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건 장편소설 『흑치상지(黑齒常之)』
현진건(玄鎭健. 1900∼1943)이 지은 역사소설로 1939년 10월 25일부터 1940년 1월16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하던 중 52회 만에 강제로 중단되었다. <웃는 포사(褒似)>, <선화공주>와 더불어 작가의 대표적인 미완성 역사소설이다.
『흑치상지』는 일제의 식민 지배가 공고해짐에 따라 소설 소재를 과거 역사적 사실로 선택했던 결과물로, 1930년대 역사소설이다. 따라서 1920년대에 단편소설을 위주로 하여 식민지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데 관심을 두었던 현진건의 창작 경향에서 벗어나 있다. 이 작품은 동시대의 역사소설은 물론, 작가의 전작 <무영탑>(1939)과 비교해 보아도 ‘민족의 저항’이라는 주제의식이 매우 두드러진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백제 의자왕이 나당 연합군에게 항복하자, 장군인 흑치상지는 잠시 피신하였다가 때를 보아 당나라 군사를 치기로 한다. 그는 자신의 군사를 이끌고 산속 요새로 가다가, 당나라 군대에게 끌려가는 한 무리의 백제 유민을 구해 준다. 백성들은 모두 그를 따르겠다고 의견을 모은다. 그중 아름답고 기품 있는 한 젊은 여인이 자기는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한다. 그 여자의 이름은 창화로, 좌평 벼슬을 한 임자라는 고관의 아내다. 그녀는 끌려가는 도중 당나라 장수에게 교태를 부려 백성들의 미움을 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라를 팔아먹은 남편을 꾸짖는 등 범상치 않은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창화는 군사를 모으는 흑치상지에게 작별을 고하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흑치상지는 그 길로 임존성에 주둔하여 군대를 정비한다. 소문을 들은 백성들이 모여들어 그의 군대는 점점 강해진다. 어느 날, 정체 모를 청년이 흑치상지를 찾아와 허리띠에 적힌 창화의 편지를 전해 준다. 그녀는 항복한 것으로 가장하고 당나라 진영에 들어가서 그들의 내부 사정을 염탐하여 흑치상지에게 알려준 것이다.
흑치상지의 군대는 창화의 정보 덕에 당나라 군대와 싸워 크게 이긴다. 승전한 날 밤, 창화가 흑치상지를 찾아와 자신의 내력을 이야기한다. 본래 양민의 딸이었던 그녀는 수진이라는 청년과 사랑하는 사이였다. 방탕한 재상 임자의 눈에 띄어 첩으로 끌려간 것이었다. 그녀는 그 후로 남자를 짐승처럼 여기며 살아왔지만, 흑치상지를 만난 후 그런 생각을 버렸노라 고백한다.
소설은 첫 장 제목부터 나라 잃은 백성의 참담함을 “죽음보다 슬프다”라고 강조했다. “백제의 백성들이 뭉게뭉게 몰려나왔다. … 다 꼬부라진 늙은 한 할머니도 낑낑하며 … 원한과 분노에 차고 맺힌 돌팔매! 당병의 꼭뒤에 비 오듯 쏟아졌다.”(본문 4쪽에서)
이러한 내용의 소설을 일제가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다. 얼마 못 가 조선총독부 경무국이 연재를 강제로 중단시켰다. 그러나 소설은 조선인들의 모습을 백제 유민의 현실과 투쟁에 투영하며 저항의식을 고취했다.
이 소설은 민족의 붕괴와 재건 노력을 통하여 식민지 현실에 저항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드러난 작품이다. 이때 작가가 선택한 백제사는 식민지 현실에서 훼손된 민족 정체성의 회복 가능성을 보존하는 시공간이다. 여기서 흑치상지는 외세의 침략으로 위기에 빠진 민족을 구원하는 공동체의 중심이다. 또한 민중들의 국권 회복 의지를 대변하는 영웅으로 묘사된다. 창화 부인이 흑치상지의 인품에 반하여 요부의 이미지에서 자발적으로 벗어나게 되는 과정은 코믹하지만 흑치상지가 지닌 민족 구원의 영웅상을 드러내는 장치이다.
인터넷을 통해 동아일보 자료를 찾아보니, 연재 지면에 ‘역사소설(歷史小說) 흑치상지(黑齒常之) 현진건(玄鎭健) 작(作)’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백제 유민을 이끌었던 장군 흑치상지를 주인공으로 한 역사소설로 《동아일보》에 연재되었으나, 중단된 채 미완으로 남았다. 멸망한 나라 백제의 유장(遺將)이 의병을 일으켜 당나라 장수 소정방과 싸우는 역사물은 백제의 멸망과 유민들의 항쟁을 통해, 식민지 조선의 상황과 거족적 항일투쟁을 암시적으로 표현한 민족의식이 담긴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진건의 유작인 이 소설 『흑치상지(黑齒常之)』는 1940년 동아일보에 연재를 시작했으나 일제에 대한 노골적인 반항 의도 때문에 52회로 강제 중단되었다. 이 육고는 사돈인 월탄 박종화가 소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
1929년 10월 도굴꾼들이 허난성 낙양 북망산에 소재한 묘광을 파헤쳤는데, 거기서 백제 장군이었다가 당나라에 귀화한 흑치상지의 묘지석이 발견됐다. KBS 1TV 다큐먼터리 '그날'에도 소개된 바 있다. 비석에는 백제의 잃어버린 고대사를 밝혀주는 중요한 사료인 문구가 있었다. 중국학자들이 묘지석을 해석한 결과 흑치씨(黑齒氏)는 그 선조가 부여씨인데 흑치(黑齒)에 봉해졌으므로 자손이 그것을 성씨로 삼았다고 했다. 검은 치아라는 의미의 흑치(黑齒)는 피부가 검었기에 나온 성씨로 봐야 한다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견해다. 일설에는 흑치는 동남아시아 지역의 군도를 가리키는 지명으로 최근 중국학자들은 흑치가 필리핀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해상 제국 백제가 필리핀에 있는 누군가를 부여씨의 왕족만큼 중요한 존재로 여기고 흑치에 봉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백제 전성시대에 흑치(필리핀)가 백제 해상실크로드의 한 거점이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사실주의 작가이자 애국자인 현진건은 이 사실을 알았는지 궁금하다.
- 흑치상지(黑齒常之, 630년 ~ 689년)는 백제의 의자왕 때 달솔을 지낸 백제 · 당나라의 무장이다. 660년부터 663년까지 3년간 백제 부흥운동을 이끌었으나 부흥운동의 실패가 확실해지자 당나라에 항복하고 투항했다. [본문으로]
'한국 현대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문열 단편 소설 『사로잡힌 악령(惡靈)』 (0) | 2018.02.09 |
---|---|
이문열 단편소설 『금시조(金翅鳥)』 (0) | 2018.01.06 |
김훈 장편 소설 『남한산성』 (0) | 2017.10.17 |
김유정 단편소설 『동백꽃』 (0) | 2017.07.26 |
강경애 단편소설 『원고료 이백 원』 (0) | 2017.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