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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희곡

차범석 대표 희곡 『산불』

by 언덕에서 2017. 11. 1.

 

 

차범석 대표 희곡 『산불

 

 

 

극작가 차범석(車凡錫.1924∼2006)이 쓴 5막 희곡으로 1963년 5월~6월에 [현대문학] 지에 발표되었다. 차범석은 주로 전통적 개성이 뚜렷한 사실주의극을 창작하였고 이념의 갈등과 민족분단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표현하는 작품을 많이 발표한 극작가이다.

 이 작품은 1962년 12월 25일부터 29일까지 이진순의 연출로 국립극단이 국립극장에서 공연하여 성공을 거둔 바 있다. 차범석의 각본은 장종선의 사실주의 무대미술로 꾸며진 공연에는 박상익ㆍ백성희ㆍ나옥주ㆍ진랑 등 중견 연극배우들이 출연하여 매우 밀도 있는 작품이 되었다. 이 희곡 작품은 6ㆍ25전쟁으로 희망이 깨져버린 한 젊은이와 그를 둘러싼 애욕을 표현한 사실주의극이다. 1967년 김수용에 의해 신영균, 주증녀, 도금봉 등이 주연해 최초로 영화화 되었고, 1977년 역시 김수용에 의해 신성일, 전계현, 선우용녀 등이 주연하여 재제작되었으며, 1989년 김기충에 의해 한윤경, 정세일이 주연해 에로성 영화로 또 다시 만들어졌다.

 이념에 의한 동족분단과 전쟁의 비참함, 그리고 파괴와 살상을 본질로 하는 전쟁 속에서 인간의 원형과 존엄성을 묘사해보려는 데 이 작품의 의도가 있다. 따라서 배경도 6ㆍ25전쟁 기간이고 빨치산이 출몰하는 산촌이 무대가 되고 있다. 전쟁 이념극이면서도 토속성 짙은 전형적인 리얼리즘 작품이다. 우리나라 근대극이 그 동안 추구해온 것이 본격 리얼리즘이었다고 볼 때, 『산불』이야말로 상당한 수준에 오른 이정표적인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1977년 작 영화 <산불> 신성일, 선우용녀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소백산맥의 어느 산골 마을에 사는 이장 양 씨와 과부 최 씨는 항상 반목이 심했다. 양 씨의 며느리 점례는 이 마을에서 드문 유식자이며 아름다운 젊은 과부였다. 그리고 최 씨의 딸 사월이도 젊은 과부였다. 어느 날 밤, 공비의 소굴에서 탈출한 전직 교사 규복이 추위와 허기를 못 이겨 점례의 집 부엌으로 숨어든다.

 점례는 어쩔 수 없이 그를 대밭에 숨겨 주고 음식을 날라다 주는데, 차츰 두 사람 사이엔 사랑의 감정이 싹튼다. 그러던 어느 날 사월은 규복과 점례가 밀회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만다. 그리고 사월은 자기도 규복을 돕겠다고 하면서 규복을 통해 자신의 욕정을 채우게 된다. 결국 사월은 임신하게 되고 점례는 사월에게 규복과 함께 이 고장을 떠나라고 권한다.

 얼마 후 공비 토벌 작전이 시작되고 양 씨 소유인 대밭에도 불을 질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양 씨는 조상 대대로 전해진 대밭을 불사르는 데 완강히 반대하고 점례는 규복에 관한 비밀 때문에 국군에게 통사정하지만 결국 대밭에는 불이 놓이게 된다. 그리고 규복은 대밭에서 뛰쳐나오다 국군의 총에 맞아 죽고 사월도 양잿물을 마시고 죽고 만다.

 

1967년 작 영화 <산불> 주증녀, 신영균

 

 

 195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밀주’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차범석은, 1950년대를 사회성이 강한 전통적 사실주의 극에 담아내었다.

  사실주의는 연극이 사회의 거울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연극 관을 뒷받침해 주는 창작 원리이며, 그의 사실주의 극은 1950년대의 현실에 대응하는 정신이자 방법이었다. 그는 등단 이후, 1960년에 이르는 동안에만도 10여 편의 사실주의 극을 창작하였다.

  차범석의 1950년대 작품들은 전쟁을 겪으면서 받은 상처와 전쟁의 파괴력을 전후 사회의 모순을 초래한 근본적인 원인으로 보고 있으며, 인간에게 소외와 좌절을 가져다준 전후 사회의 변화와 그 모순을 비판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 극복의 대안으로 전통적 가치를 제시하고 있다.

 

 ♣

 

 이 작품은 6 · 25 전쟁을 시간적 배경으로 하여, 소백산맥에 위치한 한 과부촌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 마을에 규복이라는 남자가 나타나자 그를 둘러싸고 젊은 과부 간의 갈등이 발생한다. 이것은 원초적인 욕망이라는 인간의 본능적 측면과 관련되는데, 이를 통해 인간의 보편적인 본능 앞에서 이데올로기는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러한 갈등을 둘러싼 현실에는 이념의 대립과 분단이라는 상황이 놓여 있다. 즉, 그들의 원초적 욕망을 억압하고 결국에는 그것을 파국으로 이끌어 가는 것은 이념적 대립에 의한 전쟁의 비극이다. 결국, 이 작품은 전쟁 때문에 과부들끼리 살게 된 마을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여, 이념의 대립에 따른 갈등 제시와 욕정의 대립을 통한 원초적 갈망 제시라는 이중적 사건 구조를 통해 주제를 형상화했다.

 이 작품의 공간적 배경인 마을은 전쟁 때문에 대부분의 남자들이 죽거나 끌려가고 없는 상태이다. 이곳에 한 남자(규복)가 나타나 반목 중이던 양 씨와 최 씨의 갈등을 증폭시키게 된다. 그의 존재는 전쟁 중에 억압된 여성들의 본원적 욕망을 드러내는 구실을 하고 있다. 그리고 공산주의자도 아니면서 우연하게 빨치산이 된 규복이 비참하게 죽게 되는 결말은 전쟁의 잔인함과 이념의 허상을 고발하는 휴머니즘적인 작가 의식을 반영한다. 또한 시도 때도 없이 밥을 달라고만 하는 김 노인, 전쟁 때문에 정신적 충격을 받아 등신이 된 귀덕을 통해 전쟁 속에서 힘들게 먹고 살아야 하는 하층민의 비참한 실상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