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의 희곡

차범석 희곡 『새야 새야 파랑새야』

by 언덕에서 2018. 1. 4.

 

 

차범석 희곡 『새야 새야 파랑새야』

 

 

 

 

 

1975년 간행된 차범석의 제3희곡집 <환상 여행>에 수록된 작품으로 동학 혁명을 1970년대의 입장에서 재조명하였다. 이 작품은 1부 4장, 2부 3장, 전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학 농민 운동에 앞장섰던 두 사람이 시대의 격동 앞에서 어떻게 변모되어 가는가를 통하여 민족사의 한 시대를 재조명하고, 인간의 삶의 참된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를 다룬 작품이다. 한때는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둘도 없는 동지였지만, 대의명분과 현실주의라는 두 극단의 논리 때문에 헤어졌다가, 결국은 독립군과 매국노라는 신분으로 변신하여 다시 만난다. 두 사람의 운명적 대결은 곧 우리 민족의 역사적 비극을 대변한다.

 작자는 두 사람의 갈등을 '참'과 '거짓'으로 분명히 구분함으로써, 위기에 처한 조국 앞에서 개인이 취해야 할 바람직한 자세가 무엇인가를 제시한다. 동시에, 더 나아가 모든 인간이 삶에서 겪는 현실적인 불행이 영원한 패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암시하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녹두 장군 전봉준이 동학 혁명의 선봉장이란 죄목으로 체포되어 일본 법정에서 동학의 정당성을 주장하다 사형을 선고받는다. 녹두 장군 전봉준이 최후 진술을 하고 처형되자, 그의 수제자였던 기천석과 오세정은 뿔뿔이 흩어진 교도들을 규합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소극적인 저항을 벌인 북접파와 손을 잡으려는 오세정과 이를 반대하는 기천석 사이에 갈등이 야기되고 마침내 두 사람은 주막에서 헤어진다.

 그 후 전봉준과 고락을 같이하던 기천석과 오세정은 견해와 진로를 달리한다. 기천석은 녹두 장군 휘하에 있던 남접에 계속 남아 동학 운동을 계속하나, 오세정은 북접에 속했다가 친일파가 되어 영화를 누린다.

 그로부터 16년 후, 둘은 재회하는데 그 동안 세상은 많이 변해있었다. 일제의 병탄 후 오세정은 친일 단체인 일진회의 요인이 되어 오참판으로 불리고 있었다. 일진회란 북접파의 일부가 변색해서 조직한 단체였다. 오세정은 한일 합방에 앞장 선 공으로 참의가 되어 거들먹거린다. 어느 날 불구자인 초로의 기천석이 오세정을 찾아와 독립 운동 자금을 요구하지만 거절당한다. 몇 달 후 오세정은 자기의 호화로운 생일 잔칫날 기천석의 아들 기세영의 저격으로 쓰러진다. 기천석은 오세정을 암살하려 했다는 혐의로 아들 대신 법정에 서게 되고, 16년 전 전봉준이 했던 것과 똑같은 말로 최후 진술을 대신한다. 기천석은 일제의 법정에 서서 녹두장군과 마찬가지로 장엄한 죽음을 맞는다. 이 때 아들의 환영이 나타난다.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정의의 승리가 암시되면서 막이 내린다.

 

 

 


 이 작품은 전봉준 사후 그의 추종자였던 '기천석'과 '오세정'의 삶의 태도를 통하여 무엇이 올바른 정신 자세인가를 묻고 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의 주제, 민족주의적인 동학 운동이 외세 일본에 의해 박해받는 점과, 그와는 다른 차원에서의 이승에서의 일시적인 죽음이 영원한 패배는 아니라는 불멸의 사상이 제시되어 있다. 물론 앞의 주제는 뒤의 그것에 종속되기 위해 내세워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달리 말하면, 동학 운동을 통해 민족의식의 발흥이 생사를 초월하는 경지로 승화된다.

 또한 이 작품은 일제의 침탈과 압박 속에서도 의지를 굽히지 않은 민족적 투사 전봉준의 삶과 동학 혁명의 정신적 가치를 드러낸 역사극이다. 기천석을 통해 전봉준의 정신이 계승됨과 동시에 죽음을 뛰어넘는 영원한 정신적 승리를 암시하는 마지막 부분이 이 작품의 핵심이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라는 노래의 상징을 통하여 민족적 수난과 의지를 은유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 작품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으로 꼽히는 동학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895년 3월 28일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진 혁명아 전봉준을 추종하는 수제자 기천석 오세정 두 사람 (물론 허구의 인물이다)을 통하여 개인과 조직의 관계를 추구하면서 우리 겨레가 걸어온 근세사에서 하나의 반성과 교훈을 얻으려는데 그 의도가 있다. 따라서 우리 민족의 생생한 문제였던 외세와 자주성 그리고 미래상을 이 연극 속에 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실험적이거나 전위적일 수는 없어서 사실주의적인 수법으로 연극적인 재미를 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