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 장편소설 『명암(明暗)』
일본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1867∼1916)의 장편소설로 1916년 5월 26일부터 12월 14일까지 총 188회에 걸쳐 <아사이신문>에 연재된 작품이다.『명암(明暗)』은 일본의 국민작가로 추앙되 나쓰메 소세키 최후의 장편소설이며 600쪽에 달하는 대작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집필하다가 위궤양으로 세상을 떠났기에 미완의 소설이기도 하다. 일본 문학계에서는 이 소설을 소세키 문학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한다. 작가 나스메 소세키의 도달점이며 그가 마지막에 이르러 획득한 주제와 창작 기법, 사상 등이 이 한 편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장편소설『명암』속의 남편 쓰다와 아내 오노부는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오늘날의 우리를 연상시킨다. 두 사람은 주위 사람들과 상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매번 실패하여 좌절을 겪는다. 작중 쓰다와 오노부는 100년 전 인간이 아니라‘지금 여기’에 사는 우리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가족, 친척, 상사나 동료, 부하직원, 친구 사이에 겪는 불통을 쓰다와 오노부를 통해 보여주고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의 시간 설정은 매우 짧다. 주인공인 쓰다가 치질 수술을 위해 입원 준비를 하고 퇴원할 때까지인 2주 정도다. 사건 역시 쓰다의 입원과 그 후의 전지 요양 이외에 이렇다 할 것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능가하는 소세키 최고의 장편 소설로 자리매김한 것은 뛰어난 심리분석이라는 방법으로 이야기를 엮어가는 작가의 역량 때문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쓰다와 오노부는 ‘다이쇼 5년(1916년)의 조류’에 어울리는 신세대 부부다. 무엇보다도 ‘연애’라고 하는 근대적인 길을 걷고 결합한 이 부부는 논리적으로는 당연히 사랑하는 사이다. 그들은 아직껏 연애 시절의 단꿈에 젖은 신혼 6개월이다. 그런데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어딘가 겉도는 데가 있다.
“아무리 ‘이 사람이라면’ 하고 굳게 믿고 결혼한 부부라도 언제까지나 화합한다는 보장은 없어.”
남편으로부터 절대적인 사랑을 바라는 오노부는 괴롭다.
쓰다와 오노부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신혼인데도 불구하고 왠지 거리감이 생기고 있다. 때때로 쓰다는 아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 표정이 못마땅하다. 종종 오노부는 남편이 여성을 이해할 줄 모르는 권위적인 남자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서로에게 이해와 애정을 바란다. 쓰다는 아내뿐만 아니라 자신을 키워준 작은아버지와도 제대로 소통하지 못한다. 오노부는 결혼 전에 함께 살았던 이모네에 쓰다와 좁혀지지 않는 관계를 들키지 않기 위해 조바심을 낸다. 쓰다의 옛 연인 기요코와 친척들, 지인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서로의 마음을 얻으려고 전전긍긍하지만 늘 불통이라 답답해한다. 인정과 이해, 사랑을 갈망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그들은 서로간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다.
쓰다는 비밀이 있다. 그 비밀은 오노부와 만나기 전에 결혼을 약속했으나 갑자기 쓰다를 버리고 쓰다의 친구와 결혼한 기요코의 존재가 그것이다. 오노부는 숨겨진 비밀을 캐내려고 필사적으로 기를 쓰는 반면 쓰다는 그것을 숨기려고 거짓말에 거짓말을 거듭한다. 쓰다는 자신과 오노부를 연결하여 결혼하게 만든 요시카와 부인의 중재로 이미 유부녀가 된 기요코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 소설은 끝난다.
결혼이란 무엇이며 부부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소세키의 문제의식이다. 이 의구심은 여주인공 오노부를 통해 형상화된다. 그야말로 ‘좋다, 나쁘다는 문제를 떠나서 확실한 주체성을 가진 근대적인 여성’, ‘새로운 이상을 가진 새로운 여성’을 소세키는 이 작품에서 강조했다. 작가는 이 작품 『명암』의 여주인공 오노부를 통해 여성을 남성과 대등한 위치로 그렸다. 아울러 여성을 중심인물과 시점 인물로 조명한다. 종래와 달리, 여성에 대한 작가의 인식은 비단 오노부 한 사람에 국한 된 것이 아니다. 시누이 오히데와 요시카와 부인 등 모든 여성 등장인물에 두루 적용된 특징이다.
『명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저마다 힘껏 사랑받기 위해 노력한다.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서로를 잘 모르면서도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 즉 상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들의 욕구는 끝까지 채워지지 않는다. 소세키는 그들의 심리를 치열하게 묘사하고 감정을 세밀하게 좇아나간다. 『명암』은 다른 소세키의 작품들과는 다르게 주인공 한 명의 심리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관점을 드러내어 다면적인 세계를 형성한다. 작품 속에서 마주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기는 오해, 기대의 차이, 그리고 그것이 인간관계에 미치는 영향들이 현대인들의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고독감을 어루만진다.
♣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에서 소위 '국민 작가'로 불리며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그는 도쿄 제국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 문부성이 임명한 최초의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2년간 영국 런던에 머물며 영문학을 연구하였다.
영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소세키는 도쿄 대학에서 영문학을 강의하는 한편 첫 소설 <나는 고양이로다>를 발표하여 문단의 호평을 받았다. 거의 불혹에 가까운 나이로 소설 창작을 시작했지만, 소설가이기 전에 그는 이미 뛰어난 하이쿠(俳句) 시인이었고 영문학자였다. 다망한 교직 생활과 소설 창작을 동시에 병행해야 하는 데에 고충을 느끼던 소세키는 [아사히 신문사]의 전속 작가 초빙을 받아들여 교수직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전개해나갔다. 이후 그의 소설들은 대부분 [아사히신문]에 연재되었다.
그는 초기의 경쾌하고 유머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들에서 출발하여 점차 인간의 심층 심리를 예리하게 관찰하고 그 움직임을 묘사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였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구메 마사오 등의 일본 작가들에게 그는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16년 소설 『명암』을 연재하던 중 위궤양 악화로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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