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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중편소설 『사양(斜陽)』

by 언덕에서 2018. 6. 12.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중편소설 『사양(斜陽) 

 

일본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19091948)의 중편소설로 19477월부터 10월까지 잡지 [신조]에 연재되었다. <비용의 아내> <인간 실격>과 함께 다자이 오사무의 후기 걸작으로 꼽히며, 2차 세계대전 직후 패전으로 몰락해 가는 귀족 가정과 시대 의식을 전형적으로 그리고 있는 대표작이다.

  패전 후,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진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다자이 오사무는 1947년에 사양을 출간했으며 단숨에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당대에 몰락하는 귀족을 지칭하는 사양족이라는 유행어를 낳을 정도로 일본 사회에 일대 파문을 일으킨 작품이다.

  『사양다자이 문학에서 으레 떠오르는 어둡고 파멸적인 세계관과 달리 풍성하고 깊어진 그의 중후기 세계관을 보여 주는 독보적인 소설이다. 독백, 고백의 편지, 일기, , 추억 등 다양한 서술 방식으로 개성 있는 네 인물 각자의 고뇌와 현실과 선택을 그린다. 특히 자립적인 삶을 선택하는 강인한 여성 주인공의 독백이 다자이의 새로운 면모와 더불어 페미니즘적인 위상을 드러내어 일본 문학사에도 의미가 깊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네 사람은 모두 다자이 오사무의 분신으로 전후에 농지개혁으로 몰락한 자신의 가정 배경이 작품 저변에 흐른다. 사양은 그의 작품 중 가장 아름답고 화려하며 작가의 유토피아 지향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패전 후의 허무적인 몰락의식과 결부되어 몰락한 귀족을 뜻하는 사양족이라는 유행어를 낳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가즈코는 몰락한 가난한 귀족으로 남편과 헤어지고 아이를 사산으로 잃은 스물아홉 살의 여자다. 그녀는 이혼 후 기품있고 아름다운 친정어머니에게 돌아간다. 어머니는 무엇을 해도 아름다운 사람이다. 아무리 천박한 행동을 해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 최후의 귀부인이라고 불릴 만한 사람이다. 남동생 나오지는 마약 중독자로 전쟁터에 나갔다가 전쟁이 끝났는데도 소식을 알 수 없는 상태이다.

  가즈코는 뱀을 보고 나서 불안하다. 아버지가 임종하신 날도 연못가의 나무 전체에 뱀이 가득했는데 어머니가 병을 앓고 있는 때에 다시 뱀을 보게 된 것이다. 뱀을 다시 보게 된 것도 자신이 뱀 알을 살무사의 알로 잘못 알고 태웠기 때문에 어미 뱀이 나타난 것이었다. 그리고 새로 이사한 집에서 장작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불이 나는 사고가 발생한다. 이 모두가 어머니를 불안하게 만든다. 가즈코는 자신이 어머니를 죽음으로 내모는 장본인이 되는 것 같아 안절부절 못한다.

  패전 후 전쟁에 징집되었던 갑작스러운 나오지의 귀환은 그나마 조용하던 모녀의 생활을 흐트러뜨린다. 나오지의 반항과 방황으로 집안은 바람 잘 날이 없어진 것이다. 사실 가즈코가 이혼을 하게 된 데는 나오지의 마약 중독도 한 몫을 했다. 약값을 대느라 거짓말을 하고 돈을 마련하기 바빴다. 그때 가즈코는 나오지가 스승으로 삼고 있는 소설가 우에하라를 알게 된다. 만날 당시에는 몰랐지만 우에하라는 나중에 그녀에게 없어서는 안 될 맹목적인 사랑의 대상이 된다.

  카즈코의 남동생 나오지는 심약한 성격이었지만 전쟁에 나갔다 돌아온 뒤 무뢰한과 같은 생활을 하다가 마약중독에다 살 기반이 없는 인생을 비관하여 자살하고 만다.

  어머니는 결국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고 점차 삶의 의욕을 잃어가던 가즈코는 우에하라를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가즈코가 그를 만난 것은 6년 전으로 그것도 딱 한 번이다. 그런 그에게 사랑을 토로한 편지를 보내기를 세 차례, 답장이라곤 전혀 없었다. 가즈코는 그를 만나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혼자 남은 카즈코는 슬픔 속에서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살아간다라고 하며 동생의 문학 선생이었던 우에하라를 찾아가 성관계를 맺는다.

  우에하라의 아이를 가진 카즈코는 퇴폐주의와 술에 빠진 그를 떠나 아이와 함께 새로운 삶을 찾으러 떠난다.  

 

 

 

  20세기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삶은 한 편의 영화보다 더 흥미롭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지만 바쁜 아버지와 병약한 어머니 대신 이모와 유모의 손에 길러진 어린 시절, 명문대학교에 입학하지만 졸업하지 못하고 중퇴, 술과 마약과 연애로 보낸 청춘, 소설가로 성공해 천재 작가이자 일본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었던 사람……. 그의 죽음은 더욱 극적이다. 20세 때 처음으로 자살을 시도한 그는 일생 네 번의 자살 미수를 거쳐 마지막 다섯 번째 자살 시도의 성공으로 세상을 떠났다. 1948613, 불륜 관계였던 여자와 함께 강물에 몸을 던진 것이었다. 며칠 뒤 서로의 몸이 묶인 두 사람이 발견되었다. 619, 이날은 다자이 오사무의 마흔 번째 생일이었다. 다자이는 생전 기성 문학 전반에 비판적이었던 무뢰파의 선두주자로 활동하였다. 반권위ㆍ반도덕을 내세우며 세상의 일반적 생각이나 생활 방식에 반대하는 무뢰파의 모습은 전후 허무주의가 팽배하던 분위기 속에 많은 이들의 지지를 얻었다.

  이 작품의 집필 동기는 몰락하는 귀족 모녀의 생활과 그 심정을 묘사하는 한편, 전환기에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예술가의 심정을 나타내려는 데 있다. 즉 귀족적인 생애를 죽음에 의해 청산한 어머니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딸은 이미 어머니와 같이 귀족적인 아름다움을 지킬 만한 심적 안주처도 얻지 못하고 전부터 따르고 있던 예술가에 의해 구원을 받고자 그의 아이를 낳으려 한다. 이 같은 딸의 비원은 이루어지지만, 그 소설가는 그런 일로 구원되지는 못하며, 또 그 여자 자신도 실제로 그 아름다움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 결국은 모두 다 멸망해 간다.

 

 

  『사양은 다자이 오사무의 서른아홉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 1년 전에 쓴 작품이다. <인간 실격>에서 보여 주었던 자기 파멸과는 다른, 인간 영혼에 대한 다채로운 시선을 엿볼 수 있다.

  귀족 출신이라는 우월감과 자괴감을 동시에 품고 있는 나오지와 사랑 없는 결혼의 실패 후 독립적이고 강인한 여성으로 탈바꿈하는 가즈코의 모습은 더욱 풍부하고 깊어진 그의 세계관을 담아낸다. 작자는 이 같은 멸망해 가는 것들의 모습 속에 깊이 간직된 아름다움에 열렬한 희구하는 심정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멸망해 가는 모습에 관한 애수를 그리려 한 듯하다.

  이 작품은 다음 해에 작자의 자살 때문에 한층 세평이 높아졌으며, 또 실재한 모델과 작자와의 관계로 인해 더욱 평판이 높았다. 이 소설은 최고 수준의 탐미주의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았는데 뛰어난 시정과 빈틈없는 묘사력에 의해 전후 일본 문학의 대표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