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에 겐자부로 단편소설 『사육(飼育)』
일본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 1935~ )가 쓴 단편소설로 1958년 [분가쿠카이(文學界)]1 1월호에 발표되였다. 이 작품 『사육』은 겐자부로가 동경대학교 불문과 재학 중에 발표한 단편소설로, 그에게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29회, 1958년 상반기)을 안겨준 작품이다. 이후 그는 전후 신세대 작가로서 확고한 위치를 굳히게 된다.
이 작품은 그의 출세작으로 태평양전쟁 말기 산촌에서 흑인 병사와 마을 사람들을 둘러싸고 생기는 사건을 소년들의 눈을 통해 묘사했다. 『사육』은 전쟁과 전쟁이 가져온 잔혹한 상흔을 어린아이와 어른 세계의 대비를 통해 정면으로 취급하여, ‘한계상황’에 처한 인간성의 보편화를 시도한 실존주의적 성격의 소설로, 전후 일본의 정신적 원형을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단편소설 「사육」은 태평양전쟁 후 일본사회의 불안감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일본의 한 산골마을에 추락한 뒤 마을의 지하창고에 갇힌 미군 흑인 비행사와 마을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마을의 아이들은 병사에게 다가가 말도 걸고 음식도 넣어주는데 반해 어른들은 그를 신고하려 들고 결국 병사는 당국에 의해 끌려가게 된다. 갇힌 병사를 둘러싸고 아이들과 어른들이 벌이는 대조적인 행동을 통해 전후의 불안을 딛고 살아남으려는 일본인들의 내면세계를 목가적으로, 때로는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산촌의 목가적인 일상 속에 갑자기 몰아닥친 전쟁으로 인해 흑인 병사를 잡은 어른들의 곤혹감, 신기한 사육동물을 얻게 된 어린이들의 축제 분위기, 외부와의 연락이 회복되면서 흑인 병사가 친구에서 갑자기 적으로 변하는 공포 등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오에 겐자부로는 1994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즈음인 1944년 일본의 본토의 산골마을이다. 전황은 일본에게 절망적이나 대부분의 일본 민중들은 천황과 군인내각의 약속대로 별일이 없이 승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전쟁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있던 산골 마을에 적군 비행기가 추락한다. 미군 비행기는 산속에서 불 타고, 낙하산으로 탈출한 흑인 병사 한 명만이 살아남아 마을로 잡혀 온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지하창고에 가두고, 현(県)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보살피기로 한다. 처음에는 모두가 그 흑인 병사를 두려워하지만, 감시와 음식을 운반하던 아이들을 중심으로 조금씩 그와 친해진다. 흑인 병사는 읍내 서기의 고장 난 의족을 고쳐주기도 하고, 아이들과 함께 대장간을 구경하러 가기도 하고, 물놀이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아이들과 병사는 인간적인 유대를 맺어간다. 그중 한 명이었던 ‘나’도 그 흑인 병사에게 점점 애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읍내 서기가 와서 곧 흑인 병사를 넘겨받으러 군대가 올 예정이니, 읍내까지 그를 호송해달라고 부탁한다. 이 소식을 듣고 놀란 소년은 흑인 병사에게 알리러 가지만, 도리어 그에게 인질로 붙잡혀 적의와 배반의 쓰라림을 알게 된다.
아버지가 구하는 과정에서 왼손에 상처를 입은 ‘나’는 의식을 잃고 만다. 며칠 뒤 의식을 차린 ‘나’는 흑인 병사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되고, 먼 나라 일처럼만 느끼던 전쟁이 자신을 덮쳐 왔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느낀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무렵, 격추된 비행기에서 미국 흑인 비행사가 낙하산을 타고 어느 산촌에 낙오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흑인 병사가 나타나기 전까지 이 마을은 어른과 아이의 세계가 분리되지 않은 평화로운 세계였으나, 이 흑인 병사의 출현으로 어른과 아이의 세계가 점차 분리되기 시작한다. 흑인 병사를 포로로 취급하면서 짐승을 다루듯이 사육하고, 결국 흑인 병사는 ‘나’의 아버지가 휘두른 도끼에 맞아 죽게 된다. ‘나’도 아버지가 휘두른 도끼에 손을 다쳐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난다.
전쟁과 주인공의 내적인 성장이 푸가(대위법적 모방의 기법을 사용하는 악곡 형식)를 이루고 있다는 평가(에토 준)처럼, 이 작품에서 흑인 병사를 도살하고 주인공 ‘나’의 손가락에 상처를 입힌 손도끼는 앙팡테리즘으로부터 결별하려는 작가 자신의 의지를 상징하고 있다. 포로를 백인이 아닌 흑인으로 상정한 부분에서 작가의 인종차별적인 성향이 보인다는 견해도 있다.
소설가 겐자부로는 시대를 살아가는 자신의 윤리적 자세를 끊임없이 자문하며 개인적인 체험을 녹여 낸 소설에서 '핵 시대'의 지구와 우주의 관계를 그린 미래 소설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을 보여 주었다. 21세기인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가 쓴 단편소설은 그리스 신화가 그러했듯이 삶의 불변하는 단면을 촌철살인의 관찰력과 응축된 예술적 형식으로 꾸준히 생산했다. 작가들이 저마다의 개성으로 그린 칼로 베어 낸 듯 날카로운 인생의 다양한 단면들은 시공을 초월해 오늘의 우리에게도 깊은 감동을 준다. 새로운 문학적 기법과 실험의 도입을 통해 단편소설은 현재도 계속 진화, 확장되었다. 에드거 앨런 포는 문학작품은 독자가 앉은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짧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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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겐자부로 단편소설 『사육』의 시대적 배경이 태평양전쟁 말기라는 점을 고려할 때, 흑인으로 상징되는 원폭 투하의 검은 이미지. 평화로운 산촌의 붕괴로 상징되는 일본의 재앙, 어른들과 소년들의 대립, 전전 세대와 전후 세대의 결별, 어른들이 저지른 검은 재앙과 후유증, 피폭 문제, 패전으로 인한 여러 가지 사회 문제 등을 다음 세대의 주체가 되는 소년들이 이어받아 사육하게 된다는 이미지가 이 작품의 제목에 함축되어 있다.
일본의 평론가 에토 쥰(江藤淳)은 이 작품의 주제와 관련하여 “전쟁과 주인공의 내적인 성장이 푸가를 연주하고 있으며 그것이 아버지가 휘두른 낫이 번득이는 순간에 합치됐다고 말할 수 있다. 흑인 병사를 도살하고 ‘나’의 손가락을 부순 낫은 작가의 유아성과 결별 의지를 상징한다”라고 평했다. 미군 포로를 흑인이라고 설정한 이유와 관련하여 이를 일본 전후 젊은이의 굴욕감이 역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분석하거나 흑인 병사로 상징되는 ‘흑’의 이미지를 원폭의 이미지와 연결한 연구가 있었다.
그 밖에 “비행기추락사고로 인해 강자에서 약자로 전락한 흑인 병사와 도시로부터 차별받는 촌락 마을 소년들과의 소통과 교류”, “전쟁이 가져온 신화적 세계의 실현과 상실” 등에 주목한 연구도 있다. 하지만 『사육』은 주로 어린이의 세계까지도 침범하는 전쟁의 참혹함을 통해 전쟁 비판과 소년의 성장을 함께 이야기한 작품으로써 읽히고 있다.
- 일본의 문예잡지. 프롤레타리아 문학 퇴조 후의 문예부흥을 목표로 창간되었으며 1933년 10월부터 1934년 2월, 1934년 6월부터 1944년 4월, 1947년 6월부터 1948년 12월 간행되었다.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 하야시 후사오[林房雄] 등에 의해 창간되어 근대의식에 입각한 개인주의·예술주의를 내걸고 문단의 주도적 역할을 했다. 창작에 아베 도모지[阿部知二], 이시카와 준[石川淳], 호조 다미오[北條民雄], 시마키 겐사쿠[島木健作], 나카야마 기슈[中山義秀] 등, 평론에는 고바야시 히데오, 후나바시 세이이치[舟橋聖一], 가와카미 데쓰타로[河上徹太郞], 가메이 가쓰이치로[龜井勝一郞]등이 활약했다. 1949년 3월부터는 분게이슌주샤[文藝春秋社]가 발행하는 일반 문예잡지가 되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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