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단편소설 『금시조(金翅鳥)』
이문열(李文烈.1948~)의 단편소설로 제15회 [동인문학상] 수상 작품이다. [현대문학] 1981년 12월호에 발표되었다. 이황의 학통을 이어받은 영남 명유의 후예 석담과 그의 제자 고죽 사이의 애증과 갈등을 통해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다룬 작품이다.
이 소설은 이문열이 쓴 '예술가 소설' 계열에 속하는 작품 중에 대표작에 속한다. 이문열은 그의 초기 소설을 통하여 그의 예술 혹은 문학관을 피력하고 있다. 이 소설은 서예에 천부적 소질을 타고난 고죽과 그의 스승 석담이 서로 다른 예술관 때문에 겪어야 하는 갈등을 그리고 있다. 스승 석담은 글씨는 도와 마음을 닦은 후에야 최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제자 고죽은 생계조차 제대로 꾸려나가지 못하면서 도를 강조하는 스승의 초라한 모습에 반발한다. 제자는 두 번이나 스승을 떠나고, 스승은 운명의 순간 제자의 재능과 실력을 인정함으로써 둘은 화해한다.
작가는 평행선처럼 결코 다가갈 수 없는 두 사람의 예술관 가운데 어느 한편에 기울어져 있다. 제자 고죽은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서 스승의 가르침이 어떤 것인가 깨닫게 된다. 그는 죽음에 이르러 자기의 모든 작품을 불사를 때 솟아 오르는 한마리 거대한 금시조를 보게 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죽음을 앞둔 서예가 고죽은 유년의 회상에 잠긴다. 5, 6세 되던 해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개가하자 숙부의 집에서 자랐다. 열 살 되던 해 숙부는 상하이로 망명을 떠나면서 석담 선생의 집에 그를 맡긴다. 고죽은 열세 살에 소학교에 들어가 졸업을 하지만 석담은 그를 문하로 거두지 않는다. 그는 2년 동안 스승의 집안 살림을 꾸려나가며 스승 몰래 글씨를 쓰다가 들킨다. 스승은 한사코 제자 삼기를 두려워하고 꺼려한다. 가까스로 사제관계를 맺지만 둘 사이에는 숙명적인 거리가 있다. 고죽은 스승에 대한 애증의 갈등 속에서 스물일곱 살 때 스승의 집을 나온다. 약간의 성취감에 들떠 되돌아온 그에게 스승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그리고 2년 뒤 겨우 용서받고 다시 제자로 받아들여지나 둘은 예도에 관한 논쟁을 하게 된다.
"도대체 종이에 먹물을 적시는 일에 도가 있은들 무엇이며, 현묘함이 있은들 그게 얼마나 대단하겠읍니까? 도로 이름하면 백정이나 도둑에게도 도가 있고, 뜻을 어렵게 꾸미면 장인이나 야공(冶工)의 일에도 현묘함이 있읍니다. 천고에 드리우는 이름이 있다 하나 이 나(我)가 없는데 문자로 된 나의 껍데기가 낯모르는 후인들 사이를 떠돈들 무슨 소용이 있겠으며, 서화가 남겨진다 하나 단단한 비석도 비바람에 깎이는데 하물며 종이와 먹이겠읍니까? 거기다가 그것을 살아 그들의 몸을 편안하게 해주지도 못했고 헐벗고 굶주리는 이웃을 도울 수도 없었읍니다. 그들은 그 허망함과 쓰라림을 감추기 위해 이를 수도 없고 증명할 수도 없는 어떤 경지를 설정하여 자기를 위로하고 이웃과 뒷사람을 흘렸던 것입니다……"
그때였다. 고죽은 불의의 통증으로 이마를 감싸안으며 엎드렸다. 노한 석담선생이 앞에 놓인 벼루 뚜껑을 집어던진 것이다. 샘솟듯 솟는 피를 훔치고 있는 고죽의 귀에 늙은 스승의 광기어린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내 일찌기 네놈의 천골을 알아보았더니라. 가거라. 너는 진작부터 저자거리에 나앉어야 할 놈이었다. 용케 천골을 숨기고 오늘날에 이르렀으니 이제 나가면 글씨 한 자에 쌀됫박은 후히 받을 게다……"
결국 그 자리가 그들의 마지막 자리였다. 그길로 석담선생의 집을 나선 고죽이 다시 돌아온 것은 이미 스승의 시신이 입관된 뒤였다.
고죽은 보편적 원리로서의 도는 실존하는 것이 아니며 예술은 예술 그 자체로서 만족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긴다. 방랑 생활을 하며 친일 지주의 집에서 기숙하던 고죽은 스승의 친구인 운곡의 질책으로 석담의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이미 스승은 운명한 뒤였다. 평생 자신을 박대했다고 여겼던 고죽은 스승이 자신의 관에 쓸 글씨를 제자인 자신에게 부탁했다는 것을 알고 비통해한다.
석담이 죽은 뒤에도 고죽은 스승의 도학적 예술관을 부정하고 자신의 예술관을 나름대로 발전시키며 예술의 본질을 탐구한다. 그리고 고죽은 마침내 죽음에 임박하여 자신이 평생 창작한 작품을 모두 거두어들이고는 제자에게 불태우게 한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과 스승이 그토록 추구했던 아름다운 금시조를 목격하고 숨을 거둔다.
서구적인 견해로 보면 고죽은 타고난 예술가였다. 그러나 석담 선생의 눈에는 천박하고 잡상스런 예인 기질에 지나지 않았다. 만약 고죽이 개성이 보다 약했거나 그가 태어난 시대가 조금만 일렀다면, 그들 사제간의 불화는 그토록 길고 심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고죽은 자기의 예술이 그 본질과는 다른 어떤 것에 얽매이는 것을 못 견뎌 했고, 점차 시민 사회로 이행해 가는 시대도 그런 그의 편에 서 있었다. 정말로 그들 사제간을 위해 다행한 것은 스승의 깊은 학문에 대한 제자의 본능적인 외경 못지않게, 스승에게도 제자의 타고난 재능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어 늦게나마 화해가 이루어진 일이었다. - 본문 94~95쪽
그러나 석담 선생의 문하로 돌아왔다고 해서 고죽의 정신적인 방황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다시 십 년간의 칩거를 통해 고죽은 스승의 전통적인 예술관과 화해를 시도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추사를 향한 앞뒤 없는 몰입과 어쩔 수 없는 이탈이 바로 그 과정이었다. 그 뒤 다시 이십 년이 지났다. 나름대로는 끊임없이 연마하고 모색해 온 세월이었지만 과연 나는 구하던 것을 얻었던가. 그러다가 고죽은 혼절하듯 잠이 들었다.
금시조는 불경에 나오는 상상의 큰 새로, '가루라'를 말한다. 매와 비슷한 머리에 여의주가 박혀 있고 금빛 날개가 있는 몸은 사람을 닮았고 불을 뿜는 입으로 용을 잡아먹는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 금시조는 세 번 등장한다. 등장하는 순간은 모두 예술의 경지를 의미하지만 그때마다 적절히 그 의미가 변주되고 있다. 첫째는 석담의 삶을 의미하는 것으로 기품과 위세가 당당하며 도로서의 예술, 드높은 정신의 경지가 궁극에 달할 때 맛보는 금시조이다. 둘째는 고죽의 청 · 장년기 삶을 대표하는 것으로 화려하면서도 아름다운 금시조이다. 마지막은 죽음에 직면한 고죽이 자신의 작품들을 모두 불태워 버릴 때 나타난 것으로 자신의 예술관만을 옹호하기보다는 자신의 모든 것을 부정할 때에 이르러서야 발견할 수 있는 금시조이다. 높은 예술적 경지이자 자기 부정의 예술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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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시조』는 제 15회 [동인문학상] 수상작품으로 두 서예가의 삶을 통해 진정한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작품이다. 작품의 주요한 시대적 배경은 일제를 통해 새로운 문물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시작한 구한말이다. 이 때는 근대적인 가치관과 전통적인 가치관이 부딪쳐 혼란을 겪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스승 석담이 주장하는 예술은 전통적이고 동양적인 가치관이다. 고죽은 그 가치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고죽은 생을 마감하기 전, 자신의 모든 작품을 태워 버림으로써 자신만의 금시조를 만난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예술인이 추구하는 예술적 경지를 ‘금시조’라는 상징물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고죽이 자신의 작품을 모조리 불태우고 나서야 환상처럼 나타나는 것이 금시조다. 진정한 예술은 치열한 자기 부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작가의 가치관이 드러나 있다.
일반적으로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찬탄하거나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 또한 예술가는 치열한 자기 부정의 정신을 통해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엄격하고 까다로운 비판을 가해야 한다. 이 작품은 절차탁마 과정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고쳐 나가야만 훌륭한 예술이 탄생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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