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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헤르만 헤세 장편소설 『싯다르타(Siddhartha)』

by 언덕에서 2017. 8. 23.

 

 

헤르만 헤세 장편소설 싯다르타(Siddhartha)

 

 

 

 

 

독일의 세계적인 문호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 1922년에 발표된 장편 소설이다. 인도의 성자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인도의 시(詩)’라는 부제가 붙었는데, 헤르만 헤세가 초기의 몽상적 경향을 탈피하고 소설의 무대를 동양으로 옮겨 내면의 길을 탐색한 작품이다.

 헤세는 인간 내면의 변화를 통해 자아실현을 추구했던 작가로 서구 작가들 가운데 유난히 동양사상에 애착을 보였다. 그가 무명작가 시절에 출간된 ‘싯다르타’는 인도를 배경으로 한 유럽의 소설 중에서 가장 고전적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헤세는 기독교 집안 출신이지만 불교에 심취했다. 기독교 선교사로 인도에 파견된 부모 때문에 유년 시절부터 인도 문화와 동양사상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었다. 헤세가 작가로 활동한 때는 불행한 시대로 1, 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 전체가 정신적인 빈곤으로 몸살을 앓던 시기였다. 그는 ‘세계대전으로 유럽 문화가 붕괴됐다’고 비판했다.

 전쟁의 와중에 출간된 소설은 호평을 받았다. 지금까지 유럽에서 1000만권 이상 팔린 것으로 알려져 있고, 전쟁의 트라우마로 고통받던 유럽 지식인들을 위로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헤세는 소설 말미에 “전쟁의 유일한 효용은 바로 사랑은 증오보다, 이해는 분노보다, 평화는 전쟁보다 훨씬 더 고귀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것뿐이다”고 썼다.

 특히 미국에서는 "데미안 지하 술집" "싯다르타 주점" "마술 극장 집" "황야의 이리 집" 등 헤세 작품의 이름을 빌린 대학생 술집이나 카페가 무수히 생겨났고, "히피들의 성자(聖者) 헤르만 헤세" 운동이 전개되기도 했다. 오늘의 문예사가들 사이에서도 그는 "현시대의 영향력이 가장 큰 작가" 혹은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정신적 사부(師父)"로 일컬어지고 있다. 헤세는 1946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인도 카스트 4가지 신분 중에서 가장 높은 위치인 승려 계급인 브라만의 아들로 태어난 싯다르타는 최상의 환경에서 교육을 받고 자랐다. 아버지는 영특하고 지식욕에 불타는 아들을 볼 때마다 기쁨에 넘쳤고, 아들이 위대한 현인이자 사제로, 그리고 모든 브라만의 우두머리로 자라날 것이라 생각했다. 싯다르타는 장차 브라만의 왕으로 추대될 촉망받는 청년이었으나, 깨달음을 얻고자 친구 고빈다(Govinda)와 함께 고행길을 떠난다. 이 수련기의 싯다르타는 브라만의 아들로서 정신세계에 살고 있다.

 그는 자아의 근본인 아트만(Atman)과 우주의 본질인 브라만(Brahman)과의 일치를 추구한다. 함께 고행하던 고빈다는 열반에 도달한 고타마(Gautama)의 설법을 듣고 불가에 귀의한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사변적인 가르침으로는 해탈할 수 없음을 깨닫고 좌절하게 된다. 그 결과, 정신세계에 머물면서 잊고 있던 또 다른 자아, 즉 감각본능의 세계에 있는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

 싯다르타는 애욕의 세계를 대변하는 여인 카말라(Kamala)를 알게 되고, 상인 카마스바미(Kamaswami) 밑에서 상인으로 살아간다. 사랑의 환희와 막대한 부를 누리지만 궁극적인 진리는 결코 현세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또다시 생의 허무를 느낀다. 절망하여 강물에 몸을 던지려는 순간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브라만의 성스러운 음인 옴(Om)을 다시 듣게 된다. 그의 앞에 자아의 구제를 의미하는 수천 개의 눈을 가진 보디삿타바(Bodhisattava)가 강물 깊은 곳으로부터 모습을 드러낸다.

 그 후 고뇌의 세계에서 벗어나 뱃사공 바스데바(Vasudeva)와 함께 지내면서 상반된 대립 속에서 자아 탈피의 과정을 겪는다. 뱃사공이 된 어느 날 자기의 정부였던 카말라를 만난다. 카말라는 싯다르타와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과 함께 석가의 임종을 보러 가다가 뱀에 물려 죽는다. 싯다르타는 카말라의 임종을 통해 새로운 측면에서 죽음을 이해하게 된다. 죽음은 감각본능 세계로부터의 단절이 아니라, 생사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과정, 즉 윤회의 일면임을 알게 된다.

 카말라의 죽음을 체험하면서 그는 삶과 죽음의 두 세계에 놓여 있는 시간을 넘어서서 ‘동시 동등의 인정’에 도달하게 된다. 마침내 그의 내면에서 상반된 두 세계의 대립은 지양되고, 궁극적인 진리를 터득함으로써 오랜 욕망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헤르만 헤세가 파악한 싯다르타는 산스크리트로 '목적을 달성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이름으로서, 원래는 석가 세존의 어릴 때의 이름이다. 물론 이 소설 속의 싯다르타는 석가모니가 아니다. 헤르만 헤세는 싯다르타라는 가공의 인물이 내면의 자아를 완성해가는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노장사상(老莊思想)을 언급하는 등 동양의 초월주의를 강조하며 동서양의 세계가 조화된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작가는 주인공이 흐르는 강물에서 삶의 소리, 존재자의 소리, 영원한 생성의 소리'를 듣고, 그 강물을 통해서 단일성의 사상과 영원한 현재라는 시간의 초월, 즉 무상성의 극복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생의 진리를 깨닫게 했다. ‘강’은 이 작품에서 실질적인 주인공으로서, 일체의 모순이나 대립을 융화시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모체로 상징화되었다.  

 

 

 힌두교와 불교의 교리에 바탕을 둔 소설 『싯다르타』는 정형화된 종교의 교의와 영혼의 내적 고취 사이의 갈등을 노련하게 탐구한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싯다르타에게도, 독자들에게도 근원적인 진리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자아 성장에는 한 가지 길만 있는 것이 아니며, 인생을 사는 데에도 하나의 방식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헤세는 철학이나 종교, 그 밖의 모든 신념에 맹목적으로 의지하여 의미 있는 자아를 성취하고자 하는 고정관념에 도전하였다. 우리는 순간의 현실을 새롭고, 살아있고, 언제나 바뀌는 그 무엇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헤세는 강의 강력한 상징을 통해 이러한 약동과 끊임없는 변화를 보여준다.

 헤세의 또 다른 소설 ‘데미안’에서 싱클레어는 결국 완전한 자아를 완성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일인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는 결국 소설 ‘싯타르타’를 통해 이미 완성된 자아를 가진 주인공이 또 다시 모험을 떠나는 과정을 그려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가장 위대한 매력은 마치 싯다르타가 말년을 보낸 ‘강’의 반짝이는 강물처럼 심오한 메시지를 담은 문장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는 점이다.

 

 

- 월간 소식지 '맑고향기롭게' 2017년 1월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