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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을 읽다

고대소설 『심생전(沈生傳)』

by 언덕에서 2019. 3. 15.

 

 

고대소설 심생전(沈生傳)

 

 

 

 

 

조선 정조 때에 이옥(李鈺)이 지은 전()으로 절친한 친구였던 김려(金錤.17661822)가 편찬한 <담정총서> 11 <매화외사>에 실려 있다. 그의 전() 21편 중 유일하게 신분이 다른 두 남녀의 애정을 소재로 쓰인 작품이다.

 심생전』의 서술자는 사평(史評)1에서 이 이야기를 12세 때에 시골 학당에서 선생에게서 들었다고 적었다. 선생은 심생과 동창으로 절에서 편지를 받았을 때 함께 있었다고 한다.

 이옥은 이 내용이 실재한 것임을 밝히고, 정사(情史)2에 추가로 기록하기 위하여 쓴다고 하였다. , 풍류 낭자의 일을 본받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모든 일에 대하여 진실로 얻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못할 일이 없음을 일깨워 주려고 들려준 것이라는 교훈성을 내세우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서울의 사족 집안에서 태어난 심생이 우연히 길을 가다가 호조계사로 노퇴한 중인의 딸 궐녀와 눈이 맞아 뒤를 쫓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느 날 심생이 운종가에서 임금의 행차를 구경하고 돌아오다가 계집종에게 업혀 가는 여자를 보았다.

 아름다움에 반해 따라가 보니 중인의 딸이었다. 사랑하는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어, 밤마다 그녀의 집 담을 넘어가기를 20일 동안 계속했으나 좀처럼 만날 수가 없었다. 결국, 심생의 진실한 사랑을 안 처녀는 심생을 자신의 방으로 불러들이고 자신의 부모를 설득시킨 뒤, 동침했다.

 그 뒤 심생은 밤마다 그녀를 찾았고 이를 눈치챈 심생의 부모는 그를 북한산 산사로 공부하러 보냈다. 그녀는 심생을 그리워하다가 끝내 병이 들었다. 죽음이 임박하여 심생에게 편지를 보내어 하직하고는 죽었다.

 심생은 부모의 명을 거스를 수가 없어 절방에서 글공부를 하던 중 그녀가 보낸 유서를 받았다. 그녀의 죽음을 뒤늦게 안 심생은 글공부를 버리고 무과에 급제하여 금오랑3이 되었으나 그 역시 슬픔을 떨칠 수 없어 일찍 죽고 말았다.

 

 

 

  이 소설은 신분제의 속박으로 인해 양반의 자제인 심생과 중인층 처녀의 사랑이 비극적으로 끝나게 된다는 내용이다신분의 차이 때문에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있으나 작품 결말에 그려진 심생의 죽음은 인상적이다또 주인공 여자는 춘정에 들뜬 심생을 슬기롭게 거절하기도 하고자신의 뚜렷한 주관으로 사랑을 받아들이기도 하며신분 때문에 겪은 불우한 현실을 토로함으로써 자신도 떳떳한 개체적 인간임을 선언하기도 한다이같이 자신의 삶에 적극적이면서도 강한 의지를 보이는 여성상은 조선 후기의 새로운 사회상을 짙게 반영한다.

 그녀는 부모님께 모든 것을 고백하고 그를 남편으로 받아들였으나, 심생은 그녀를 잠자리에서만 아내로 여겼다는 사실을 궐녀는 뒤늦게 깨달았다. 창자가 끊어지고 뼈가 녹는 듯한 고통 속에서 그녀는 혼자 죽어가며 절규한다. “창 사이의 밀회는 이제 그만입니다. 바라옵건대 도련님은 소녀를 염두에 두지 마옵시고, 더욱 글공부에 힘쓰시어 일찍이 청운의 뜻을 이루옵소서.” 그녀는 삶은 물론 죽음까지 한 남자에게 바쳤지만, 심생은 부모에게도 자신에게도 그리고 세상에게도 솔직하지 못했다. 그녀의 유서를 읽고 큰 충격에 빠진 심생은 글공부를 때려치우고 의금부 낭관이 됐으나, 슬픔을 이기지 못해 일찍 죽고 만다

 

 

  『심생전』의 저자는 한 인물의 성격을 확인하기 위한 행적의 삽화식 서술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사건의 시말을 장면 제시적으로 서술을 하여 서술의 야담취향성을 보여 준다. 사건의 결말이 설화나 소설과는 달리 비극적인 것은 사실에 따라서 기록해야 하는 전()의 장르적 성격 때문이다.

심생전』은 서술자의 교훈성 표출이라는 의도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우선 두 남녀의 신분갈등으로 인한 혼사 장애 동기는 조선 후기 신분질서의 동요라는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그리고 여주인공이 언문 소설을 즐겨 읽었다는 것을 통해서 당시 국문소설 독자층은 여주인공과 같은 부유한 중인이나 상인의 부녀자였음을 알게 한다.

 실제로 이옥은 <이언(俚諺)>에서 당대 여성의 섬세한 감정을 그려내고 있는데 <포호처전>에 나오는 숯장수의 아내에게서도 이러한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이생규장전> 또는 <춘향전>을 연결해주는 문학사적 의의가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1. 역사에 관한 평론 [본문으로]
  2. 남녀의 애정에 관한 기록이나 소설. [본문으로]
  3. 『역사』 조선 시대에, 의금부에 속한 도사(都事)를 이르던 말.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