마련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사용되어 오히려 죽은 최씨녀(최랑)의 등장은 깊은 인간의 슬픔을 통찰하고 있다는 면을 보여준다.

 『이생규장전』은 참혹한 현실을 역설적이며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현실의 비극을 강렬하게 고발하였으며, 현실적·일원론적 세계관에 따라 주의 깊게 현실이 지닌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주의적·현실주의적 경향이 짙은 작품이다. 오늘날까지도 중요한 문학적 가치와 소설사적 의의를 지닌 작품으로 높이 평가된다.

 이렇게 전반부에서 한 편의 염정소설을 형성한 작자는 후반부에서는 전기적(傳奇的)인 내용으로 이를 합리화하려 하였다. 한편, 이 작품은 <전등신화3>의 영향을 받았으나 단순한 모방은 아니고 여러 작품에서 동기를 빌려 왔다고 평가된다. 플롯이나 주제 면에서는 독창성을 충분히 발휘하여 완전한 하나의 창작 소설을 만들어 냈다. 현실적 고뇌와 갈등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보인 점에서 그 작가의식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귀신이 된 최랑이 살아있는 남편 이생에게 말하는 요지는 '내가 비록 귀신이지만 다시 한 번 같이 살아보겠습니까?' 하는 제의다.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의 폭력과 주체의 고통, 죽음을 맞은 최랑은 자신과 달리, 살아있는 남편 앞에서 이해를 간구하며 떨고 있다. 이 한 장면에 죽음과 삶이 극명하게 대립되면서도 죽음을 삶으로 바꾸려는 가냘픈 시도가 오버랩된다.

 이 작품의 전반부에는 남녀 주인공의 자유연애를 설정해 놓았고, 후반부에서는 <만복사저포기>에서와 같은 인귀교환(人鬼交歡)의 이야기로 구성해 놓았다. 이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이승과 저승의 한계를 뛰어넘는, 즉 죽음을 초월한 남녀 간의 지극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전반부에서 보여 준 이생과 최 여인의 현실적 사랑은 당시 유교 사회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이처럼 관습을 과감히 깨뜨리고 사랑을 실현한 행위는 작자의 솔직하고 대담한 애정관의 반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렵게 성취한 그들의 사랑은 홍건적의 난리로 깨어지고 마는데 작자는 깨어진 두 사람의 사랑을 최 낭자의 환신과 이생의 사랑이라는 전설적 구성으로 다시 이어 놓고 있다. 이것은 자신들의 사랑을 좌절시키려는 세계의 횡포에 대해 주인공들이 치열하게 저항하는 것이며, 그 극적 모습이 귀신과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현실적으로 좌절된 사랑을 귀신과의 사랑으로 바꾸어서 성취하고 있는 것이 이 작품의 소설적인 가치가 아닐까 한다.

 

 

  1. (傳奇)「명사」 「1」 전하여 오는 기이한 일을 세상에 전함. [본문으로]
  2. 『역사』 고려 시대에 둔 중앙의 교육 기관. 성종 11년(992)에 국자감으로 고쳤다가 충렬왕 원년(1275)에 다시 이 이름으로 고쳤다. [본문으로]
  3. 『책명』 1378년경에 중국 명나라 구우가 지은 전기체(傳奇體) 형식의 단편 소설집. 당나라 전기 소설을 본떠 고금의 괴담과 기문을 엮은 것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