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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모리 오가이(森鷗外) 장편소설 『기러기(雁)』

by 언덕에서 2018. 6. 26.

 

  

 

모리 오가이(森鷗外) 장편소설 기러기()

 

 

 

일본 소설가 모리 오가이(森鷗外: 18621922)의 장편소설로 191109월부터 19135월호까지 [스바루]()에 연재되었으며, 19155월 가필하여 [모미야마서점]에서 단행본으로 간행하였다.

  벼락부자가 된 고리대금업자의 아름다운 첩인 오타마는 기르고 있던 새와 함께 산책하러 나갔다가 뱀의 공격을 받는 새를 구해주는 의과대학생 오카다를 만난다. 산책에서 가끔 만나는 오카다를 사모하게 된 여인 오타마는 남편이 집을 비운 어느 날, 오카다를 집으로 초대하려 했지만, 그날 오카다는 마침 친구를 데리고 나타나서 결국 말을 건네지 못했다. 그것이 마지막으로 오카다와는 인연이 끊어진다. 그날 밤 오카다가 우연히 던진 돌에 연못의 기러기가 맞아 죽는데 오타마는 오카다를 보면서 자아에 눈을 뜨게 된다는 내용의 장편소설이다.

  모리 오가이는 1862년에 출생하였고, 1881년 도쿄대학교 의학부를 최연소로 졸업하고 육군군의관으로 임관했다. 1884년 육군 위생 제도 조사와 군대 위생학 연구를 위해 독일에서 유학하고 1888년 귀국, 군의관으로 일하면서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1890년 발표한 <무희(舞姬)>를 비롯하여 <파발꾼> <반나절> <발매금지> 등을 꾸준히 썼으며 <아베 일족> 등의 역사소설도 발표했다. 군인, 의사로서 역할도 잘 이행하면서 일본 문학의 거봉으로 독보적인 위상을 갖고 있다. 

 

영화 [기러기], 1953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오카다는 도쿄대학교 의대생으로 건장하고 모범적인 학생이다. 같은 하숙집에 기거하던 나는 그와 별말을 나눈 적이 없다. 그는 자주 대학 교정을 지나 제법 먼 거리를 산책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의 산책 행로는 정해져 있다. 아카몽, 신사거리, 안경교를 건너 야나기하라 천변을 타고 오나미치로 돌아서 골목길을 이리저리 둘러서 가는데 헌책방에도 이따금 들른다. 내가 오카다와 친해진 계기도 산책길에 있는 헌책방에서 서로 같은 외국소설을 사려고 하다가 대화를 트면서부터였다. 산책길에는 꼭 무에자카를 지나는데 남쪽에는 이와사키의 저택이 있고 북쪽에는 여자들을 모아 놓고 바느질을 가르치는 곳이 있다. 이곳을 지날 때 오카다는 목욕탕을 다녀오던 한 여인과 얼굴을 마주치게 된다. 그녀는 시끌시끌한 소녀들의 웃음 터져 나오는 바느질 집 옆에 위치한 적막한 집으로 들어가려던 중이다.

  그집에 사는 이 여인은 사채업자 스에조의 첩 오다마이다. 스에조는 아내 몰래 첩으로 삼은 오다마를 위해 이 집을 구했고 그녀를 데려다 살게 한다. 심성이 착한 오다마는 불쌍한 아버지를 위해 첩이 되기로 작정했다. 그녀는, 돈만 아는 스에조라도 아버지를 자신이 사는 집 옆에 거처를 마련해서 편히 모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녀는 첩이 되기 전에 순사에게 결혼 아닌 결혼으로 속았던 전력이 있었다는 점도 그녀의 선택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한 면이 있다. 오다마는 스에조가 집에 올 때를 제외하고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곤 한다. 어느 날 산책하던 오카다는 창문을 통해 자신을 지켜보던 그녀를 자주 의식하게 되었고 가벼운 인사 정도는 하게 되었으나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다마가 외로움을 달래려고 기르던 새의 집에 어느 날 구렁이가 침범하게 된다. 마침 지나던 오카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처마에 달려 있던 새장에 손을 뻗쳐 뱀을 죽이고 두 마리 중 한 마리를 겨우 살려 낸다. 이 사건으로 오다마는 가슴 속 깊이 숨어 있던 오카다에 대한 연정을 느낀다. 고마운 마음은 교묘히 숨어 있던 욕망을 불러내고, 그를 향한 기다림과 대화에의 열망으로 가득 차게 하지만 천성적인 수줍음이 답례를 하지 못하게 막는다. 눈치를 챈 오카다로서도 그녀에 관한 관심과 그녀를 이해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는 학수고대하던 독일유학 장학생에 선발되고 나서는 떠나야 한다는 마음에 착잡하다.

  유학을 떠나기 전 나와 오카다, 다른 친구 이시하라와 함께 기러기가 날아드는 갈대 연못을 산책한다. 이시하라는 그에게 돌로 기러기를 맞춰 잡자고 부추긴다. 동정심 많은 오카다는 주저하다가 성화에 못 이겨 돌멩이를 일부러 빗나가게 던졌으나 그만 기러기 한 마리의 머리에 정통으로 맞히고 만다. 셋은 기러기를 옷에 감추어 경찰서 앞을 지나쳐서 이시하라의 집으로 가서 기러기를 안주 삼아 이별의 술을 마신다.

  내가 하숙집에 와서 취기 때문에 다음날 늦게서야 겨우 눈을 뜨니 오카다는 떠나 버리고 없었다. 오카다는 그를 기다리고 있을 오다마와도 영원히 이별했다. 날아갈 계절을 기다리던 기러기나 행여나 오실까 마중 나와 기다리던 오다마나 둘 다 선량한 기러기였다. 그는 두 기러기의 머리에 돌멩이를 던진 것이다. 그는 선량하고 인정 많던 오카다였지만 오히려 그를 사모하던 기러기와 같은 오다마를 안주 삼아 삼켰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는 왜 여린 여인의 가슴에 불을 질러 놓고서 떠나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영화 [기러기], 1953

  『기러기』는 오가이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러브 스토리가 가진 장점 중 하나겠지만 한번 읽기 시작하면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흡인력을 지닌 한편, 작품 곳곳에서 드러나는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은 작품에 무게까지 더해준다. 모든 등장인물에 대한 인간적인 애정이 해학적인 필치로 드러나 은근한 미소를 짓게 하며, 특히 여주인공 오다마의 성적 심리 묘사는 가히 자극적일 만큼 놀랍다.

 이 작품은 메이지 13년 당시 도쿄 우에노 주변의 이야기이다. 여주인공 오타마의 자아 각성이 간단하게 닫히고 말았음을 표현한 작품으로 아름다운 정서가 풍부한 애수가 넘치는 작품이다. 오카다의 돌에 맞아 죽은 연못의 기러기는 오카다를 상징한다. 인생의 덧없음을, 별생각 없이 집어던진 돌에 맞아 죽은 기러기의 무상으로 상징하였다그러한 운명의 기로를 만든 것이 기호인 음식물이었다는 설정도 사소한 일이 중대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일례로서 이 작품을 성공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오카다가 자신이 장난삼아 던진 돌에 맞아 죽은 기러기를 향해, “불행한 기러기도 다 있구나”라고 혼잣말 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는 바로 오타마의 불행한 운명과 정확하게 겹쳐진다.
 이 밖에도 스에조(末造)의 부인 오쓰네(お常)의 첩 오타마에 대한 질투가 매우 기발하게 묘사되고 있다. 무엇보다 세상 물정을 모르고 순진하기만 했던 오타마가 점차 첩의 근성을 가진 속물적 여자로 변해가다 오카다를 만나면서 다시 순정을 간직한 여성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이 특이하다. 모리 오가이 특유의 섬세한 관찰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것이 중평이다. 또한 작품 전체에 흐르는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는 청일전쟁(1894), 러일전쟁(1904)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던 당시 사회 분위기와는 동떨어진 것이어서 읽을 때 역사적인 고찰이 필요하다.
 

 가난한 부친의 애정 속에 자라난 오타마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고리대금업자의 첩이 되었다. 거기에 불만을 품어 대학생인 오카다를 사모하였으나, 그가 갑자기 독일로 떠났기 때문에 그 연정을 고백할 길도 없이 끝난다는 줄거리의 이 소설은 주인공들의 신분 차이와 오타마의 그 후의 운명 등도 포함하여 극히 비통한 여러 문제를 기지적인 해석으로 처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일본 문학의 신이지주의(新理智主義)에 계승되게 되었다. 그 당시의 풍속이나 심리ㆍ성격 등이 묘사는 치밀하기 이를 데 없다는 게 대다수 문학평론가의 설명이다.

  『기러기』는 1953년 일본에서 영화로 만들어졌고 이후 텔레비전 드라마로도 여러 번 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