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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을 읽다

고대소설 『정수정전(鄭秀貞傳)』

by 언덕에서 2019. 2. 15.

 

 

 

고대소설 정수정전(鄭秀貞傳)

 

 

 

 

 

작자ㆍ연대 미상의 고대소설로 1. 국문 필사본ㆍ목판본활자본으로 구성되며 <여장군전(女將軍傳)>이라고도 한다. 필사본은 장서각 도서에 1책이 있다. 목판본으로는 국립중앙도서관에 3종이 있는데, 2종은 각각 1920년과 1921년에 경성 한남서림에서 간행한 것이고, 1종은 간행 연도 미상이다.

 1905년 경성 합동에서 간행된 단국대학교 율곡도서관 나손문고 소장(김동욱 소장본) 1종이 있고, 같은 경판으로 오한근 소장 1종이 있다활자본은 여장군전이라는 표제가 붙은 것이 1915년에 세창서관에서 간행되었고, 역시 같은 곳에서 1915년에 간행된 <정수정전>이 일본 와세다대학에 있다.

 중국 송대를 배경으로, 남장 여주인공인 정수정과 남주인공 장영과의 결연과정과 여주인공 정수정이 남복하고 대원수가 되어 전장에 나가 위대한 공을 세웠다는 여장군의 용맹한 활동을 표현한 허구적 영웅담을 그린 여성 영웅소설ㆍ군담소설이다가정에서의 주도권 다툼을 보여주는 정수정과 장연의 대립이 흥미를 돋워 주는데, 남편과 시어머니까지 굴복시킬 정도로 수정의 위세가 당당한 것이 주목된다. 유사한 작품으로 <홍계월전>이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송나라 태종 황제 시절 병부상서 겸 표기장군 정국 공은 혈육이 없어 근심하다가 뒤늦게 딸 하나를 낳으니, 이름을 수정이라 하였다. 이때 이부상서 장운에게 연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정공이 장상서의 집에 놀러 왔다가 그 아들을 보고 청혼하니 그들은 그 자리에서 혼약하였다이때 정공이 황제께 간신인 진공을 멀리하기를 간하는데, 진공이 이를 알고 정공을 모함하여 결국 절강으로 귀양 가게 되었다. 정공이 그곳에서 죽으니 부인 양씨도 죽고 잇따라 사돈이 될 예정이었던 장상서도 죽었다.

 의지할 곳 없게 된 정수정은 남장하고 무예를 닦아 과거에 응시해 급제하였다. 이미 과거에 급제해 한림학사가 된 장연을 만난 정수정은 장연과 혼약한 사람은 죽은 자기 누이라 속이니, 이 말을 믿은 장연은 위 승상의 딸과 혼인하였다. 이때 북방 오랑캐가 침범하니 정수정이 대원수가 되고 장연이 부원수가 되어 출정하였다. 기주에게서 오랑캐왕 마웅과 부닥친 정수정은 적군을 쳐부수고 대승을 거두어 황성으로 회군하였다.

 크게 기뻐한 황제가 정수정과 장연을 각각 부마로 삼으려 하자 정수정은 더 임금을 속일 수 없어, 표를 올려 자신이 여자임을 고백했다. 이에 황제는 정수정을 청주 후로 봉하고, 예부에 명해 장연을 정수정과 혼인시키고 또 공주와도 혼인시켰다(장연은 아내가 두 명 얻음). 모두 즐겁게 지내던 중 정수정이 장연으로부터 특별한 귀염과 사랑을 받는 여자 영춘의 방자함을 징계해 목을 베자 시어머니가 대로하고, 장영 또한 정수정에게 냉랭하게 대했다.

 이에 정수정은 청주로 돌아가 군사를 훈련했고, 흉노족 철통 골이 다시 침략하자 대원수가 되어 적을 쳐부수었다. 이때 장연은 군량을 수송하는 책임을 맡았는데, 제 때에 대지 못하자 정수정은 장연을 결장(決杖) 열 번으로 다스렸다. 황성으로 회군하던 도중 진공의 목을 베어 부모의 원수도 갚았다.

 정수정이 돌아오니 황제가 친히 마중을 나오고 황후이자 시어머니인 태부인은 시녀를 보내어 화해를 청하니, 다시 일가가 화목하게 자손을 낳고 75세까지 수를 누리다가 동시에 채운을 타고 승천하였다.

 

  

 

 『정수정전』의 주인공 정수정은 어린 소녀로서 홀로 남겨지지만 처지를 비관하지 않는다. 자신의 미래를 계획한 그녀는 남자로 변장한 후 각고의 노력 끝에 문무를 겸비한 영웅으로 변신한다. 정수정은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하여 높은 관직을 얻는다. 그녀는 오랑캐가 침입하자 대원수가 되어 전쟁터로 나간다. 출사표를 던지면서 황제에게 “몸에 갑옷을 입었기에 신하의 예를 행하지 못합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당당하다. 이후 전쟁터로 나가 큰 공을 세우는데 황제가 국가를 구한 영웅을 사위로 삼고자 하자 정수정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여성임을 고백한다.

 정수정이 여성으로 밝혀지자 황제는 그녀의 경제력을 제외한 사회적 직위를 박탈해 버린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 돌아온 정수정은 주체적 여성으로서 삶을 살아가기로 한다. 정수정은 혼자 살겠다고 청해 보지만 황제는 그녀에게 동료이자 정혼자였던 장연과 결혼을 강요하였고, 그녀는 따를 수밖에 없다.

 



 이 무렵 북쪽 오랑캐가 다시 침입하였고, 정수정은 다시 자신의 능력을 펼칠 기회를 얻는다. 이제는 여장군으로서 대원수가 되었다. 그러나 남편 장연은 정수정이 대원수가 아닌 자신의 아내라는 생각에 그녀가 내린 명령과 지휘를 받는 것을 싫어한다정수정은 남편에게 공사 구별을 요구하며 부부관계라는 사적 관계를 무시하고 군법으로 남편을 처벌한다. 이와 같은 정수정의 뛰어난 능력과 지도력 덕분에 국방은 다시 안정을 되찾고, 황제는 그녀의 능력과 사회적 지위를 인정해 준다. 남편 또한 그녀에게 더이상 그 시대 여인네가 가진 삶의 방식을 강요하지 않는다. 소설의 배경은 송나라이지만 독자들의 삶이 위치한 조선이라는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여성 영웅소설은 19세기 한복판에서 주체적 여성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이 소설은 여성 독자를 의식한 작품으로 판단된다불행이 닥쳤을 때 여성들이 소극적으로만 대처해 그대로 감수하는 것이 아니고, 남장하고 과감하게 남성 세계에 뛰어들어 국가에 혁혁한 공로를 세운다. 또한 남편과 시어머니와 대등한 위치에 섬으로써 현실에서 오는 맹종의 열등감을 해소하고야 만다. 이런 점은 <박씨전(朴氏傳)>에서도 볼 수 있다. 박씨는 가정 안에서 자체의 변화를 일으켜 활약하는 데 반하여, 정수정은 가정 밖으로 나가 능력의 변화를 얻어 적극적인 활동을 한다는 구성의 차이점이 획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