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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을 읽다

고대소설 『홍계월전(洪桂月傳)』

by 언덕에서 2019. 3. 5.

 

고대소설 홍계월전(洪桂月傳)

 

 

조선 시대 작자ㆍ연대 미상의 고대소설로 국문 필사본 1책이다. 7회의 장회소설로서, 중국 명나라를 배경으로 주인공인 여장군의 고행과 무용담을 엮어나간 허구적인 영웅소설로 다른 고대소설인 <여장군전>과 그 구성이 거의 비슷한 작품이다. 1913[신구서림]에서 간행하였다.

 『홍계월전』은 조선 후기에 지어진 한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명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한데 이유는 조선 시대에 여성이 과거에 급제하고 대장군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작가가 알려지지 않은 것 또한 당시 시대상에 반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처럼 『홍계월전』은 조선 후기의 모습을 그대로 담았다기보다는 당시 여성 독자들의 바람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요즘은 여성이라고 해서 못 배우거나 못 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남장을 할 수밖에 없었던 홍계월의 고충에 공감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선 시대 여성들은 집 밖 활동이 제한되어 있었고 학문과 무예를 배우기도 힘들었기 때문에 홍계월의 고충과 비애에 깊이 공감했을 것이다. 요즘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또는 다른 이유로 차별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여주인공 홍계월이 장래 남편이 될 여보국과 함께 펼치는 무용담을 통해 여성의 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여성이 남성을 지배하고, 조종하는 점으로 보아 이 점은 고대소설의 독자층이 대부분 여성이었던 만큼 작품을 통해 은근히 여성의 가정에서 해방을 암시하고 있다.

 

‘홍계월전’의 주인공 홍계월은 뛰어난 지략과 무예를 가졌지만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숨겨야만 했다. 소설은 여성임이 알려진 뒤에도 뛰어난 활약을 펼치는 홍계월을 묘사한다. 사진은 국립한글박물관 소장의 홍계월전 필사본과 전쟁터의 여주인공을 남성화된 모습으로 그린 MBC의 사극 드라마 ‘기황후’ 속 한 장면.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명나라 시절 홍계월은 시랑 벼슬을 한 아버지의 무남독녀로 태어났으나, 간신의 반란으로 부모와 생이별한다. 어머니를 겁탈하려던 도적이 어린 홍계월을 물에 빠뜨렸지만, 그녀는 간신히 구조돼 살아난다. 여공(呂公)의 도움으로 그 집 아들 여보국과 함께 각종 학문과 무술을 익힌 홍계월은 마침내 남성들을 제치고 장원급제하고, 여보국은 부장원으로 급제한다. 남장을 하고 남성들과 똑같이 교육받은 홍계월은 언제나 남성들을 뛰어넘는 출중한 면모를 보인다. 
 외적이 침입하자 홍계월은 대원수가 되고, 여보국은 부원수가 돼 출정한다. 하지만 남성의 자존심을 내세운 여보국이 홍계월의 말을 듣지 않아 싸움에서 크게 패하고 만다. 천신만고 끝에 홍계월의 지략으로 싸움을 승리로 이끈 뒤 홍계월은 헤어진 부모와 상봉하고, 천자는 그녀에게 위국공이라는 높은 벼슬을 제수한다. 뒷날 홍계월이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속인 죄를 자백하자, 천자는 그녀를 버리지 않고 여보국과 혼인까지 시키는 아량을 베푼다. 그러나 아내의 직위가 자신보다 높은 것에 불만을 품은 남편 여보국은 애첩 영춘을 아끼며 홍계월의 자존심을 짓밟고 만다.  

 여보국의 애첩 영춘이 홍계월을 대놓고 무시하자, 그녀는 영춘을 군법으로 다스린다며 영춘을 가차 없이 베어버린다. 이때 남편과 아내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한다. 여보국의 아버지는 아들을 달랜다. 그러나 여보국은 애첩을 잃은 슬픔과 함께 아내를 향한 분노를 접지 않는다.

 “세상 대장부 돼 계집에게 괄시를 당하오리까.”

 그녀가 아무리 사회적으로 인정받아도 남편에게는 ‘내 애첩을 질투하는 계집’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반란군이 일어나 대원수로 출정한 홍계월이 부원수 남편을 위기에서 구해준 뒤에야 두 사람의 갈등은 풀리고 이들 부부는 금실을 회복한다. 이 과정에서 모든 면에서 홍계월의 절대적 우위를 확인한 여보국은 계월을 인정하게 되고 결국 그녀와 행복하게 살게 된다.

 

 

 

 남장을 하고 남성들과 똑같은 교과목으로 교육받은 홍계월은 언제나 남성들을 뛰어넘는 출중한 면모를 보인다. 단, 홍계월은 남장을 한 기간이 훨씬 길고 남장을 넘어 스스로 남성의 정체성을 내면 깊숙이 각인한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면모를 보인다. 또한 홍계월의 탁월함 때문에 사랑하는 남성까지 그녀의 존재를 두려워하고 불편해한다는 점에서 그녀는 더욱 심각한 내적 갈등을 겪는다.

 이 작품은 여주인공이 부모와 헤어졌다가 결합을 다루면서 남녀 간의 애정ㆍ능력 등을 함께 다룬 영웅소설ㆍ군담소설ㆍ여장군소설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면에서 <정수정전>이나 그 이본인 <여장군전> 등과 궤를 같이한다. 물론, <옥루몽>이나 <황운전> 같은 소설도 남성보다 더 우위에 있는 여성ㆍ여장군을 등장시키고 있다.

 이야기에서 가장 충격적인 대목은 여보국의 애첩 영춘이 홍계월을 대놓고 무시하자, 그녀가 영춘을 군법으로 다스린다며 가차 없이 베어버리는 장면이다. 이때 남편과 아내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한다.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고 했던가? 홍계월은 자신의 권리와 자존심을 위해서 또 다른 여성인 영춘을 죽이는 점도 특이하다. 홍계월이나 영춘은 여성으로서 둘다 사회적 약자인데 일부다처제를 허용하는 사회체제에 관한 언급을 하지 않고 여성끼리의 약육강식을 보여주고 있는 점은 고대소설의 한계점이라 할 것이다. 

 

 

 홍계월은 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남성으로 사는 것을 더 원하는 독립적인 여성의 모습을 보여 준다. 어쩔 수 없이 남장을 했다가 남들의 오해를 사 남성처럼 행동하게 되는 수동적인 여타 여성영웅소설들과 다른 점이다. 홍계월은 ‘철저히 여성의 의무에 충실하라’고 강요하는 세상에서 자신도 남성 못지않은, 아니 오히려 웬만한 남성을 뛰어넘는 지략과 용맹으로 사회 장벽을 뛰어넘으려 한다. 홍계월은 박씨 부인처럼 결국 ‘여성으로서의 행복한 삶’에 완전히 길들여질 수 없는 존재였다. 그녀는 지극히 사랑받고 싶어 했지만, 남성과의 경쟁에서 결코 지고 싶지 않은 강한 승부욕을 지닌 여성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두 가지 측면 모두가 홍계월에게는 뜨거운 진실인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다른 고대소설인 [여장군전]과 그 구성이 거의 비슷한 작품이다여주인공의 부모와의 이별과 만남남녀 간의 애정을 다룬 영웅소설군담소설에 해당한다이 작품은 남성보다 우월한 여성혹은 여성 장군을 등장시키고 있다특히 다른 영웅소설과는 다르게 이 작품은 남편이 아내의 지배를 받고군법을 위반하여 엄벌을 받기도 한다또한 회군한 뒤 여자의 벼슬을 회수하지 않고 그대로 부여해두는 점도 이 작품의 독특한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