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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을 읽다

고대소설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by 언덕에서 2019. 2. 1.

 

 

고대소설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조선 전기 학자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 지은 한문 소설로 원본은 전하지 않는다. 일본 동경에서 목판본으로 간행된, 작자의 소설집 <금오신화>에 실려 전하는 다섯 편 중의 하나로 이 소설은 일종의 전기소설(傳奇小說)이다. 국내에서는 김집이 편찬한 한문 소설집<이생규장전>과 더불어 필사된 내용이 있다. 산 남자와 죽은 여자의 사랑을 그린 애정 소설이, 구조 유형상 명혼소설 또는 시애소설이라고도 한다.

 이 글은 전래하는 인귀교환설화, 시애설화, 명혼설화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이승의 사람과 저승의 영혼 결합이라는 전기성(傳奇性)을 두드러지게 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전래 설화, 패관 문학, 가전 등의 내적 요인에다 중국 진당 전기체 소설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으며, 중국<전등신화>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남원의 떠돌이 노총각 양생(梁生)이 만복사(萬福寺)에서 부처와 저포(나무로 만든 주사위를 던져서 승부를 겨루는 유희) 놀이를 하여 이기자 소원이었던 배필을 맞았다. 그러나 알고 본즉 그녀는 어느 귀인(貴人)의 죽은 딸이 현신한 영혼이었다. 실망한 양생은 그 후 지리산으로 약초를 캐러 간 후 소식이 끊겼다는 줄거리이다중국의 <전등신화>를 본뜬 것이 분명하지만, 이 작품에 이르러 한국의 소설 문학이 비로소 그 형태를 완전히 갖추게 되었으므로 단순한 모방이라고만 볼 수 없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남원에 사는 노총각 양생(梁生)은 어느 날 만복사의 불당에 찾아가서 부처님께 저포 놀이를 청했다. 그가 지면 부처님에게 불공을 드릴 것이요, 부처님이 지면 그에게 아름다운 배필을 중매해 달라고 부탁하는 내기였다. 서생은 두 번 저포를 던져 이겼고, 불좌 밑에 숨어서 배필이 될 여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때 문득 아름다운 아가씨가 나타나 부처님 앞에 자신의 외로운 신세를 하소연하면서 좋은 배필을 점지해 달라고 기원하였다. 이를 본 서생이 그 여인 앞으로 뛰어나가 의사를 전하니 두 사람은 하룻밤을 함께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실은 이 여인은 인간이 아니라 왜구가 침범한 난리 통에 죽은 처녀의 귀신이었다.

 이튿날 여인은 서생에게 자기가 사는 동네로 가기를 권했고, 서생은 거기서 융숭한 대접으로 받았다. 사흘 뒤 그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여인이 서생에게 신표로 은주발 한 개를 선사하였는데 그것은 그 여인의 무덤에 매장한 부장품이었다. 다음 날 그들은 보련사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재가 끝난 뒤 여인은 인연이 끝났다고 말하며 마침내 혼자서 저승으로 떠나 버렸다. 서생은 끝내 그 여인을 잊지 못하여 장가도 들지 않고 지리산에 들어가서 약초를 깨면서 남은 생을 마쳤다.

 

조선 전기 학자 김시습 ( 金時習 .1435 &sim; 1493)

 

 이 작품은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인을 등장시킴으로써 중국소설과는 다른 자주적인 성격을 보여 준다그리고 산 남자와 죽은 여자의 사랑을 통해 강렬한 삶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죽은 여자는 민간 속신에 나타나는 문자 그대로의 귀신이 아니다그것은 역설적인 구조를 마련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귀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작자의 논설에 나타난 사상과 일치한다.

만복사저포기』에서 나타난 생인과 사자의 사랑은 살아 있는 남녀 간 사랑보다 더욱 강렬한 의지를 표현한다. 그리고 그 의지를 좌절시키려 드는 세계의 횡포를 고발하는 데 더욱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작품의 결말은 비극적인 모습으로 해석함이 보통이다. 그러나 도교적인 초월로 보기도 한다. 현실적ㆍ일원론적 세계관에 따라 현실을 깊이 있게 주시하면서 현실이 지닌 문제점을 드러내 준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현실주의적ㆍ사실주의적 경향을 띤다. 이런 점에서 매우 중요한 문학적 가치와 소설사적 의의를 지닌 작품으로 평가된다.

 

♣ 

 

 『만복사저포기』는 인간인 양생(梁生)과 죽은 원혼인 아름다운 여인 사이의 시공간을 초월한 러브스토리를 다룬 명혼소설이다. 가난하고 배경도 없는 노총각 시골 선비인 양생은 결혼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흙수저인 그에게 시집올 규수란 없기 때문이다. 아무런 희망도 품지 못하는 그는 음력 324, 만복사로 소원 빌러 갔다. 절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절 대웅전 부처에게 빌면 만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을 것이다. 많은 사람처럼 그도 이날 만복사를 찾아 소원을 빌었다.

 이날, 양생은 대웅전 부처에게 기도하면서 내기를 한다. 나무로 만든 주사위를 던져 자기가 이기면 배필을 데려와 달라는 저포(樗蒲) 놀이다. 그래서 이 단편소설의 제목이 만복사저포기이다. 내기에서 부처에게 이긴 양생은 아리따운 여인을 만나 3일 동안 깊은 사랑을 나누고 백년가약을 맺는다. 그러나 즐거운 시간은 항상 그렇듯 오래 가지 않는다. 양생이 목숨을 걸고 사랑에 빠진 여인은 왜적의 침입을 받아 능욕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많은 귀신(鬼神)의 현신이었다. 귀신은 오래 머물 수 없는 법이다. 인간 세계에서 3년에 해당하는 삼일을 꿈결처럼 보낸 뒤 여인은 돌아올 수 없는 저 세계로 떠난다.

백년가약을 맺은 약속을 어기고 어떻게 그리 허망하게 떠나가느냐는 양생의 하소연에 여인은 당신의 진실한 사랑 덕분으로 먼 다른 나라에서 남자로 태어나 기쁘다라고 말한 후 인연을 끈을 놓지 말고 나중에 다시 만나자며 길을 떠난다

 이 작품은 '양계와 음계 인물의 만남, 이별양계의 인물이 속세를 버림'이라는 줄거리로 되어 있다주인공 양생은 비록 현실이 아닌 음계의 인물과 만나 사랑을 나누었지만그것을 한갓 장난이나 일시적인 것으로 알지 않고 진실한 것으로 생각했다음계의 여인이 사흘 동안의 재가 끝난 후 공중에 나타나자신이 양생의 은덕으로 타국의 남자로 태어났음을 말하고양생에게 정업을 닦아 속세의 누를 벗어날 것을 부탁하지만양생이 장가도 들지 않고 속세를 떠났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 준다이 작품은 설화적 소재에 자신의 창의성을 가하고 상당 수준의 소설적 형식을 갖춤으로써 수준 높은 소설로 발전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