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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을 읽다

군주론과 제왕학의 영원한 고전 『한비자』

by 언덕에서 2018. 8. 1.

 

  

군주론과 제왕학의 영원한 고전 『한비자

 

  

 

 

 

춘추전국시대는 말 그대로 ‘난세’였다. ‘전국戰國’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그야말로 싸움이 끊이지 않았던 시대였다. 나라는 나라끼리, 제후는 제후대로 저마다 생존하기 위해 싸워야만 했다. 따라서 살아남기 위해 유세가들은 저마다 나라를 세우고 다스리는 방법,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 등을 각 나라의 제후들을 찾아다니며 설파하여 자신의 뜻을 펼칠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나 한비자는 그 뛰어난 재능을 펼쳐내지 못하고 울분을 삼키며 『한비자』라는 책에 제후들이 지녀야 할 통치술의 모든 것을 담아냈다.

 제후 국가의 하나인 한(韓)나라의 왕은 나라를 다스리고 부강하게 하는 데 힘쓰지 않았다. 더구나 실속 없는 인사들을 등용해 실제로 공이 있는 사람보다도 높은 대우를 하고, 유가의 경전에 입각해 왕에게 유세하는 사람들을 총애했다. 또한 정작 위급할 때는 실제로 싸울 수 있는 무사를 허겁지겁 등용하는 등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목격한 한비자는 태도에 한(韓)나라의 왕에게 실망했다. 그래서 법으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을 왕에게 제안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책을 지었다. 

 

 

 한비는 부국강병을 위한 학문을 배우기 위해 그 무렵의 대표적 학자였던 순자의 문하에 들어갔다. 동문으로는 훗날 진나라의 재상이 된 이사가 있었다. 한비는 순자의 ‘성악설’과 노자의 ‘무위’에서 철학적 계시를 받고, 상앙의 ‘법’과 신불해의 ‘술’을 종합해 독특한 통치 이론인 ‘법술(法術)’을 만들어 냈다.
 한비는 이 ‘법술’이야말로 부국강병의 유일한 길이라고 한나라 왕에게 진언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나라에는 벌써 천하통일을 지향하는 기개가 사라져 버리고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법술’을 채용한 것은 진나라 왕인 정(政, 뒷날의 시황제)이었다. 어느 날 정은 한비의 저작을 읽고 감탄했고 저자를 만나고 싶어 했다. 진나라가 한나라를 공략하자 한나라는 한비를 사자로 보내 화친을 요청했다.
 진나라 왕은 한비를 만났지만 그를 바로 등용하지는 않았다. 한편, 이사는 옛날에 동문수학한 한비의 천재적인 능력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가 등용되면 자신의 입지가 흔들릴 것을 두려워해 경계했다. 결국 그는 한비를 참언해 옥에 가두었고 옥중에 독을 넣어 보냈다. 한비는 어쩔 수 없이 그 독을 마셨다(BC 233). 그 뒤 3년이 지나 한나라는 멸망했고, 10년 뒤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자 정은 스스로 시황제라 칭했다. 시황제의 정책은 모두 한비의 법가 사상에 따라 세워졌다. 그래서 시황제를 한비의 제자라고 부른다.

 

 

 

 

 

 한비자가 내세운 통치론의 핵심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법’, ‘술’, ‘세’가 그것이다. 한비자는 현명한 군주는 제도를 시행할 때 공평하게 원칙을 지키고(‘법’), 인물을 가려 뽑는 데 귀신같이 밝았으므로 군주를 비방하거나 곤경에 빠뜨리는 자가 없었고(‘술’), 권세를 이용해 법을 엄하게 시행해도 군주의 뜻을 거스르는 백성이 없다(‘세’)고 보았다. 특히 한비자의 ‘법’사상은 지위의 높낮이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따라야 하는 행위준칙으로 모든 현실적인 대처에 우선하는 통치의 근간이 된다. 한비자는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법조문을 만들지는 않았으나, 공이 있는 사람에게는 상을 주어 격려하고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벌을 주어 뉘우치도록 하는 원칙을 강조했다. 한비자가 보기에 전국시대의 국제관계는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하므로 나라의 멸망을 피하려면 엄격한 법 집행을 통해 부국강병을 이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다.

 

 

 한비자는 무엇보다 유가를 비롯한 제자백가들이 고대의 성현만을 숭상하는 태도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한비자는 역사는 진화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견되면 시대와 환경 변화에 따라 새로운 방법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명한 ‘수주대토’의 고사처럼 우연히 죽은 토끼를 기다리며 허송세월하는 태도보다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고민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한 한비자의 현실론은 군주와 신하의 기본적인 관계가 본능적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관계라고 본 점에서 출발한다. 이런 측면에서 인간의 본성을 선하게 보고, 이상적인 고대의 성인들을 답습하려는 유가의 사상을 매우 비현실적으로 간주했다.

 특히 이익만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을 제어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근본적인 방법을 ‘법’이라고 본 점은 현대의 관점에서도 획기적이면서 현대적인 의미를 던져준다. 근대 민주주의 국가로서 헌법에 기반한 법치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법을 집행하는 데 있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처럼 재력과 사회적인 지위에 따라 공정하게 집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사실을 우리 모두가 은연중 공감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