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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을 읽다

고대소설 『삼한습유(三韓拾遺)』

by 언덕에서 2019. 2. 22.

 

고대소설 삼한습유(三韓拾遺)

 

 

 

 

 

1814(순조 14) 김소행(金紹行)1이 지은 한문 장편 고대소설로 22책이며 한문 필사본이다. 일명 <삼한습유(三韓拾遺)> <의열녀전(義烈女傳)>라고도 부른다. 표제는 삼한습유로 되어 있으나, 속제목은 의열녀전(義烈女傳)향랑전(香娘傳)'으로 되어 있다.

 내용은 조선 숙종 조에 경상북도 선산지방에서 발생한 향랑이라는 여성이 원통하게 죽은 사건을 소설화한 것이다조선 숙종 때 선산에 사는 향랑이라는 여인이 원통하게 죽은 사건의 시대 배경을 삼국시대로 옮겨 소설화한 작품인데, 천상 선녀의 화신으로 세상에 태어난 향랑의 정절과 신라의 삼국통일에서 화랑들이 떨친 무용담 등이 주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야기 대부분은 향랑의 환생 재혼을 방해하는 마군(魔軍)과 천병(天兵)과 싸움을 그리고 있는데, 윤회 사상을 주제로 하고 유불선 3교를 혼합 융화시켜 놓은 작품이다.

 이 작품의 소재가 된 향랑설화<동국문헌비고> <영남악부> <일선읍지> 등에서 찾아볼 수 있으나, 서울대학교 도서관 가람문고의 일선의열도가 가장 자세하다. 전기적 작품으로는 조구상<향랑전>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광정<임열부향랑전>, 이안중<향랑전>, 이옥<상랑전>으로 내려오며 다소의 변화를 보인다. 서울대학교 도서관 가람문고와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신라의 한 양가에 태어난 향랑(香娘)은 천상 선녀의 화신이다. 향랑은 장성하여 재주 있고 가난한 효렴에게 시집가려 하나, 부모의 강권에 못 이겨 못난 남편에게 시집가 모진 구박을 받고 쫓겨난다친정으로 돌아와 부모를 잃고 다시 외숙모의 권유로 마지못해 재혼을 약속하나 그녀는 혼인날 산유화(山有花)’ 1곡을 지어 동녀들에게 전승하게 하고는 연못에 투신자살하고 만다.

 한편, 향랑의 죽은 영혼은 처음 사랑하던 효렴을 찾아가 전생의 인연을 말하고 현세에서 다시 부부가 되기를 맹세한다. 향랑은 그뒤 천상의 후토부인(后土夫人)을 찾아가 상제에게 청하여 인간에 재가시켜 주기를 간청한다.

 이에 향랑의 환생 재가에 대한 천상회의가 열리자, 상제는 여러 반대의견을 무시하고 공자의 요청에 따라 환생 재가를 허락한다. 그 뒤 향랑은 효렴의 이웃집 여인의 태를 빌려 환생하여 첫사랑의 뜻을 이루게 된다. 뜻밖에 마군(魔軍)2이 혼사를 방해하지만, 천병(天兵)3이 마군을 격퇴한다.

 김유신이 다시 향랑의 혼사를 맡아 준비하고 있을 무렵, 또다시 고구려와 백제가 신라를 침범하지만 김유신은 이를 격퇴한다. 마침내 후토부인과 김유신에 의해 향랑과 효렴이 소원하던 첫사랑이 이루어지게 된다그 뒤 백제와 고구려가 재침해왔으나 그때마다 향랑이 신비한 계교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드디어 삼국통일의 위업을 완수한다. 만년에 향랑과 효렴 부부는 가야산에 들어가 해로하다가 하늘로 올라간다.

 

 

 

 

경북 선산에 위치한 향랑을 추모하는 사당

  

 위의 향랑 이야기는 1698년 경상도 선산에 실존했던 인물인 박향랑이 모델이라고 한다. 박향랑은 성격이 포악한 부자에게 시집가서 남편에게 구박을 당하다가 소박맞는다. 친정에서 재혼을 강요받자 물에 빠져 자결하고 만다. 작가는 시대 배경을 조선이 아닌 신라로 설정한 후 자결한 향랑이 천상 세계에서 환생을 허락받고, 본래 결혼하고 싶었던 효렴과 결혼을 하도록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작중 효렴은 어질기는 하지만 가난하다는 이유로 향랑의 어머니가 결혼을 반대했던 남자다. 향랑은 부유한 사람보다 재주 있는 사람, 가난해도 성격 좋은 사람을 택한다.

 향랑은 현생에서 ‘열녀’로 칭송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천상 세계에 있는 다른 열녀와 효녀들이 같이 환생하자는 향랑의 요청을 단칼에 거절한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그들은 번거로운 삶 대신 이미 열녀와 효녀로 세상에 알려진 평판을 그대로 유지하기를 원했지만 향랑은 자신이 원하던 남자와 꼭 한번 결혼하고 싶었으며 ‘열녀’가 아닌 자신만의 사랑을 선택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한다.

 

 

 『향랑전』은 남편의 박대를 받았으나 끝까지 수절하다 죽은 열부 향랑의 비극적인 생을 그린 작품이다. 단지 사실 기록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작자의 창의성이 깊숙이 개입되었는데, 완전한 소설 양식으로 되어 있어서 한문 소설의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작품 가운데 여러 역사적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것은 작자의 창의적이고도 허구적인 인물 설정이다한국의 유일한 신마소설(神魔小說)4로서, 윤회 사상을 기본으로 하여 유이 혼합융화된 경지를 나타내는데, 홍관식의 발문5에 따르면 작자가 구술하는 것을 무태거사(無怠居士)가 받아써서 1주야 만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1. 조선 시대의 문인(1765~1859). 자는 평중(平仲). 호는 죽계(竹溪). 벼슬을 하지 않고 은사(隱士)로 일생을 마쳤다. 작품에 ≪삼한습유≫가 있다. [본문으로]
  2. 『불교』석가모니의 득도를 방해한 악마의 군사. [본문으로]
  3. 천자의 군사를 제후의 나라에서 이르던 말. [본문으로]
  4. 고전 백화 장편소설의 한 부류를 지칭하는 용어로서, 이 부류의 소설이 '신神)'과 '마(魔)'의 다툼을 소재로 하였기 때문에 생긴 명칭이다. 노신(魯迅)이 『중국소설사략』 제16편 '明之神魔小說'에서 이 용어를 쓰기 시작하였으며, 명대 소설의 양대 부류 가운데 하나로 여겼다. 신마의 투쟁과 같은 초현실적인 소재는 위진 시대의 지괴소설(志怪小說)에서부터 즐겨 다루어져 왔는데, 송원대의 설화를 거쳐 명대에 이르자 장편 대작이 출현하게 된 것이다. 신마소설은 대개 종교적인 이야기나 신화, 전설, 혹은 역사로부터 소재를 빌어오고 있다. 신마소설은 중국 고전소설 가운데서는 낭만적 요소가 가장 풍부한 부류이다. 풍부한 상상력과 고도의 과장법을 동원하여 광활한 초현실적인 세계를 그리면서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주제를 표현하였다. 명청대를 통하여 30여 편의 신마소설이 출현하였는데,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되는 것이 『서유기(西遊記)』이다. [본문으로]
  5. 책의 끝에 본문 내용의 대강(大綱)이나 간행 경위에 관한 사항을 간략하게 적은 글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