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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김유정 단편소설 『동백꽃』

by 언덕에서 2017. 7. 26.

 

 

 

김유정 단편소설 『동백꽃』

 

 

 

 

 

김유정이 1936년 [조광] 5월호에 발표한 작품으로 향토색 짙은 농촌을 배경으로 인생의 봄을 맞이하여 성장해 가는 충동적인 청춘 남녀의 애정을 해학적으로 그리고 있다. 특히, 여러 번의 닭싸움을 통하여 두 사람의 갈등ㆍ화해 관계가 이루어지는 심리적 전개가 소설적 재미를 더해 준다. 특히 마름의 딸과 소작인의 아들이라는 신분적 차이를 웃음으로 처리하는 기법이 두드러진다.

 제목이 암시하는 대로 자연의 원색이 짙은 배경 속에서 펼쳐지는 사랑의 전개 과정을 다룬 작품으로, 갈등의 관계가 해소되면서 화합의 관계로 전환된다. 이 작품은 토속성을 강하게 풍기면서 문학의 순수성, 예술성을 옹호하려는 작가의 심미적 기본자세가 드러난다. 특히, 토속어 및 사투리 등 우리말 구사가 뛰어난 점은 오늘날 문학도에게 교과서가 될 만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열일곱 살 된 나는 동갑내기인 점순이네 소작인의 아들이다. 점순이는 나를 괴롭힐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하는 처녀로, 그녀가 내게 감자를 주면서 모처럼의 호의를 보였을 때 거절한 뒤부터 그녀는 더욱 그런 태도를 취한다. 하루는 점순이가 우리 수탉을 잡아다가 아주 험상궂게 생긴 자기네 수탉과 싸움을 붙여 우리 수탉을 반죽음을 시켜 놓았다. 나는 닭이 고추장을 먹으면 싸움을 잘한다는 것을 생각해 내고 그렇게 하였다. 그러나 허사였다. 아마도 고추장을 너무 많이 먹인 탓인가 보다.

 나무를 해 가지고 산에서 내려오던 어느 날, 산기슭의 바위틈에 노랗게 꽃술을 단 동백꽃1이 피어 있는 사이에 앉아서 호드기2를 불고 있는 점순이를 보았다. 그리고 더욱더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싸움에 져서 빈사 지경에 이른 우리 수탉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지게 작대기로 점순이네 닭을 때려 죽여 버렸다. 그 순간, 우리 집은 땅을 못 부치게 되고 집도 내쫓기게 될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얼결에 엉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점순이는,

 “닭죽은 건 염려 마라. 내 안 이를 테니.”

 그리고 뭣에 떠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푹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너, 말 말아?”

 “그래!”

 조금 있더니 요 아래서

 “점순아! 점순아! 이년이 바느질을 하다 말구 어딜 갔어!”

하고 어딜 갔다 온 듯싶은 그 어머니가 역정이 대단히 났다.

 점순이가 겁을 잔뜩 집어먹고 꽃 밑을 살금살금 기어서 산 아래로 내려간 다음 나는 바위를 끼고 엉금엉금 기어서 산 위로 치빼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가 김유정

 

 이 작품의 사건 발단은 과거의 사건 속에서 발견된다. 절정을 향해 가는 사건의 진행 과정에서 가장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닭싸움인데, 첫 장면에서부터 닭싸움이 나오게 된다. 닭싸움은 ‘나’와 점순이의 갈등의 표면화이면서 애증의 상징물이기도 하므로 순행적 구성으로 보면 전개 부분에 와야 할 사건이지만, 이것이 첫머리에 오고 그 다음에 닭싸움이 생기게 된 원인을 보여주고 있다. 며칠 전 감자 건으로 점순이의 비위를 건드린 것이 발단이 되어 오늘의 닭싸움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소작인의 아들과 마름의 딸은 쉽게 어울릴 수 없다는 소극적인 생각을 가진 ‘나’는 아직 성적으로 미숙하다. 반면에 점순이는 남녀의 애정에 눈을 떠서 나에게 관심을 보인다. 이러한 두 사춘기 남녀의 대비적 성격이 부딪혀 갈등을 자아내고 희극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아들의 갈등은 닭싸움을 매개로 하여 점진적으로 고조되다가 닭의 죽음에 이르러 절정을 맞게 되고, 이것을 계기로 두 사람은 화해하게 된다. 이를테면, 닭싸움은 나와 점순이의 심리적 관계를 드러내는 구성적 장치이다. 닭싸움을 통한 두 남녀의 대립은 자못 긴장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닭의 죽음에서 보여주는 나의 순박함과 점순이의 영악함의 대비, 그에 이어지는 관능적인 행위들에 의해 그 긴장감은 해소되고, 오히려 희극적인 해방감을 느끼게 만든다.

 

  

 김유정은 강원도 춘천 태생으로 일찍 부모를 여의고 고독과 빈곤 속에서 살았다. 한때 금광에 몰두하기도 했으나 조그만 재산을 모두 날리고 지병인 폐결핵은 점점 악화되어 가고 생활은 빈곤하여 성격이 매우 우울하면서도 온 정열을 문학에 쏟은 작가였기에 불과 3년도 못 되는 동안에 30여 편의 주옥같은 단편들을 발표하였다. 다른 그의 작품에도 등장하는 주인공은 모두 어리석고 못난 인물들로 묘사되고 있으며 농촌 사람들이 쓰고 있는 일상 언어의 구수한 맛을 잘 살려서 알맞게 쓰는 작가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무지개와 같이 찬란하게 나타난 그는 30세를 일기로 불과 2년여의 작가 생활을 마치고 무지개와 같이 순식간에 사라져 갔다. 그의 특징은 지극히 치밀한 묘사와 언어의 구사, 넘쳐나는 향토적 서정미, 번쩍이는 유머 감각이라 할 수 있다.

 

 

  1. '강원도에서 쓰이는 생강나무의 방언으로 남해안에서 자라는, 겨울에 피는 붉은 빛깔의 동백꽃은 강원도에서 자라지 않는다. 실제 꽃은 오히려 산수유와 헷갈릴 수가 있는데 산수유는 보통 재배하거나 정원수로 많이 키우므로 산에 있는 것은 99% 생강나무다. 생강나무라고 불리는 이유는 잎에서 생강 냄새가 나기 때문. 차로 달여 마시기도 한다. 동백꽃이 자생하지 않는 강원도 및 북부지역에서 꽃의 색과 모양, 나무 형태 등이 전혀 다른 생강나무를 동백으로 부르는 이유로는 동백기름을 사용하던 시절, 비싸고 귀한 동백기름 대신 대용으로 생강나무 씨앗에서 기름을 추출하고 이를 머릿기름으로 사용하면서 동백기름으로 부른 것에서 기인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의 경우도 생강나무를 동백꽃이라 부른다. 하지만 학계에서도 이런 이유를 고려하지 않아 한 교사가 의문을 제기하기 전까지 제목의 의미를 [본문으로]
  2. 봄철에 물오른 버드나무 가지의 껍질을 고루 비틀어 뽑은 껍질이나 짤막한 밀짚 토막 따위로 만든 피리.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