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오닐 희곡 『느릅나무 밑의 욕망(Desire Under the Elms)』
미국 극작가 유진 오닐(Eugene O'Neill.1888∼1953)의 희곡으로 1924년에 발표하여 센세이션을 일으킨 작품이다. 이 희곡은 아버지에 대한 반항, 근친상간, 영아 살해라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공연이 열리는 곳마다 검열이라는 문제를 야기했다. 또 어떤 도시에서는 이 극을 공연한 극단 배우 전원이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극 속에는 그리스 신화 메데이아(Medeia)2와 파이드라(Phaedra)3 이야기가 녹아 있다. 복수를 위해 자신의 두 아들을 희생시킨 메데이아처럼 이 극의 여주인공 애비(aebby) 또한 자신의 사랑을 입증하기 위해 갓난아이를 질식시켜 죽인다. 테세우스가 전쟁에 나간 동안 그의 아들 히폴리투스와 사랑에 빠진 파이드라는 남편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자 히폴리투스가 자신을 겁탈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이 말을 믿은 테세우스는 아들을 저주하고 히폴리투스는 마차를 몰고 가다가 절벽 밑으로 떨어져 죽는다. 계모와 의붓아들 사이인 애비와 에벤의 이야기는 바로 이런 신화를 모델로 하고 있다. 유진 오닐은 이 작품으로 1936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뉴잉글랜드의 시골 마을, 커다란 느릅나무 그늘에 덮여 언제나 어둠침침한 생활을 하고 있는 캐봇 일가가 있다. 그 집에는 욕심스러운데다 호색가인 캐봇 노인과 그의 세 아들, 에벤과 시미안과 피터가 살고 있었다.
시미안과 피터는 캘리포니아의 금광에 가서 한밑천을 잡겠다는 꿈을 지니고 있었고, 에벤은 아버지의 토지와 가옥 등 재산 일체의 권리를 자기 소유로 하고 싶다는 욕망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판국에 이미 75세나 된 캐봇 노인은 젊은 여인 애비를 데리고와 후처로 삼았다. 애비는 오랫동안의 불안정한 생활에서 탈피하여 안정된 생활을 하고 싶다는 욕심으로 캐봇 노인과 결혼하지만 원래 바람기가 많은 여인이다. 애비는 금세 캐봇 노인의 아들 에벤에게 눈독을 들이게 된다. 시미안과 피터는 유산에 대한 자기네 권리를 포기하기로 하고, 대신 3백 달러씩을 에벤에게서 받아 쥐고 집을 나갔다.
애비는 적극적으로 에벤을 유혹했고 둘은 정을 통하게 된다. 캐봇을 제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게 된 애비는 그에게 집과 토지에 대한 권리를 넘겨주겠다는 약속을 받아 낸다. 열 달 뒤에 애비는 에벤의 아이를 낳았다. 캐봇 노인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자기 뒤를 이을 자식이 태어났다고 좋아했다. 그 뒤에도 계모인 애비와 아들인 에벤의 불륜은 계속 된다. 언제 끝을 보게 될지 모를 부자간의 물욕과 색욕이 뒤범벅이 된 짐승 같은 나날이 흘러간다.
그런데 애비는 에벤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겠다고 하며 갓난애를 목 졸라 죽인다. 불륜의 씨앗이 없었더라면 에벤이 변심하여 떠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의 자초지종을 알게 된 캐봇 노인은 보안관이 애비와 에벤을 체포하러 오기를 기다리면서 미친 듯이 말한다.
"살인자들끼리 정말 어울리는 부부로다. 네 같은 년놈들은 한 나뭇가지에 나란히 매달아, 나 같은 늙은이의 심심풀이 구경거리가 돼 줘야겠어!"
『느릅나무 밑의 욕망(Desire Under the Elms)』은 두 대립되는 힘 사이의 갈등으로 인생을 바라본 오닐의 비극관이 가장 잘 나타난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느릅나무는 전제적이고 탐욕적인 캐벗의 위력에 맞서는 힘이 된다.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는 캐벗조차도 집 안 곳곳에 스며 있는 ‘무엇’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고 그럴 때마다 외양간으로 도피하여 그곳에서 편안한 잠을 잔다. 캐벗이 대표하는 뉴잉글랜드의 엄격한 청교도주의, 탐욕, 계율, 억압에 대비되는 느릅나무는 감성, 사랑, 열정, 욕망, 생에 대한 환희를 상징한다. 이 작품은 이 두 세력 간의 대결 구도로 전개된다.
이 극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논란은 누가 이 비극의 진정한 주인공인가 하는 문제다. 캐벗 노인은 주변 인물들과 비교도 되지 않는 ‘거인’으로 그는 고전적인 비극성을 지닌 비극적 주인공으로 보인다. 그의 힘과 위력은 그가 등장하기도 전에 그의 세 아들이 그를 의식하고 두려워하는 데서 알 수 있다. 그러나 작가가 강조하고자 한 것은 에벤과 애비가 대표하는 본능과 열정에 충실한 사랑임이 분명하다.
에벤과 애비는 각자 나름대로의 계산과 속셈을 가지고 서로에게 접근하지만 느릅나무가 상징하는 모성의 힘을 얻어 어머니의 방에서 육체적 관계를 가진다. 그러나 에벤은 자신의 자식을 아버지의 자식인 것처럼 인정하고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에벤은 상속자가 생겨서 의기양양해하는 아버지의 놀림에 애비에 대한 사랑을 미움으로 쉽게 바꾸고 만다. 애비가 자신을 이용해 아들을 낳아 농장을 상속하려고 했다는 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믿고 에벤은 그 아기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한다.
♣
아들을 희생시켜서까지 에벤의 사랑을 되찾고자 한 애비의 절박한 행동은 에벤을 보안관에게 달려가게 만든다. 그러나 보안관에게 갔다 오는 도중 결국 자신도 애비를 너무나 사랑했음을 깨달은 그는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사랑을 고백한다. 모든 비극적 주인공이 그러하듯이 깨달음은 항상 너무나 늦게 찾아온다. 그러나 에벤의 고백 하나만으로도 애비는 어떠한 처벌이나 운명도 받아들일 만큼 희열감을 갖는다. 에벤과 애비 두 사람은 영아 살해라는 죄에 대한 처벌을 앞두고 있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만으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비극적 승화에 도달한다.
탐욕과 갈등, 오해를 거쳐 진정한 깨달음에 이른 후, 육체적으로는 파멸을 맞을지 모르나 정신적으로는 승리하는 비극적 존엄성을 이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고전 비극으로부터 현대를 꿰뚫는 이러한 보편성이 바로 이 작품을 두고두고 관객의 사랑을 받는 작품으로 만들었다.
- 유진 오닐 [ Eugene Gladstone O'Neill ] 미국 극작가. 주요 저서 가운데 《지평선 너머》는 처음으로 브로드웨이에서 상영되었다. 이 작품으로 퓰리처상을 받았고 오닐은 극작가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였다. 그 이후로도《애너 크리스티》등으로 퓰리처상을 받았으며 이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해 미국 문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본문으로]
- 콜키스의 왕 아이에테스의 딸로, 아르고 선(船)의 지도자 이아손이 황금 양털을 찾으러 콜키스에 왔을 때 도와주었다. 아마도 예언의 능력을 지닌 여신이었을 것이며, 마법을 써서 이아손을 도와주고 그와 결혼했다. 그들은 양털을 가지고 콜키스에서 도망쳤고 양털을 가져오라고 이아손을 보냈던 이올코스의 펠리아스 왕에게 복수했기 때문에 이올코스에게도 쫓겨나게 되는데, 그 다음의 이야기는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 Medeia〉에서 이어진다. 그들이 코린트로 도망쳐 살던 때를 배경으로 하는 이 희곡에서, 이아손은 크레온 왕의 딸 때문에 메데이아를 버리며 메데이아는 그 복수로 크레온 왕과 그의 딸, 심지어 자기의 두 아들까지 죽여 남편에게 복수한 후 아테네의 아이게우스 왕에게로 피난한다. [본문으로]
- 파이드라는 테세우스와 결혼하였지만, 테세우스가 다른 여성(아마존의 여왕 히폴리테, 또는 자매 안티오페) 사이에서 낳은 아들 히폴리토스에게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히폴리토스는 그녀를 거부하였다. 마음을 거부당한 것에 분노한 파이드라는 복수를 위해 테세우스에게 히폴리토스가 자신을 강간했다는 편지를 썼다. 그녀의 말을 믿은 테세우스는 히폴리토스가 포세이돈에게 세 가지 저주 중 하나를 받도록 저주하였다. 그 결과, 히폴리토스가 탄 말들이 바다 괴물에게 겁을 먹고 그를 죽음으로 몰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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