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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H.G. 웰스 공상소설 『투명인간(The Invisible Man)』

by 언덕에서 2018. 7. 13.

 

 

 

H.G. 웰스 공상소설 『투명인간(The Invisible Man)』

 

 

 

 

 

 

영국 소설가ㆍ사회학자 웰스(Herbert George Wells.1866∼1946)가 발표한 공상과학 소설로 작가의 <타임머신>과 함께 대표작에 속한다. 웰스는 빈곤한 가운데 독학과 고학을 하여 이학사가 되어 1893년경부터 과학 교과서를 낸 것이 문필 종사의 시작이며, 그 후 100여 종의 저술을 이룩하였다. 과학에 의한 미래의 상상을 차례로 다수 발표하였는데, 예를 들면 <타임머신>(1895) 「투명인간」(1897) 등에 이어 1905년의 <근대 유토피아>를 낼 무렵부터 현대사회 비판으로 붓을 돌리기 시작했다. <킵스(Kipps)>(1905) <토너 번게이(Tono Bungay)>(1909) <안베로니카(Ann Veronica)>(1909) <폴리씨의 이력>(1910) <신(新) 마키아벨리>(1911) 등은 순수소설로서도 가작이다.

『투명인간』은 1897년 6-8월에 걸쳐 피어슨즈 위클리(Pearson'sWeekly)지에 연재되었고, 같은 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웰스의 초기 작품들은 정치, 전쟁, 종교, 역사 등 인간사회 여러 문제를 다루었다. 이후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문명의 맹점과 인간 본성의 취약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비판 정신이 강한 작품을 썼다. 사회학자가 쓴 문명비판적인 이 작품은 한국에서는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고, 1970년대에는 어린이 잡지의 만화로 또는 1990년대에는 기껏 어린이 문고판 축약판으로 소개된 게 고작이었다. 2008년 8월에서야 모 출판사에서 전문을 번역한 원작판이 나왔다.

 

 

영화 <투명인간 The Invisible Man> , 1933 제작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두터운 외투를 걸치고 챙 넓은 모자를 눌러쓰며, 얼굴은 붕대로 가린 이방인이 영국 웨스트 서식스의 작은 시골 마을 아이핑에 나타난다. 여관방에 틀어박혀 화학 실험으로 시간을 보내며, 오직 밤에만 외출하는 그의 기행은 얼마 안 되어 온 마을의 화젯거리가 되고 만다. 어느 날 주인공은 여관 주인 내외에게 자신의 비밀을 들키게 되어 도망친다. 이 사람은 투명인간 실험을 하고 있었다.

 투명인간은 토머스 마블이라는 부랑자를 발견하여 자신의 조수로 삼고 과학실험노트와 훔친 돈을 맡기지만 이내 배신당하고 만다. 이후 우연히 대학 동창 켐프 박사의 집에 숨어들게 된 주인공은 자신이 그리핀임을 밝히고 긴 이야기를 들려준다. 과학자로서 투명인간이 되고자 행했던 실험들, 투명인간이 되어서 겪는 일상의 어려움, 몸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한 노력과 좌절,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신체를 이용해 '공포 시대'를 실현하려는 야심 등을 털어놓으면서 그리핀은 옛 동창을 공모자로 삼고자 한다.

 하지만 그리핀을 위험인물이라 판단한 켐프 박사는 경찰에 제보하여 그리핀의 체포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쫒기는 와중에도 배신한 켐프에게 복수할 기회를 노리던 그리핀은 우여곡절 끝에 거리의 군중에게 붙들려 구타당하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핀의 몸은 죽음에 이르러서야 투명 상태에서 이전의 일상적 상태로 돌아온다.

 

 

영화 <투명인간 The Invisible Man> , 1933 제작

 

 

 플라톤의 <국가>(제2권, 3장)에서 (정의와 불의에 관한 논의 중), 고대 리디아의 기게스라는 양치기가 사람을 투명하게 해 주는 반지를 손에 넣은 후 왕후와 내통하고 왕위까지 찬탈했다는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투명인간’은 타인의 시선을 피하려는 인간 욕망을 반영하는 유구한 모티프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무소불위의 '투명인간'이라는 환상이 실현되어도 인간은 온갖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으며, 초인적인 능력은 자유가 아니라 고립과 파멸을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또한 원시적 폭력성향을 그대로 보유한 인간의 손에 첨단과학이라는 무기가 쥐어진 이 시대에는 언제 어디서나 괴물이 출현할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허준 선생의 동의보감 잡방문에 은형법(隱形法)이라는 처방이 있다. 개의 담(膽)을 포함한 세 가지 본초로 구성되어 있으며 효과는 '은형(隱形(형체를 숨김))'이라고 되어 있다. 이 처방을 KBS - TV 오락프로인 '스펀지'에서 실험했지만 투명인간이 되지 않았다. 해당 프로에 출연한 한의사에 의하면 재료는 나와있는데 그 재료를 배합해 약을 제조하는데 필요한 수량이나 무게가 세세히 안 나와있어서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투명인간에 관한 호기심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끝이 없다.

 웰스는 과학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허구의 '투명인간'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몸 전체가 완전히 투명해진 인간은 망막에 사물의 상이 맺힐 수 없으므로 사물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이 소설이 과학적 근거가 빈약함을 지적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제20장에 망막만 빼고 투명해진 고양이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웰스의 자연과학에 대한 이해는 그러한 단편적 비판을 넘어서는 수준에 이르렀음이 틀림없다. 초인의 자유와 윤리와 인간 정체성, 제어 불가능한 힘 앞에서 느끼는 공포, 권력의 광기 등 이 작품에 담긴 주제는 이후 끊임없이 작가들의 영감을 자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