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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을 읽다

고대소설 『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

by 언덕에서 2019. 3. 29.

 

 

고대소설 『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

 

 

조선 중기 학자 임제(林悌. 1549. 명종4∼1587.선조20)가 지은 한문 단편소설로 필사본이 전한다. 일명 원자허전(元子虛傳)’이라고도 한다. 이 작품은 임제의 <화사(花史)>와 한데 묶인 단권 필사본 이외에 <조야첨재> 8에 수록된 본문, <육신전(六臣傳)>에 수록된 국역본 등이 현존하는 필사본이다.

 원생몽유록』은 그 밖에 인간본1(印刊本)으로는 <장릉지>, 남효온<남추강집>, 원호<관란유고>, 임제<백호문집> 등에 수록된 것들이 전한다. 작자에 대해서는 김시습ㆍ원호를 주장하는 이설이 있으나 황여일<해월문집>의 기록에 의하여 임제임이 확정되었다. 작품의 제작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작품 말미의 연기(年記)로 추정하면 1568(선조 1)으로 보이는데 황여일은 이 글에 발()과 제시(題詩)2를 붙이고 있다. 작품의 제작 연대는 확실하지 않지만 작품 말미의 연기(年記)로 추정하면 1568년(선조 1)으로 보인다고 선임연구자들은 밝히고 있다. 1953년 이가원이 자기의 소장본을 [국어국문학] 4호에 전문을 소개하고, 주석을 단 바 있으며, 1958년 박지홍[현대문학] 412호에 이것을 번역하여 발표하였다.

 내용은 비명에 시살된 단종과 사육신을 추념하여 생육신의 한 사람인 원호를 주인공으로 하여 사육신과 단종의 사후생활을 그린 작품이다. 기본 줄거리는 원자허라는 인물이 꿈속에서 단종과 사육신을 만나 비분한 마음으로 흥망의 도를 토론하였다는 내용으로 세조의 왕위 찬탈을 소재로 정치 권력의 모순을 폭로한 작품이다. 궁극적으로 인간사의 부조리한 면을 문제 삼은 이 소설은 몽자소설(夢字小說)이 역사적ㆍ사회적 주제를 다루는 차원 높은 본격소설로 발돋움하는 데 기초가 되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원자허는 강개한 선비로 초야에 묻혀 살아가던 어느 날 밤, 꿈에서 죽은 사람들이 사는 영계로 우연히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복건자(남효원)의 마중을 받아 왕(단종)과 박팽년·하위지·성삼문·이개·유성원·최덕지 등 다섯 신하가 있는 정자로 가서 이들과 어울려 고금의 흥망사를 의론한다.

 마음이 격하여 있던 복건자는 '요․ 우. 탕' 네 성군을 도적으로 간주하는 발언을 한다. 이들은 선양을 빙자해서 찬탈의 선례를 역사에 남겼다는 것이다. 왕은 이에 이를 빙자하는 자가 나쁠 뿐이지, 결코 성군을 탓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일동은 술을 마시며 지난 일들을 시로 읊어 회한을 토로한다.

 왕의 노래를 시작으로 신하들이 차례로 음영하고 마지막으로 자허는 감정이 복받쳐서 눈물을 흘리며 시 한수를 읊으니 일동이 듣고 비감에 젖게 된다. 이때 씩씩한 장부(유응부에 해당)가 자리로 뛰어 들어와 왕에게 인사하고 썩은 선비들과는 대사를 이룰 수가 없다며 칼을 뽑아 춤추며 큰 소리로 노래한다. 노래가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날이 어두워지며 비바람이 치고 우레가 한 번 울리자 자허는 꿈에서 깨어난다.

 

조선 중기 학자 임제 ( 林悌. 1549. 명종4∼1587.선조20)

 

 

 이 작품의 작중인물 복건자에 대하여 통설과는 달리 최덕지3로 보는 견해가 있으나 많은 문헌에서 남효온4이 인정되고 있다. 『원생몽유록』은 폐주 단종과 사육신의 억울한 경우를 드러내어 은연중 세조의 찬탈을 비판하고 있다. 이것은 당시에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금기된 사실이었다.

 그러므로 필사된 형태로 문집에 실리지 못한 채 전해온 것이다. 그러나 독자층은 일반사대부 외에도 국역본의 존재에서 보듯 부녀자층까지 퍼졌다. 이는 금기시된 내용이기는 하나 불의를 미워하고 약자를 동정하는 인간의 상정이 크게 작용한 듯하다. 숙종은 『원생몽유록』을 친히 읽고 복건자의 발언 중 ()’자만을 고쳐 세상에 읽히는 것을 묵인하였다.

 이 작품에서 궁극적으로 문제 삼은 것은 인간사의 부조리한 면이다이 점은 황여일의 발문에서도 드러나 있다이 소설로 인하여 한국소설사상 몽유록 계통 소설이 이 작품에 이르러 비로소 역사적사회적 주제를 띤 본격소설로 성격화되었으며더욱 높은 차원의 몽자소설 전개를 촉진했다.

 

 

 이제까지의 소설들 가운데 꿈의 형식을 활용한 것들은 대부분 현실에서 이룰 수 없거나 현실에서 말해선 안 되는 것들을 ‘꿈을 이야기하는 소설’의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왕의 권한을 최고로 여기던 과거에는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이 죄가 될 때가 있었다. 그런 시대에 사실을 말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위해서는 내가 누구이며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들키지 않는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이렇게 해서 쓰인 것이 <몽유록>이다. '몽유록'은 주로 1500~1600년대에 창작되었으며 자신과 사회의 정체성을 고심하는, 번민 어린 작가들이 꿈을 통해 현실 속에 있어야 할 가치를 비현실적 세계에서 탐색한 16세기의 대표적인 서사형식이다. 

 우리 소설사에서 초기에 나타난 소설들은 대체로 몽유에 의한 전개 방식을 택하고 있다. <금오신화>의 작품들이 그렇고 『원생몽유록』이 그렇다. 이 몽유를 통해 작가는 현실적 욕구의 충족을 체험하고 사회 부조리와 모순을 비판한다. 환상적이고 낭만적인 가공의 세계에 사회 현실을 투사하고 있다. 이것은 현실적 부조리와 모순을 자각하면서도 현실의 속박, 봉건적 사회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시대적 한계를 암시한다. 이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을 보아도 작가의 의도가 단종의 폐위와 죽음에 대해 슬프고도 분한 감정의 표출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봉건 왕조의 전 시대를 통하여 성군으로 추앙받는 요순우탕을 비난하는 발언이 나오는 것은 반유가적이고 반체제적인 작가의 면목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주인공이 오래 전에 죽은 인물들의 망령을 꿈속에서 만나 기이한 일을 체험하다가 꿈에서 깨는 이야기를 축으로 하여, 현실-꿈-현실의 액자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꿈이라는 공간을 통해 현실을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현실 세계의 부조리와 모순에 대한 비판 의식을 담았지만 결국 현실에서는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없다는 비탄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1. 인쇄한 책. [본문으로]
  2. 제목을 붙여 시를 지음. 또는 그 시. [본문으로]
  3. 요약조선 전기의 문신. 1409년 교서관장자로서 환구단에서 기우제를 지낼 때 오제제문(五帝祭文)을 준비하지 못해 한때 투옥되었다. 뒤에 삼사(三司)의 관직을 역임하고, 남원부사에 올랐으나 사퇴하고 영암의 영보촌에 내려가 학문을 연구했다. 1450년 예문관직제학(藝文館直提學)을 제수했는데, 이듬해 치사(致仕)하고 낙향했다. [본문으로]
  4. 조선의 문인. 문학적 성격은 남용익(南龍翼)이 붙인 ‘산림삼걸(山林三傑)’이라는 표현으로 응축된다. 관각삼걸에 대칭하여 김시습과 남효온 그리고 송익필을 묶어 부여한 이 명칭을 통해 암울한 현실에 대한 방어기제로서 시를 택한 그의 문학관을 엿볼 수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