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古典을 읽다

세계를 뒤흔든 『종의 기원』

by 언덕에서 2019. 4. 3.

 

 

 

 

세계를 뒤흔든 종의 기원』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1809.2.12∼1882.4.9) 은 뉴턴, 갈릴레이와 함께 인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3대 과학자로 손꼽힌다. 다윈이 모든 생물들은 주변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해왔다는 ‘진화론’을 『종의 기원』을 통해 증명하기 전 사람들은 지구상의 생물들은 한꺼번에 저절로 생겨났다고 믿었다. 다윈의 진화론은 지동설, 만유인력과 함께 인류의 위대한 발견으로 손꼽힌다.

 다윈은 5년간의 역사적 항해 동안 남미와 대서양·태평양·인도양을 넘나들며 수많은 동물·식물을 채집하여 연구했고, 갈라파고스 제도에서는 종의 기원에 대한 문제 해명의 극적인 영감을 얻었다. 영국으로 돌아와 「비글호 항해기」를 출판한 뒤 20여 년 동안, 진화론을 입증할 방대한 증거와 자료들을 수집했다. 모든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1859년 세계를 뒤흔든 『종의 기원』이 탄생한다. 『종의 기원』은 마르크스「자본론」, 프로이트「꿈의 해석」과 함께 인류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책으로 꼽힌다. 마르크스와 프로이트 이론은 현대에 와서 일부분 상처 입기도 했으나, 다윈 이론은 오늘날에도 그 가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종의 기원』은 1859년 전문 14장으로 출판된 뒤 1872년 1장이 추가되었다. 책의 내용은 생물의 진화를 인위선택과 자연선택설로 설명하고 있다. 다윈은 현재에 이르는 진화생물학 연구의 방향성을 놀랍도록 정확하게 예견했다. 지질학 기록에 나타나는 진화 양식, 성 도태, 복잡한 구조의 기원, 종분화 양식, 신종의 기원은 새로운 형태적 지위로 진출이라는 탁견 등, 이후 진화생물학이 추구해 온 거의 모든 과제를 『종의 기원』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다윈은 비글호의 항해로 남아메리카에 서식하는 동물의 분포와 그 대륙에서 현재 생활하고 있는 생물과 과거 생물의 관계를 고찰함으로써, 당시는 신비하게 여겨져 왔던 종의 기원 문제에 얼마간의 빛을 비출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종의 기원』머리말에 기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르마딜로와 매우 닮은 대형 화석동물을 발견하고 그것이 절멸한 원인과, 현재의 생물과 비슷한 원인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또 이와 같은 시간적인 것뿐만 아니라 공간적으로도, 즉 갈라파고스제도 동물 대부분이 남아메리카 동물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지만 조금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의 물리적 조건이 같은 섬의 동물과 약간씩 다른 형태를 하고 있는 것, 다시 말해서 점진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에 주목하였다.

 예를 들어 검은 방울새 류의 부리가 매우 두꺼운 것에서 휘파람새와 같이 날카로운 것까지 일련의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귀국 후 종의 기원이나 변화에 대해 계속 추리한 결과 생물은 다산하고 과잉 번식하기 때문에 생존경쟁이 일어나며, 환경에 적합한 변이는 보존되고 불리한 변이를 일으킨 생물은 절멸한다고 생각하였다. 이 과정이 자연선택이며, 그 결과로서 적자생존이 된다는 것이 다윈의 진화론이다.

 

 

 

 

 

 1858년에 말레이반도에 있던 A.R 윌리스가, 그와 똑같은 자연선택에 따른 종의 기원에 관한 논문이 보내옴으로써 그것을 기회로 그와 윌리스의 논문을 연명으로 런던의 린네학회에 발표하였다.

 다윈의 논문은 다음해인 1859년에 『종의 기원』으로 출간되었다. 『종의 기원』이 출판된 당시는, 생물은 모두 전능한 신이 창조한 것이며 예로부터 불변이라고 하는 그리스도교의 <구약성서> ‘창세기’의 사상이 신앙된 시기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교의에 정면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생물의 진화에 관한 방대하면서도 과학적인 증거로 진화의 원인에 관하여 해명한 다윈의 학설은 생물학뿐 아니라 일반 사상계에도 강렬한 영향을 주었다.  

 DNA의 이중나선 모델을 발견해 1962년 노벨상을 받은 제임스 왓슨은 다윈을 다음과 같이 극찬했다.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내 어머니보다 더 중요하다. 그가 없었다면 생명과 존재에 대해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19세기 초 프랑스의 생물학자 라마르크는 ‘용불용설’을 주장했다. 나무의 새싹을 즐겨 먹는 기린이 높은 나무 위의 먹이를 먹으려 목을 위로 늘이다 보니 실제로 목이 길어졌다는 이론이다. 자꾸 쓰는 기관은 발달하고 안 쓰는 기관은 퇴화한다는 것인데 이렇듯 후천적으로 획득된 형질이 유전을 통해 전해진다는 것이다. 이를 뒤집은 것이 다윈이다. 『종의 기원』에서 그는 ‘적자생존’에 의해 생물의 진화가 일어난다고 봤다. 기린의 예를 들자면 목이 긴 기린들은 먹이를 잘 획득하며 살아남아 자손을 남길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기린들은 일찍 도태돼 결국 목이 긴 기린들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종의 기원』은 1859년 전문 14장으로 출판된 뒤 1872년 1장이 추가되었다. 책의 내용은 생물의 진화를 인위선택과 자연선택설로 설명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인위선택(또는 인위도태)이란 인간이 재배하는 식물이나 가축을 개량하기 위해서 적절한 형질의 생물을 선택하는 것을 말하며, 이와 같이 인간에 의해 변이된 종자는 수대를 거치면서 진화하게 된다.

 

 한편 이러한 변이는 자연계에서도 스스로 발생하는데, 이를 자연선택이라고 한다. 자연계의 생물은 다산에 의해 서로간의 생존경쟁이 일어난다. 특히 진화에 있어 중요한 것은 동종 개체 간에 일어나는 싸움으로, 극히 작은 변이 차이로도 생존이 결정된다. 즉, 환경에 대하여 유리한 변이를 가진 개체만이 생존하고 그 외에는 도태되는 ‘적자생존’이 일어나며, 이 같은 과정을 거친 생물의 형질변이가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축적되어 진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이 밖에도 『종의 기원』은 생물의 본능과 습성 등을 다루고 있다.

 다윈이 살던 시대에는 ‘존재의 대사슬’이라는 개념이 일반적이었다. 세계는 복잡하고 차원 높은 순서로 창조됐으며, 가장 높은 자리에 ‘인간’, 그 중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는 문명화된 ‘백인 남성’이라는 논리였다. 그러나 다윈은 길게 뻗은 나뭇가지와 비슷한 도표로 진화를 설명했다. 인간은 무수히 많은 생물체와 똑같이, 나뭇가지 중 하나일 뿐이다.

 『종의 기원』에서 다윈은 현재에 이르는 진화생물학 연구의 방향성을 놀랍도록 정확하게 예견했다. 물론 유전의 구조와 지사학적 정확한 연대 등 당시로서는 알 수 없는 요소가 많았다. 그러나 지질학적 기록에 나타나는 진화의 양식, 성 도태, 복잡한 구조의 기원, 종분화 양식, 신종의 기원은 새로운 형태적 지위로의 진출이라는 탁견 등, 이후 진화생물학이 추구해 온 거의 모든 과제를 『종의 기원』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후세의 진화생물학자들은 다윈의 발자취를 뒤쫓을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의 기원』은 아이디어의 보고이다. 

 

 

 

 

 『종의 기원』은 생물의 진화론을 확립한, 생물학은 물론 사상학적으로도 획기적인 기준을 세운 고전이다. 당시에도 종이 진화한다는 생각은 새로운 내용은 아니었으나, 다윈은 자연선택이라는 진화 메커니즘을 주장하고, 나무에서 뻗어가는 가지에 비유해 종 분화를 설명했다. 이 두 도구를 이용해 생명의 변화방식과 다양성을 밝혔다.

 다윈의 진화론이 몰고 온 파장은 엄청났다.

 신에 의한 창조설이 일반론으로 받아들여지던 시대였기에 종교계는 물론, 다윈의 진화론에 반대하는 기존 학계로부터도 심한 반박을 받았다. 다윈의 오랜 친구들도 등을 돌릴 정도였다. 영국 유명작가 칼라일은 “사람을 원숭이의 친척으로 생각한다”며 비난했다. 비글호 선장이자 오랜 친구인 피츠로이는 “성서의 진리에 어긋나는 괘씸한 주장이다”며 실망을 감추지 않았다. 무엇보다 “하느님의 가르침을 거역하는 못된 궤변”이라는 종교계의 거센 비난은 엄청난 것이었다.

 다윈의 ‘혁명’은 첫 출간 뒤 150년이 지난 오늘 21세기에도 현재진행형이다. 뿌리에서 시작해 거목으로 자라 하늘로 뻗은 가지들처럼, 다윈주의는 자연과학은 물론 의학·철학·심리학·문학·경제학 등 수많은 진화론의 잔가지들로 자라 쑥쑥 뻗어나가고 있으며 그 성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진화론을 읽지 않고 세상을 말하지 말라'는 말이 맞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