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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을 읽다

고대소설 『하진양문록(河陳兩門錄)』

by 언덕에서 2019. 3. 1.

고대소설 하진양문록(河陳兩門錄)

  

 

 

 

조선시대 작자ㆍ연대 미상의 고대소설로 국문활자본이며 32525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조 이전에 쓰여진 것으로 짐작되는 애정소설로서 500여 쪽에 이르는 장편소설이다. 목판본은 없고, 활자본은 1925년 경성 동양대학당, 광복 이후 1954년 공동문화사 발행의 상ㆍ중ㆍ하권 33책이 있다.

 『하진양문록』은 당시의 국문소설로는 드물게 보는 25권의 장편으로 1788(정조 12)에 지어졌거나 옮겨 적은 것으로 추측된다. 작품의 구성상 여러 가지 사건들이 복잡성을 띠고 있는데, 작품의 첫머리에는 계모형 가정소설처럼 한 집에서 일어나는 계모와 전처와의 갈등을 가문과 가문간의 관계로 발전시킨 가문소설의 성격을 띠고 있다.

 중국 송대를 배경으로 악주차사(岳州差使) 진공의 아들 세백과 대사마 대장군 하공 딸 옥주와의 흥미 있고도 파란 많은 결혼까지 역정과 하진(河陳) 양가 생활을 잘 표현한, 구소설로서는 드물게 보는 방대한 소설이다. 특히 여주인공 하소저의 개성적인 행동에 대한 표현은 조선 여성들의 개성의 해방을 종용해주었다고도 볼 수 있는 문제 작품이다.

 

 

♣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중국 송나라 때 악주차사 진공의 아들 세백과 대사마 대장군 하공의 딸 옥주는 약혼한 사이였다. 하공의 아내이자 옥주의 계모인 주씨는 옥주를 미워하여 자기가 낳은 자녀들과 짜고 그녀를 모해하려 한다.

 계모 주씨의 딸 교주가 세백을 연모하여 몰래 방에 들어가 동침하니 하공은 크게 노하여 세백을 처형하려 하나 옥주가 피신시킨다. 비관한 옥주는 연못에 투신하였으나 황룡(黃龍)의 구원으로 선계에 인도되어 무술을 익힌다.

 한편 세백은 과거에 급제하여 병부시랑이 되고, 옥주도 선계에서 내려와 문무 양과에 장원급제하여 남장하고 세백과 사귄다. 이때 서방의 변족(邊族)이 침공하니 세백과 옥주가 전장에 나가 이를 물리친다. 천자가 개선한 세백에게 공주와의 혼인을 재촉하자 그는 옥주에 대한 그리움으로 병석에 눕는다. 이때 서촉왕(西蜀王)이 침략해 와 다시 출전, 진중에서 옥주가 바로 약혼녀임을 안다. 세백은 이 사실을 천자에게 알려 옥주와 결혼하고, 이어 공주와도 결혼한다.

 

 

 

 

   이 소설은 주인공들의 비정상적인 출생과 어린 시절에 겪는 고행ㆍ수학과정ㆍ영웅담 등이 얽어져 있으며남녀 주인공들의 애정문제로 구성되어 있다애정문제가 전 작품의 3분의 이상 차지하고 있고 사건들을 전개시키는 데 있어서 우연성과 전기성이 남용되어 있다그러나 많은 면수에 이와 같은 복잡성을 띠면서 치밀하고 조리 있게 구성하여 놓은 작품도 드물다이런 점에서 다른 고전소설보다 우수하다는 평이 절대적이다.     

  아울러 여성 주인공 하재옥의 도도함과 남성 주인공 진세백의 끈질긴 구애가 부딪혀 빚어내는 웃음이 일품인 작품이다. 특이한 점은 남자주인공 세백이 옥주와 혼인하기 위하여 모든 부귀영화와 권세를 버리고 둘만의 사랑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전쟁에는 이미 과거에 급제한 세백이지만 하옥주의 부하로 참전하여 그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 남편이 아내의 명령을 따르는 장면은 남존여비 사회인 조선을 고려할 때 파격적이다.  

 하옥주는 성인 여성의 주체적인 삶을 살아간다. 여성을 능력으로 인정하겠다는 임금의 태도도 흥미로운데 조선 사회에서 이러한 설정은 파격적이다. 그녀는 진세백과도 혼인해 가정을 이루는데 대외 활동에서도 대단한 평가를 받으며 사회적 위치를 확고히 한다. 하옥주는 진정한 여성상을 드러낸 인물로 사회에서 인정을 받고 가정과 부부 관계의 올바른 정립을 보여주고 있다. 현대 슈퍼 커리어 우먼의 원조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하진양문록』의 제명은 '하씨와 진씨 두 가문의 기록'이라는 의미이다. 제목에서는 가문소설임을 표방하고 있는데 실제 내용을 보면 가문의 성패가 주축을 이루고 있지는 않다. 그보다는 여성주인공의 우월성을 부각하는 데 중점이 있는 여성영웅소설의 면모가 강하다. 『하진양문록』은 일찍이 김태준의 『조선문학사』에서 "「임화정연」과 함께 당시 가장 인기를 끈 작품"이라고 언급되었다. 여성 주인공 하재옥의 도도함과 남성주인공 진세백의 끈지리긴 구애가 부듲혀서 빚어내는 웃음이 독자의 관심을 끈 듯하다.

  인물 구성은 선악의 보조인물을 적절히 배치하여 주인공들의 개성을 뚜렷이 부각시켰으며 이전의 소설들처럼 주인공과 그들의 행동이나 운명을 지배하고 결정짓는 옥황상제 사이를 직선적으로 연결시키지 않는다. 주인공과 옥황상제 그 사이에 새로운 인물인 배후인물을 등장시켜 주인공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그들의 고난을 해결해주는 기능을 하게 함으로써 구성에 있어 좀더 발전된 면을 보여준다.   또한  이 소설은 고전소설의 전형적 표현법인 서술적 표현을 하고 있으며 인물·사건·배경에 대한 표현은 어느 작품보다도 구체적이어서 작품 속 인물 표현은 하나의 전형화된 일정한 틀에서 벗어나 각자에게 강한 개성을 부여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작품 속 인간상은 주어진 운명 속에서 맹종하지 않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려고 고민하고 몸부림치고 살아 움직인다. 이와 같은 모습을 통해 당시의 선각적인 인물을 볼 수 있고생에 대한 좌절과 인간의 상실로 인하여 방황하는 현대인의 모습까지도 연상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